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고안 달라 했는데 '일방통행', "스스로 역할 중단해야""합의 당사자 무시, 세계 어디에도 비슷한 사례 없어" 비난도
  • ▲ 강남역 주변에서 반올림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데일리경제DB.
    ▲ 강남역 주변에서 반올림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데일리경제DB.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해 설립된 조정위(조정위원회)가 이해 당사자의 의견을 무시한 채 중재의 성격을 담은 권고안을 언론에 공개, 혼란을 자초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갈등을 봉합해야 할 조정위가 오히려 논란을 부추긴 셈이다. 결국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조정위를 두고 직업병 문제에서 발을 빼야 한다는 주장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17일 바른사회시민회의에 따르면 조정위와 같은 의견 조율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협의체는 이해 당사자간 갈등을 최소화하는 데 방점을 찍고 업무를 펼치게 된다. 이는 노사정위원회를 비롯해 비슷한 형태의 모든 단체가 마찬가지다.

    하지만 조정위는 예외였다. 합의 당사자간 입장이 팽팽하게 맞설 게 뻔한 내용의 권고안을 일방적으로 언론에 발표, 되레 싸움에 불만 지핀 것이다.

    심지어 권고안을 대내외적으로 알리기 전 해당 내용을 검토할 수 있도록 시간을 달라는 가대위(가족대책위원회)의 요청조차 받아드리지 않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행보를 보였다.  

    가대위 관계자는 "권고안이 나오기 전 확정된 안을 먼저 보여달라고 (조정위 측에) 요구했었는데, 사실상 답을 얻지 못했다"면서 "그러다 보니 다른 의견을 내는데 고충이었다"고 털어놨다. 피해 가족으로 구성된 가대위는 삼성전자, 반올림과 함께 합의 주체 중 한 곳이다.

    이처럼 조정위를 포함한 협의체가 합의 당사자 의견을 묵살해 당혹감에 빠뜨리는 사례는 흔치 않다.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옥남 바른사회시민회의 실장은 "합의에 나선 주체들을 당황스럽게 하는 조정위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지적한 뒤 "억지 주장만 내세우고 있는 반올림을 편드는 듯한 조정위 권고안도 숨은 의도를 의심케 할 정도로 상식에 어긋난다"고 꼬집었다.

    실제 조정위 권고안은 그동안 균형을 잃었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다.

    조정위는 지난 7월 23일 권고안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에게 1000억원을 기부, 공익법인을 설립하라고 요구했다. 공익법인은 전체 출연금 1000억원 중 30%에 해당하는 300억원을 운영비로 쓸 수 있다. 운영비에는 반올림의 활동비도 포함된다.

    공익법인 설립은 반올림의 요구와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나머지 협상 당사자들은 모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가대위의 경우 삼성과의 직접 협상을 통해 빠른 문제 해결을 바라고 있다. 반올림 내부에서조차 한때 가대위에 동조하는 주장이 나오는 등 파열음을 냈었다.

    이에 대해 조정위 관계자는 "지금까지 상황만 놓고 봐선 권고안이 나오기 전 갈등을 줄이기 위한 물밑 작업을 하지 못한 점이 혼란을 키운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인정하면서도 "일방적으로 절차를 진행한 경우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현재 공익법인 설립 외 권고안의 대부분 내용을 수용한 상태다. 피해 보상 금액과 범위는 오히려 권고안보다 크게 넓혔다. 그럼에도 반올림은 조정위 권고안을 무기로 계속 트집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가대위는 최근 조정위에 대해 "지난해 11월에 구성된 이후 1년 동안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한 채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며 역할을 중단하고 물러나야 한다고 요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