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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진 석유업계 불황으로 시련의 계절을 보내고 있는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S-OIL),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4사들이 상대적으로 수익성 높은 '윤활기유' 시장에 모두 뛰어들며 본격적인 경쟁에 나섰다.
정제 마진이 1%대로 주저 앉은데다, 그동안 효자 노릇을 해왔던 파라자일렌(PX)마저 공급과잉과 수요 감소의 벽에 부딪혀 암울한 상황에서 20~30%대의 높은 마진율을 보이는 윤활유 사업에 정유사들이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윤활기유란 각종 기계장치에 사용되는 윤활유의 원료로, 지상유전으로 불리는 고도화설비 운영과정 마지막 단계에서 발생하는 사실상 '찌꺼기'로 만들어지는 만큼 수익성이 높다. 특히 기계제품의 수명과 직결되고,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정유사들이 바닥에 남는 윤활기유를 윤활유로 만들어 판매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윤활유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력은 물론, 수많은 기계와 공장설비들의 특성에 맞게 '1대 1' 생산을 해야하는 만큼, 대량생산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정유공장 시스템상 '소량 다품종'인 윤활유 시장 진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정유사들은 고도화설비를 통해 생산되는 고급 윤활기유를 윤활유 회사에 판매하는 전략을 세우고 고급 윤활기유 시장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찌감치 윤활기유 사업을 시작한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S-OIL)에 이어 최근 현대오일뱅크까지 합세하면서 앞으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 '글로벌 파트너링'으로 해외 시장 공략 -
SK이노베이션은 정유4사 중 유일하게 해외에 윤활기유 생산기지를 두고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글로벌 파트너링' 전략이 윤활유 부문에서 기지를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다.
최 회장은 지난 2008년 인도네시아 국영기업인 페르타미나와 두마이 윤활기유 공장 합작사업을 이끌어 성공시킨데 이어 2011년 글로벌 에너지 기업인 스페인 렙솔(Repsol)과 손잡고 카르타헤나에 윤활기유 공장을 설립하는 등 글로벌 파트너링에 공을 들여왔다.
당시 최 회장은 "고급윤활기유 분야에서 진정한 글로벌 강자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 주요 전략지역에도 생산기지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해외 합작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이같은 전략을 통해 SK이노베이션은 그룹3 제품(프리미엄 윤활기유)을 주력상품으로 내세워 프리미엄 윤활기유 최대 시장인 유럽 시장을 선점하고 나아가 윤활기유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페르타미나·스페인 렙솔·일본 JX에너지 등은 자국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상당한 인지도를 확보한 회사"라면서 "이들과의 글로벌 파트너링을 통해 글로벌 진출 리스크를 줄이고 현지에서의 원료 조달과 판매를 원활하게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스페인은 유럽 시장 공략의 거점인 만큼 유럽전역으로 시장을 점차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SK이노베이션의 윤활기유 생산량은 연 350만t(일일 7만800배럴)으로 엑슨모빌(일일 12만1300배럴), 쉘(일일 9만3000배럴)에 이은 세계 3위 규모다. 현재 국내 울산공장에서 일일 4만8500배럴, 인도네시아 일일 9000배럴, 스페인 일일1만3300배럴을 생산하고 있다.
현재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루브리컨츠는 윤활유 완제품 브랜드 '지크'를 판매 중이다.
▲에쓰-오일, 윤활기유 그룹 1,2,3 단일 생산공장 세계 최대 -
에쓰-오일 온산공장에서 생산되는 윤활기유는 연 210만t(일일 4만2700배럴)으로 그룹 1,2,3 제품을 모두 생산하는 단일 공장 중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윤활기유 생산량으로만 따졌을때도 세계 5위 규모다. 단일 생산 규모가 큰 만큼 가격경쟁력이 높다.
또한 지난 30여년 간의 윤활기유 생산 경험과 일관된 품질의 원유 사용으로 안정적 품질을 보증한다는 것도 에쓰-오일 윤활기유 제품의 차별점이다.
에쓰-오일은 주로 고성능 친환경의 초고점도지수의 그룹3 윤활기유를 생산하고 있으며 생산량의 77%를 수출하고 있다. 주요 수출국은 인도, 중국, 베트남 등 이머징 마켓 뿐 아니라 고급 윤활기유 수요가 많은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 시장에도 글로벌 메이저들과의 장기계약 등을 통한 안정적 판매기반을 마련해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1월 말에는 호주 ASCC(Australasian Solvents and Chemical Company)와 대리점 계약을 체결하고 호주와 뉴질랜드 시장에서 윤활기유 제품의 저장판매를 개시하는 등 안정적 해외 판매망 확보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30여 년 동안의 윤활기유 생산 경험을 활용하고 일관된 품질의 원유를 사용함으로써 안정적인 품질을 갖춘 다양한 유종의 고급 윤활기유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면서 "고품질, 고성능 제품은 내수시장 뿐만 아니라 품질 규격이 까다로운 미국과 유럽시장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하며 세계 윤활기유 시장을 선도해 오고 있다"고 밝혔다.
에쓰-오일은 1989년 ‘드래곤(Dragon)’ 브랜드로 윤활유 완제품 시장에 진출했으며 2008년에는 세계 5위의 프랑스 석유회사인 토탈사와 합작으로 윤활유 전문업체 에쓰-오일 토탈 윤활유(STLC)를 설립했다. 올 5월에는 최고급 프리미엄 윤활유 브랜드 ‘에쓰-오일 세븐’을 출시하고 100% 합성엔진오일 제품 6종을 공개했다.
▲GS칼텍스, 시장 제일 큰 그룹2 윤활기유 집중 -
국내 윤활유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GS칼텍스(점유율 17%)는 여수공장에서 연 130만t(일일 2만6000배럴)의 윤활기유를 생산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중장비나 대형엔진, 선박 등에 주로 쓰이는 윤활기유 그룹2 제품 생산을 주로 하고 있다. 현재 생산량의 79% 가량을 수출하고 있으며 중국과 인도, 일본, 동남아 등이 주요 수출 시장이다. 최근에는 아시아뿐만 아니라 윤활기유 수요가 늘고 있는 북미와 유럽 시장 진출 기회도 엿보고 있다.
GS칼텍스 관계자는 "최근 윤활기유 시장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시장 상황을 지켜본 뒤 유동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면서 "가격적 측면에서는 GS칼텍스만의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윤활유 시장 점유율은 GS칼텍스(17%), SK루브리컨츠(16%), 에쓰-오일(12%) 순이다.
GS칼텍스는 윤활유 브랜드 ‘킥스’로 자동차용 엔진오일을 판매하고 있으며 올 상반기 2010년부터는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올 상반기에는 기존 석유화학과 윤활유 사업을 통합하는 본부를 세웠다.
▲현대오일뱅크, 쉘 글로벌 네트워크 활용 -
현대오일뱅크는 글로벌 에너지 기업 쉘(SHELL)과 함께 충남 대산공장에 최근 연 65만t의 윤활기유 공장을 준공하고 윤활기유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쉘을 통해 안정적인 윤활기유 수출을 유지하는 한편, 국내에서는 프리미엄 윤활유 생산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현대오일뱅크와 쉘이 6대 4의 비율로 합작한 현대쉘베이스오일은 일일 2만 배럴의 중유를 처리해 윤활기유 그룹 2,3 제품을 생산하며 향후 내수와 수출을 통해 연간 1조 원의 매출을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현대쉘베이스오일에서 생산되는 윤활기유의 80~85% 이상을 쉘에 공급하고 나머지는 현대오일뱅크의 윤활유 완제품 브랜드인 '엑스티어(XTeer)' 생산에 투입하게 된다"면서 "현대오일뱅크의 안정적인 공장운영 노하우와 정제 기술, 세계 최대의 에너지 기업이자 윤활유 분야의 선도자인 쉘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시너지를 창출할 것"이라고 전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윤활유 신제품 ‘엑스티어(XTeer)’를 출시하고 자동차 엔진오일 시장에 진출했다.
▲윤활기유 시장 전망 -
현재 세계 윤활기유 시장 비율은 그룹1 제품이 55%, 그룹2 제품이 26%, 그룹3 제품이 10%, 기타 제품이 9%를 차지한다.
최근 환경규제 강화에 따른 엔진오일 규격 상황으로 그룹1 비율은 지난 2007년 63%에서 대폭 줄었다. 반면 미국·유럽 등 선진국의 수요 증가로 고급 기유인 그룹3 제품 수요가 늘고 있으며, 중국·인도 등 신흥국의 경제 성장으로 그룹2 윤활기유 수요가 늘어 오는 2017년경에는 그룹2가 최대 시장으로 성장하게 될 전망이다.
지난 2~3년간 생산 설비 증설에 따른 공급 과잉으로 그룹2, 3가 다소 부진한 시황을 보였으나 최근 고급윤활기유에 대한 수요 증가와 자동차 판매 회복 등 경기 회복으로 수요가 살아나고 있다.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의 경기 회복 여부가 향후 시황 유지의 중요한 변수로 지목되고 있다.
세계 윤활유 수요는 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지역을 포함해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개발 도상국에서 가파른 양적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남미와 아프리카 시장도 잠재적인 성장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유럽과 북미에서는 고효율 프리미엄 윤활유 제품 수요가 늘고 있다.
국내 윤활유 시장 전체 규모는 연간 2조5000억 원으로 GS(17%), SK(16%), 에쓰오일(12%) 등 국내 정유사가 약 45%, 국내 유화사가 약 13%, 모빌코리아, 한국쉘, 한국하우톤 등 외국계 회사가 약 42%를 점유하고 있다.※용어설명 : 윤활기유(Base Oil)
윤활기유는 윤활유 완제품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기초원료로 고도화 정제 공정에서 나오는 잔사유를 처리해 만들어진다. 윤활기유에 각종 첨가제를 넣어 자동차, 선박, 산업용 등 다양한 윤활유 완제품을 만든다.
윤활기유는 함함량 점도 지수에 따라 그룹 1부터 5로 나누며, 5로 갈수록 황 함유량은 낮고 점도지수는 높은 좋은 기유로 분류된다. 그룹1,2는 선박과 산업, 중장비, 대형엔진 등에 주로 사용되며 고급 윤활기유인 그룹3은 미국이나 유럽 등 환경규제가 강한 나라에서 자동차용으로 쓰인다. 그룹 4와 5는 자동차, 특수목적용, 전기절연유 등으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