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확대 - 매체·기술 변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가능성 열어
  • ▲ 2015년 라이언즈 헬스의 맥칸 헬스 세미나에서 작가 셰인 코이찬이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칸 라이언즈 한국사무국
    ▲ 2015년 라이언즈 헬스의 맥칸 헬스 세미나에서 작가 셰인 코이찬이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칸 라이언즈 한국사무국


    광고의 가장 큰 목적은 소비자들의 기억에 남는 것이다. 대도시인들은 하루에 7천 건의 광고 메시지를 접한다고 한다. 그 혼돈 속에서 소비자들의 기억에 남기 위해 많은 광고들이 흔히 과장되거나 충격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런 표현 중 상당수가 크리에이티브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그러기 쉽지 않은 분야가 있다. 바로 보건의료 계통 광고다. 건강,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인지라 이 분야의 제약과 규제는 상상 이상이다. 우선 약사법, 의약품 안전에 관한 규칙 등의 법률과 조례를 따라야 한다. 거짓광고나 과장광고가 안 되는 것은 당연하고, 오남용을 유발할 수 있는 표현은 아무리 완곡해도 금지다. 프로모션도 안 되며, 비교광고도 안 된다. 체험 사례도 안 된다. 제품명을 연호해도 안 된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여다보면 아찔하다. ‘안전하다’, ‘부작용의 우려가 적다는 말도 안 된다. ‘공부에 지친 수험생’, ‘늘 피곤한 직장인등 광고대상을 한정해도 안 된다. 아무 말도 못할 지경이다. 이런 제약은 처방약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OTC(대체조제) 약품을 비롯해 보건의료 분야 전반에 이렇게 엄격한 제약이 적용되고 있으며, 그 제약은 날이 갈수록 점점 엄격해지고 있다.


    광고 표현상의 제약만 힘들게 하는 건 아니다. 광고 대상인 오디언스 타게팅도 까다롭다. 음료, 세제, 치약과 같은 FMCG(일용소비재) 광고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타겟 오디언스가 될 수 있다. 약품은 다르다. 평생 단 한 번도 무좀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 부지기수고, 전립선에 문제가 생기는 사람은 중년 남성들 중에서도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막대한 매체비를 들여 광고를 집행한다 해도 과연 타겟 오디언스에게 제대로 전달될 지 알 도리가 없다.


    그나마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약은 사정이 낫다. 처방전 약이나 전문 의료기기의 경우엔 매우 전문적이고 까다로운 의사병원등을 타겟 오디언스로 두고 있다. 이 경우 고객에게 제품의 장점을 알린다 해도 구매로 꼭 이어지는 게 아니다. 품질이 아무리 좋아도 보험 수가나 제약회사와 병원 간 관계 등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으로 인해 의사가 원하는 약품을 처방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인간은 제약 속에서 오히려 창의력을 폭발시키는 경향이 있다. 음악가 필 핸슨(Phil Hansen) 2013 TED에서 우리가 무한해지려면 먼저 한계부터 설정해야 한다고 했다. 맥주, 자동차와 같이 별다른 제약이 없는 광고들과 나란히 세계적인 광고제에서 수상하는 보건의료 분야 광고나 캠페인을 통해 제약과 규제가 뜻밖의 크리에이티비티를 낳은 사례를 무수히 찾아볼 수 있다.


    물론 보건의료 분야 크리에이티비티 역시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크리에이티비티를 위한 크리에이티비티를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 크리에이티브한 광고가 매체비 대비 뛰어난 성과를 거둔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수도 없이 발표되고 있다. 의료보건업계 광고도 크리에이티브해야 한다. 광고제에서 상을 타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겟 오디언스에 정밀하게 조준해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행동을 유도하고 구매를 유발해 궁극적으로 매출을 증대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보건의료 분야 크리에이티비티의 중요성이 급속히 대두된 일차적인 원인은 보건의료 분야 시장의 팽창에서 찾을 수 있다. 평균 수명이 연장되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경우 향후 10년 안에 보건의료 시장이 20% 이상 팽창할 것으로 전망한다. 3세계 국가들이 경제성장을 이루며 의료보건 분야 지출이 느는 현상도 간과할 수 없다. 관련 기술과 의학의 발전 덕분에 이전엔 생각지도 못한 수많은 상품들까지 시장에 쏟아지면서, 안 그래도 복잡했던 의료보건시장은 한층 더 방대하고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지난 몇 년 사이 맥칸 헬스, 퓌블리시스 헬스 등 다양한 의료보건 전문 대행사가 경쟁적으로 설립되고 의료보건 전문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이 열리기 시작했다. 칸 라이언즈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칸 국제광고제)에서 2014년 출범한 라이언즈 헬스를 비롯, 클리오 헬스, IPA 헬스케어 어워드 등이 바로 그것. 언뜻 FMCG(일용소비재) 분야 헤비급광고들로부터 상대적 약체인 의료보건 분야 크리에이티비티를 따로 심사하려는 배려로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속사정은 그보다 좀 더 복잡하다. 얼마 전까지만도 의료보건 분야 크리에이티비티는 이른바 전통 매체를 통해 한정되고 제약된 콘텐트만을 전달했다. 하지만 전통 매체가 주류 매체의 자리에서 이미 쫓겨난 지금, 의료보건 분야 광고주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방대한 방식을 써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게 됐다. 모바일, 웹 등 기술을 이용해 일반 소비자들은 물론 의사 등 의료보건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약품과 기기를 효율적으로 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인쇄물, 동영상과 같은 전통 매체는 이제 부수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되고 있다.


    이렇듯 의료보건 시장의 확대와 매체의 다양화 덕분에 의료보건 전문 크리에이티비티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졌다. 선진국들에 비해 훨씬 늦게 출발한 우리나라 의료보건산업이 표적항암제 개발 등으로 최근 도약할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럴 때일수록 크리에이티비티가 필요하다. 오늘날 말하는 크리에이티비티는 멋진 광고작품을 만드는 기법이 아니다. 연구개발부터 시작해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사업 상 발생하는 전반적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다. 이제 꽃 피우기 시작한 우리나라 의료보건산업이 크리에이티비티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