의료진 "하루 눈 뜬 시간 7∼8시간 "손발도 조금씩 움직여"
삼성그룹, 에버랜드 상장계획 발표 등 잇따른 현안 처리 분주



급성 심근경색으로 한 달째 입원 중인 이건희(72) 삼성전자 회장의 병세가 빠른 속도로 호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9일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관계자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은 하루 중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이 7~8시간 정도 된다. 손발을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이와 관련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손발을 움직인다는 뜻은 이 회장의 의식 회복이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방증”이라고 전했다. 전직 축구선수 신영록씨의 경우에는 손발 움직임이 있은 후 9일 만에 의식을 회복한 바 있다.

의료진이 이 회장의 병세에 대해 소견을 밝힌 것은 지난달 25일 이후 보름 만이다.

당시 의료진은 "이 회장이 혼수상태에서 회복되었으며 각종 자극에 대한 반응이 나날이 호전되고 있다. 이러한 신경학적 소견으로 보아 향후 인지 기능 회복도 희망적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스텐트 시술 직후 약 60시간가량 저체온 치료를 받았다. 이어 진정제 등을 투여하는 진정치료를 받았다.

의료진은 이 회장이 고령이고 지병이 있었던 점을 고려해 의식 회복을 서두르지 않고 진정치료를 장시간 지속했다.

이 회장의 심장과 폐 등 장기 기능은 정상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뇌파와 MRI(자기공명영상) 검사 결과도 나쁘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달 19일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VIP 병동)로 옮겼다.

이런 가운데 삼성의 삼성에버랜드는 지난 3일 이사회를 열고 내년 1분기에 상장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그룹 경영권의 3세 승계 작업과 맞물려 업계 관계자들의 이목을 집중 시켰다.

에버랜드 상장 계획 발표 후 삼성그룹 안팎에서는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를 놓고 여러 가지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삼성전자를 홀딩스(지주회사)와 사업 자회사로 인적 분할하고 현물 출자 후 지주회사와 에버랜드를 합병해 거대 지주회사를 만드는 방안 등이 증권가 보고서로 나왔다.

그러나 금산분리 법규나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매각 부담 등으로 인해 지주회사 전환이 사실상 불가능한 대안이며 에버랜드를 정점으로 한 현재의 순환출자 구조가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에버랜드가 상장 계획을 발표한 3일 삼성전자는 삼성SDI 자사주 217만여주와 제일모직 자사주 207만여주를 매수키로 했다고 공시하는 등 전자 중심의 수직계열화를 공고히 했다.

2007년 이후 줄다리기를 계속해 온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의 백혈병 피해 근로자 문제도 지난달 28일 삼성전자와 반올림이 대화에 나서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 회장이 입원한 지 나흘째인 지난달 14일 권오현 대표이사가 처음으로 경영진을 대표해 공식 사과하고 그다음 날 보조참가인으로 관여해온 산업재해 소송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반올림 피해자 가족도 삼성전자의 입장 변화를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어 협상 전망은 밝은 편이다. 

다만 금속노조 삼성전자 서비스 지회의 파업과 농성이 계속되어 삼성전자를 둘러싼 현안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이 회장이 쓰러진 뒤 외부의 평가가 주목한 건 삼성의 시스템 경영이다.

그룹의 최대 악재가 될 것이라던 총수 경영 공백이 시장에는 별 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며,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들의 주가는 오히려 상승세를 탔다. 스티브 잡스 혼자 회사를 이끌다 시피한 애플과는 다른 경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이 삼성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크지만 삼성은 이미 계열사 또는 사업부문별로 독립성이 강한 데다 방대한 조직에 전문경영 인력이 곳곳에 포진해 있어 총수의 공백으로 인한 충격이 제한적이라고 외신들은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