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제재 임박·합병 등 현안 산적
  • ▲ 직장인들의 본격적인 휴가 시즌이 시작된 것과 달리, 금융권 CEO들은 휴가계획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해운대 '비키니 축제' 모습. ⓒ 연합뉴스
    ▲ 직장인들의 본격적인 휴가 시즌이 시작된 것과 달리, 금융권 CEO들은 휴가계획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해운대 '비키니 축제' 모습. ⓒ 연합뉴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직장인들은 본격적인 휴가 시즌에 돌입했다. 하지만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들은 휴가계획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무더기 제재심의가 코앞에 닥쳐 있는가 하면, M&A·민영화·기업구조조정 등 현안이 쌓인 탓에 휴가를 떠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금융지주사·시중은행·보험사·카드사 20여 곳 중 가운데 여름휴가 계획을 잡은 CEO는 3명에 불과하다. 대부분 짧지만 1~3일 정도 휴가를 내서 재충전의 시간을 보냈던 작년과는 정 반대다.
 
우선 금감원으로부터 중징계 사전통보를 받은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은 오는 17일·24일 제재심의위원회가 예정돼 있어 휴가 자체가 불투명하다.

KB금융은 LIG손보 인수를 위한 실무작업이 진행 중이고 그룹 계열사와의 시너지 창출방안을 위한 전략 수립이 한창이어서 물리적으로 CEO의 휴가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KT ENS 부실 대출, 금감원 종합검사 등으로 징계가 예상되는 김종준 하나은행장 역시 휴가계획이 없다. 작년에는 하루를 쉬었지만 올해는 은행 내 일정과 거래처 방문, 제재심의 대비, 해외출장, 자원봉사 등으로 여름을 보낼 계획이다.

서진원 신한은행장, 아제이 칸왈 한국SC은행장, 권선주 기업은행장, 김덕수 KB국민카드 사장 등도 휴가일정을 못 잡고 있다.

'일이 많다'는 게 대외적인 이유지만 전현직 임직원들이 각종 금융사고와 엮여 있어 금감원 제재가 확정될 때까지 휴가계획을 세우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시선이다.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은행장은 우리은행 분리매각 방침이 정해짐에 따라 휴가없이 세부 민영화 계획에 매달리기로 했다. 우리은행 인수에 관심 있는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은 '아직 계획을 짜지 못했다'고 밝혔지만, 안팎에서는 인수 전략 때문으로 해석한다.

홍기택 KDB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은행장은 현안이 쌓여 휴가일정을 못 잡은 경우다. 동부·현대·한진 등 대기업이 구조조정 현안이 산적한데다 최근에는 팬택의 법정관리 가능성까지 대두했기 때문이다.

임종룡 NH금융지주 회장은 연말로 예정된 우리투자증권 합병작업을 진두지휘하느라 휴가를 생각할 짬이 없다.

김한조 외환은행장은 하나은행과의 조기통합을 선언하면서 노조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 휴가 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휴가를 정한 금융권 CEO는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과 김주하 농협은행장 정도다. 이들 역시 현안과 실적부담으로 휴가를 잡지 않으려 했지만 임직원의 강권으로 떠밀리듯 휴가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휴가를 자원봉사로 대체하는 CEO도 있다.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은 오는 28일부터 3일간 전북 군산에서 직원들과 무주택자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희망의 집짓기' 활동으로 휴가를 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고객 개인정보 유출건에 각종 금융사고 등이 겹쳐 안팎의 따가운 시선이 부담스러운데다 금리하락과 내수경기 침체로 영업환경이 악화해 올해는 더욱 CEO들이 마음 편히 여름휴가를 즐기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아래 직원들도 휴가 쓰기가 눈치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