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효과 적고 투자 대비 국가 살림 보탬 적다" 잡음 솔솔기술력도 없는데... "높은 장비가격에 시장 정체기 집입도 발목잡아"
  • ▲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 정경. ⓒLG디스플레이.
    ▲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 정경. ⓒLG디스플레이.


    중국 BOE의 10.5세대 LCD 생산라인 건설사업이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당초 중국 정부의 막대한 예산폭탄에 힘입어 거침없이 내달리던 BOE의 LCD 사업이 중국 정부의 변심으로 고꾸라질 상황에 처한 것이다.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BOE는 현재 10.5세대(2940×3370㎜) LCD 생산라인을 건설하고 있다. 이르면 2018년 초 제품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를 위해 BOE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모두 600억 위안(10조 5228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입한다.

    10.5세대란 마더글라스의 가로, 세로 크기를 뜻한다. 삼성과 LG는 현재 10세대(가로 2.9M, 세로 3.1M)보다도 작은 가로 2.2M, 세로 2.5M의 8세대급 마더글라스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LCD를 비롯한 TV 패널은 마더글라스라고 불리는 유리기판을 잘라 생산한다. 마더글라스가 커지면 TV 패널 생산 숫자가 늘어난다. LCD 패널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TV 생산 공정이 한 바퀴 돌 때 마더글라스가 클수록 한 번에 찍어낼 수 있는 패널양이 많아지기 때문에 그만큼 생산수율이 올라간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최근 예산지원을 중단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지난해 말부터 BOE의 이번 사업에 대해 중국 정부는 회의적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정부가 이처럼 기존 결정을 뒤집은 까닭은 예산 투자 대비 내수 진작 효과가 미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LCD 공장이 하나 들어선다고 해도 중국 곳간 사정은 크게 나아질 게 없다.

    LCD를 찍어내기 위해선 관련 장비와 대형 유리를 공급하는 업체의 도움이 필요한데 이들 업체 대부분이 대만 등 외산기업이어서 중국 정부의 투자가 자칫 다른 나라 기업만 배불리는 꼴이 될 수 있다.

    더욱이 LCD 공장은 자동화 시스템이 적용돼 돌아가는 구조여서 고용 창출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BOE가 이번 사업을 통해 세계 TV시장 주도권을 가져올 것이라는 확신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되레 사업성을 확보하지 못해 투자비조차 회수하지 못하고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0.5세대 공장(200K)을 하나 짓게 되면 보통 월 20만장의 LCD 패널을 양산하게 된다. 재고를 안 남기고 팔아치우려면 적어도 40~50개 세트 업체가 BOE의 패널을 사줘야 한다. 그러나 지금 LCD 시장은 최근 몇 년간 정체기에 돌입한 상태다. 공급과잉이 걱정되는 대목인 셈이다.

    수요처가 확실히 보이지 않는 시점에서의 투자는 독이 될 수 있다. 특히 10.5세대가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려면 TV가 대형화 추세로 빠르게 진행돼야 하는데 아직 55인치 이상 크기의 TV도 대세라고 평가할 정도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또 10.5세대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만큼 장비도 비싸게 구입해야 한다. 8세대 이하의 경우 이미 보편화된 시설이다 보니 장비가격이 많이 낮아졌다. 관련 업계 안팎에선 10.5세대 장비가 8세대보다 1.5배 넘게 비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10.5세대를 가장 먼저, 유일하게 도입한 일본의 샤프 역시 비싼 장비 값 때문에 한때 LCD 사업 자체를 접을 상황에까지 몰렸었다. 결국 BOE도 막대한 초기 투자비에 따른 부담은 물론 수년간 마진을 못 남기고 패널을 팔아야 한다는 이중고를 감수해야 한다.

    마더글라스 크기를 키우는 이유는 결국 생산성 향상에 따른 원가 절감이다. 그런데 BOE가 초기 투자비를 회수는커녕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만 최소 5년은 걸릴 것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아울러 유리를 운반하는 문제 또한 걸림돌로 작용한다. 대형 유리를 차량 등으로 이동시키려면 좁은 도로 폭에선 옮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도로 인프라까지 염두에 두고 공장 위치를 결정해야 하는 셈이다.

    유비산업리서치 이충훈 대표는 "세계 TV 시장 전체를 먹겠다는 전략으로 참고 버틴다면 10.5 세대로 진입할 수 있겠지만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지난해 말부터 BOE의 이번 결정을 두고 중국 정부 내부에서 잡음이 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BOE가 정부로부터 예산을 타내기 위해 구체적 계획 없이 사업을 하겠다는 식으로 공수표를 날렸다는 얘기가 이미 업계 안팎에서 돌고 있다"며 "삼성과 LG가 함께 대형 패널로 따라 가주지 않는 이상 BOE 혼자 새로운 시도에 나서긴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삼성과 LG 역시 마더사이즈 크기를 키우려는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LCD 패널 수요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 새 공장을 짓기보단 기존 공장 케파(생산규모)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