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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수의 크리에이티브 산책] 브라질 사람들의 축구 사랑은 유별나다. 올 여름만 해도 축구 심판이 선수를 찔러 죽이고 그 심판을 관중들이 참수하는 엽기적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12월 8일에는 관중들끼리 패싸움을 벌이다 급기야 한 명이 죽기까지 했다.
월드컵 같은 '시즌'에만 편중해서 축구를 사랑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 이 뜨거운 나라의 축구장에서 빈번히 벌어진다.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것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브라질 사람들, 그들의 축구 사랑이 상상도 못한 곳에서 감동적인 효과를 발휘했다.
브라질 헤시페(Recife) 시의 축구 팀은 축구를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기세의 팬들에게 죽어서도 헤시페의 팬으로 남을 방법을 알려주기로 한다.
적십자도, 사회단체도 아닌 한 프로 축구팀이 주도한 이 캠페인은 장기기증을 애타게 기다리는 환자들의 약속을 미디어에 내보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당신이 죽은 후에도 당신의 심장은 내 몸 안에서 헤시페 팀을 위해 뛸 거예요." "당신의 눈은 당신이 죽은 후에도 여전히 헤시페의 경기를 볼 거예요." 그렇게 헤시페 축구팀은 몸의 일부나마 다른 사람 몸 속에 살아남아 죽지 않고 영원한 팬이 되어달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그 호소는 멋지게 먹혔다.
이 캠페인은 '세포 기억설'을 그 저편에 깔고 있다. '세포 기억설'은 장기이식 수혜자들에게 기증자의 성격이나 습관이 전해진다는 가설을 말한다. 아직까지 의학적으로 확실하게 증명된 바는 없어도 이런 현상이 자주 목격되면서 많은 이들이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기의 심장, 폐, 각막 등이 다른 사람에게 가서 그 사람을 살리는 것은 물론, 어쩌면 그 사람을 헤시페의 팬으로 만들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 헤시페 팬들은 앞다퉈 장기기증서약을 했다.
서약자들이 줄을 이으며 마침내 대기자 수가 0명으로 줄기에 이르렀다. 폭력과 살인까지 부르던 축구 팬들의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이 장기기증 열풍으로 전환된 것이다.
사실 자신의 장기를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기꺼이 내줄 만큼 진정으로 이타적인 사람은 드물다. 여기에 심리학과 뇌신경학 등 과학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이타적인 행동은 유전자가 기억하고 있는 생존본능으로 치부되거나 자기 마음이 편해지기 위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간주되곤 한다.
이렇듯 이타심의 존재 자체에 회의를 느끼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테레사 수녀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에게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식 희생을 강권하는 것보다는 그들의 이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헤시페 축구 팀은 팬들에게 가장 사랑하는 것을 위해 장기기증서약을 해달라고 청했고 브라질 사람들에게 하나님 다음으로 소중한 것은 자기가 응원하는 축구 팀이었다. 누군가 박애주의자가 되어달라고 청한다 해서 별안간 박애주의자가 될 수는 없다.그러나 그게 사랑하는 대상을 위한 간청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더욱이 내가 죽은 후에 누군가가 내 편, 즉 헤시페의 팬이 돼주겠다는데 굳이 그 청을 뿌리칠 이유가 있을까, 축구에 죽고 축구에 사는 브라질 사람들이?
이 캠페인은 2013년 칸 라이언즈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칸 국제광고제)에서 그랑프리 외 수많은 상을 브라질에게 안겨주었다. 대행사 브라질 오길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