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감 예산 151억원 고스란히 감정원에 배정"관피아 유착 배경으로 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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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도 춘천시에서 감정평가사 사무실을 운영하는 정종익씨가 27일 국토교통부 앞에서 표준지 공시지가 제도 개편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뉴데일리경제
    ▲ 강원도 춘천시에서 감정평가사 사무실을 운영하는 정종익씨가 27일 국토교통부 앞에서 표준지 공시지가 제도 개편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뉴데일리경제

    국토교통부와 한국감정원(감정원)이 공시지가 산출 근간이 되는 표준지 조사업무를 기본조사와 정밀조사로 이원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와 관련해 절감된 예산이 고스란히 감정원으로 흘러가게 돼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감정원에서 제도 개편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진 표준지 조사업무는 실질적인 제도 운용상 차이가 없어 국피아(국토부+마피아)가 감정원 배를 불리려고 국가 예산을 농단한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27일 국토부와 감정평가업계 등에 따르면 국토부는 예산 절감을 이유로 표준지 공시지가 조사·평가방법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지가변동률이 낮은 지역은 표본을 추려 하는 기본조사, 그 외 지역은 지금처럼 정밀조사하자는 게 핵심이다.


    표준지 공시지가는 국가토지정책의 근간인 데다 각종 조세 부과, 부담금 산정기준 및 손실보상평가의 기준이 돼 국민 재산권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정부가 예산을 들여 전국 50만필지 표준지에 대해 복수의 감정평가사를 통해 정밀조사를 벌여온 이유다.


    ◇정부, 약식 '기본조사'도입…업계 "위법이고, 결국 하는 일 같아"


    감정원이 국토부에 건의한 새 표준지 공시지가 조사방법은 지가변동률이 1% 이하이고 지가변동 요인이 없는 읍·면·동지역을 기본조사지역으로 선정해 실지조사 등 감정평가의 필수절차를 생략한 채 약식감정으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평가업계는 기본조사가 '평가'가 아닌 약식 조사여서 위법한 데다 기본조사와 정밀조사가 이름만 다를 뿐 결국 조사방법이나 감정평가사 업무는 같을 수밖에 없어 제도 개편의 취지와 근거가 없다는 반응이다.


    감정평가업계 한 관계자는 "부동산 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에 표준지 공시지가는 조사·평가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기본조사는 실지조사, 감정평가 3방식 적용 등 감정평가의 필수 절차를 생략하는 약식조사여서 평가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한국감정평가협회(협회)도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기본조사가 위법이라는 비난이 거세지자 (국토부가) 현장을 실지조사하고 감정평가사 책임으로 약식 평가할 수 있게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며 "감정평가사는 책임과 처벌 부담 때문에 기본조사지역도 정밀조사할 수밖에 없어 기본·정밀조사 명칭만 다를 뿐 결국 조사·평가방법과 감정평가사 업무내용은 같게 된다"고 부연했다.


    기본조사제도 도입이 사유재산권을 침해하고 형평성 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견해도 제기된다.


    ◇절감한 예산 151억원, 감정원 지가조사 예산에 고스란히 배정


    무엇보다 표준지 공시지가 제도 변경이 감정원의 수익증대를 위해 강행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국토부는 제도 개편으로 예산이 151억원쯤 절감된다는 태도다. 하지만 절감된 예산이 기본조사를 위해 고스란히 감정원에 갈 수밖에 없는 구조를 띠고 있다.


    국토부가 기획재정부에 2015년 지가조사 예산심의를 요청한 자료를 보면 기본조사제도 도입으로 절감된 예산 151억원이 지가변동률 조사와 임대사례조사 등 감정원 수행 업무로 증액돼 편성됐다.


    2014년에는 감정평가사가 맡는 공시지가 조사·평가 관련 예산이 표준지 조사는 417억원, 개별지가 검증은 67억원이 반영됐지만, 2015년에는 각각 287억원과 45억원으로 총 152억원이 줄었다.


    반면 2015년 감정원 공시지가 예산(안)은 기본조사와 관련해 상시조사체계 수수료와 기본조사평가 상시관리체계 구축 예산 38억원이 신설됐고, 지가변동률 조사와 임대사례조사 예산이 각각 41억원(22.8%)과 71억원(122.2%) 증액돼 모두 151억원이 늘었다.


    공시지가 조사를 위해 전국의 감정평가사에게 주던 예산 152억원을 절감해 고스란히 감정원에 밀어주는 셈이다.

  • ▲ 2015년도 한국감정원 지가조사예산 건의(안).ⓒ한국감정평가협회
    ▲ 2015년도 한국감정원 지가조사예산 건의(안).ⓒ한국감정평가협회


    감정원이 공시지가 조사를 위해 수행하는 지가변동률 조사와 임대사례조사는 2012년 이전에는 감정평가사와 감정원이 함께 맡았지만, 이후 업무가 감정원에 이관됐다.


    감정평가업계 관계자는 "매달 하는 지가변동률 조사는 감정평가사들이 현장 조사하는 업무의 일부로 무료로 해줄 수도 있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이고 땅값이 채솟값처럼 수시로 변동되지도 않는데 (감정원) 예산을 왜 늘려주는지 모르겠다"며 "(국토부가) 지가변동률을 일주일 단위로 조사하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그는 "(상업용 부동산)임대사례조사 결과도 수십 년 동안 감정평가 일을 했지만, 왜 조사를 하나 모를 정도로 활용도가 낮다"며 "조사예산을 2배 이상 늘려준 것은 감정원에 예산을 주려는 편법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협회는 이와 관련해 "표준지 공시지가 조사는 현행대로 유지하되, 표준지 수를 줄이거나 조사 난이도에 따라 평가 수수료를 차등화하는 등 합리적인 예산절감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협회 소속 전국지회장은 26일 회의를 열고 "명분 없는 제도개선을 내세워 감정원을 살리려고 국가 토지정책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며 "기본조사제도 도입을 철회할 때까지 표준지 공시지가 조사·평가 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결의했다.


    ◇업계 "국피아 유착이 근본 원인"…2004년부터 감정원장 자리 국토부 관료 독식


    감정평가업계는 이번 표준지 공시지가 조사·평가방법 논란이 국토부와 감정원의 뿌리 깊은 유착관계에서 비롯됐다는 견해다.


    정부 출연기관에 해당하는 감정원은 그동안 대주주인 정부를 등에 업고 영업활동을 벌여왔지만, 2000년 이후 감정평가업계에 대형 법인이 생기면서 어려움을 겪었고 국토부가 감정원에 계속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내면서 국피아 유착이 심해졌다는 것이다.


    감정원 원장은 2004년 이후 주무부처 출신이 장악하고 있다.


    2004년 말 취임한 장동규 원장을 비롯해 황해성, 권진봉, 서종대 현 원장까지 모두 국토부 전신인 건설교통부 출신이다.


    8월 현재 감정원 임원 현황을 보면 전체 11명 중 54.5%에 해당하는 6명이 관료 출신인 가운데 이 중 4명(66.7%)이 직속 감독부처인 국토부 출신으로 채워졌다. 서 원장을 비롯해 김상권 상임이사와 이성권 감사위원, 한만희 경영발전위원이 행정복합도시건설청 기획재정과장, 건교부 수송정책실장, 국토부 제1차관 등을 거쳤다.


    국피아가 감정원 수장이 된 2004년 이후 감정원은 감정평가사 업무를 이관받기 시작했다.


    2005년 공동주택가격 조사업무를 비롯해 2012~2013년 임대사례조사와 지가변동률 조사, 표준지 공시지가 조사 부대업무, 표준주택 가격조사 부대업무 등이 감정원으로 이관됐다. 예산규모로 따지면 426억원 상당이다.


    지난 25일부터 국토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정종익 감정평가사는 "누군가는 밥그릇 싸움을 한다고 손가락질하지만, 국토부와 감정원 유착관계가 도를 넘어 '을'(乙)의 신분임에도 부득불 거리로 나서게 됐다"며 "국토부는 감정원에 특혜를 주려고 예산절감을 왜곡해 편법을 동원하지 말고 대한민국 토지정책의 본산답게 더 나은 부동산정책을 마련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관피아 문제는 정부 차원에서 개선방안을 찾고 있다"면서 "일부 감정평가사가 밥그릇이 줄어드니까 불평·불만을 하는데 정부 정책이 녹록하지 않다. 정책이 합리적이면 반영되는 것 아니냐. 업계에서조차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만큼 (새 제도에) 대부분 참여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예산 편법 지원과 관련해선 "편법 지원이 아니며 증액되는 예산은 임대사례조사 등 비목이 다르다"며 "기획재정부, 국회 등을 거쳐야 하는 등 예산심의 구조가 허술하지도 않다"고 반박했다.


    공청회 등 의견수렴 과정이 없었다는 지적에 대해선 "대국민 홍보를 통해 의견을 수렴할 것"이라며 "예산을 절감한다는 데 누가 반대하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