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한진, 제3 동맹 외 선택지 없어… 정부, 용선료 협상 시한 제시하며 선주 압박
  • ▲ 구조조정협의체 참석한 금융위원장.ⓒ연합뉴스
    ▲ 구조조정협의체 참석한 금융위원장.ⓒ연합뉴스

    국제해운동맹(얼라이언스) 재편이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등 해운업체 구조조정의 변수로 떠오른 가운데 해운동맹 계약이 장기화하는 추세여서 업계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현실적으로 제3의 해운동맹에 가입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번 해운동맹 재편에서 한 번 빠지면 구조조정으로 빚더미에서 탈출해도 영업할 무대가 사라지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전문가들은 해운동맹 협상을 위해선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며 법정관리 언급은 도움이 안 된다는 견해다. 하지만 정부는 역으로 선사들의 용선료(선박 대여료) 최종 협상 시한을 제시하며 협상의 고삐를 죄고 나섰다.

    ◇내년 해운동맹 재편… 현대·한진, 제3 동맹에 무조건 들어가야

    해운동맹은 내년 3~4월 재편될 예정이다. 현재는 2M·CKYHE·O3·G6 등 4개 해운동맹 체계다. 이들 해운동맹에 포함된 16개 선사는 유럽~아시아~북미로 이어지는 동서항로 전체 수송량의 96%를 점유한다. 각 선사가 보유한 선박량과 운행 가능한 항로가 제한적이다 보니 서로 뭉쳐 정기적으로 물품을 실어나르는 체계를 만든 것이다. 한진해운은 CKYHE, 현대상선은 G6에 각각 들어가 있다.

    이들 해운동맹은 내년 계약 기간 만료를 앞둔 상태다. 각 선사는 내년 3~4월을 기한으로 새 판 짜기에 들어갔다.

    변화의 중심에는 3위 선사인 프랑스의 CMA-CGM과 4위인 중국의 코스콘(COSCON)이 있다. 이들은 대만업체 에버그린과 홍콩업체 OOCL을 끌어들여 세계 최대 해운동맹인 오션 얼라이언스를 결성키로 했다. 내년 4월 출범 예정이다.

    기존 1위 선사인 덴마크 머스크와 2위인 스위스 MSC가 뭉친 2M과 양대산맥을 이루는 셈이다.

    해양수산부는 나머지 선사가 헤쳐모여 제3의 해운동맹을 만들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4개 해운동맹이 3개로 재편되는 것이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제3의 해운동맹 가입밖에는 길이 없는 처지다.

    해수부 관계자는 "해운동맹은 최소 수개월에서 몇 년의 고민 끝에 틀이 갖춰지므로 2M이나 오션에 추가로 가입하기는 어렵다"며 "국내 선사의 선택지는 결국 제3의 해운동맹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는 제3의 해운동맹에 못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이라며 "무조건 가입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위기상황은 정부의 해운사 구조조정에도 변수로 떠올랐다.

    정부는 26일 금융위원회에서 임종룡 금융위원장 주재로 관계부처 차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3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를 열었다.

    정부는 이날 해수부·금융위·산업은행 등이 기획전담팀(TF)을 구성해 양대 선사가 해운동맹에서 제외되지 않게 지원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초기에는 채권단이 양대 선사의 채무에만 관심을 두었지만, 최근 해운동맹 가입의 중요성이 대두하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게 됐다"며 "선사를 어렵게 살려놓아도 영업할 무대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해운동맹 계약 장기화도 양대 선사가 이번 재편에서 살아남아야 할 이유로 꼽힌다.

    김우호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해운해사연구본부장은 "해운동맹 계약이 장기화하는 추세"라며 "이제는 한 번 해운동맹에서 빠지면 회생하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는 "중간에 해운동맹에 추가로 합류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볼 순 없지만,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김 본부장은 "G6가 2012년 계약 기간을 5년으로 잡았지만, 이후 2014년과 2015년에 계약한 O3와 CKYHE는 계약 기간이 각각 2년과 3년이었다"며 "이번에 오션이 다시 계약 기간을 5년으로 늘렸다"고 부연했다.

    지난해 계약한 2M도 2025년까지 10년간 장기계약을 맺었다. 세계 1·2위 선사가 장기적인 안목에서 손잡은 만큼 예외로 볼 수도 있다는 게 김 본부장 설명이다. 하지만 해운업계가 장기 불황에 빠지면서 안정적으로 물량을 확보하려는 추세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제3 해운동맹 동시 가입은 녹록지 않을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제3 해운동맹은 지난 21일 합병추진을 발표한 독일의 하팍로이드와 중동의 UASC가 중심이 될 전망이다. 하팍로이드는 현대상선과 함께 G6에 포함됐다. 반면 한진해운은 CKYHE 소속이다.

    해운동맹 가입이 만장일치제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선사 간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만큼 기존 G6 회원사가 제3 해운동맹에 가입한다면 한진해운이 협상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 있다는 견해다.

    ◇정부 "용선료 협상 안 되면 법정관리"… 해운동맹 잔류에 약 될까? 독 될까?

    정부는 이날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자구계획 중 핵심인 용선료 재협상과 관련해 협상 최종시한을 다음 달 중순으로 제시했다.

    임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협상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임 위원장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2026년까지 5조원의 용선료를 선주에게 줘야 하며 이는 시세보다 4~5배 많은 금액"이라며 "이런 상태에서 선사에 돈을 지원하면 결국 선주에게 돈을 주는 셈이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용선료 조정이 안 되면 이후 지원과정이 무의미해진다"며 "채권단이 선택할 옵션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뿐"이라고 강조했다.

    임 위원장은 "이달 중 선주들에게 최종 제안서를 통보할 예정으로, 의견을 주지 않으면 동의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후속조치에 들어가겠다"며 "자금을 빌려준 채권단(은행)만 손실을 보아서는 안되며 선주도 (손실을) 분담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선주들의 용선료 협상을 압박한 것으로 해석한다. 과거 STX팬오션과 대한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때 유럽 선주사들이 용선료를 못 받은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15일(현지시각)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현대상선을 기업 구조조정 부진의 대표 사례로 꼽은 것과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유 부총리는 주요 20개국(G20) 회의에 참석하려고 방문한 미국 워싱턴DC에서 기자들과 만나 "해운사 구조조정이 예정대로 되지 않으면 정부가 행동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제일 걱정되는 회사가 현대상선"이라고 말했다.

    반면 해운 전문가들은 해운동맹 재편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정부가 법정관리를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다.

    김 본부장은 25일 해운동맹 관련 대책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내년 3월이면 해운동맹이 재편되는 데 오는 5, 6월이면 (선사 간) 아주 깊은 관계(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며 "이 과정에 법정관리 얘기가 나오면 협상에 상당한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수부 관계자도 "(정부가) 빠른 의사결정으로 양대 선사를 살리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게 필요하다"며 "법정관리라는 부정적인 신호를 주면 해운동맹에 남아있기가 어렵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