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복원’ 민심 얻은 MB 청와대행, 민심 등진 오세훈 전 시장은 낙마
  • ▲ 지난해 12월 서울역 고가 폐쇄 당일, 시내 교통 흐름을 지켜보는 박원순 시장. ⓒ 사진 뉴시스
    ▲ 지난해 12월 서울역 고가 폐쇄 당일, 시내 교통 흐름을 지켜보는 박원순 시장. ⓒ 사진 뉴시스

박원순 시장이 지역 주민과 남대문시장 상인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서울역 고가 폐쇄 및 공원화 사업을 사실상 강행추진하면서 뒷말이 많다. 평소 SNS를 즐겨해 '트위터 시장'이란 별명이 붙을 만큼 시민들과의 '직접 소통'을 즐기는 박 시장의 평소 행태를 생각할 때,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에 대한 그의 행보는 이례적이다.

물론 박 시장은 이 사업을 앞두고 현장에서 지역 주민 및 시장 상인을 만나 의견을 수렴하는 등, 특유의 직접 소통에 나섰다. 그러나 박 시장이 최대 강점으로 내세우는 '직접 소통'도 이번만은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

주민들은 “서울역 고가 아래는 지금도 상습 혼잡 구간”이라며, 고가 폐쇄는 차량흐름의 극심한 정체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박 시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시장 상인들은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시장을 찾는 발길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의 출입구나 다름이 없는 고가를 선제적 대안 없이 폐쇄부터 하겠다는 시의 방침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주민과 상인들의 거듭된 반발도 박 시장의 뜻을 꺾지는 못했다. 결국 박원순 시장은 지난해 말 예정대로 서울역 고가의 차량 통행을 전면 통제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서울시는 '서울역 7017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사업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는 폐쇄된 서울역 고가를, ‘서울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 아래, 국제현상 공모까지 실시했다.

이런 박 시장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정치인 박원순’이 전임자들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역대 서울시장의 정치적 존재감 내지 영향력은 대단했다. 조순 전 서울시장은 성공한 경제학자에서 야권을 대표하는 중량감 있는 정치인으로 변신했고, 고건 전 종리는 한때 집권 여당의 집중적인 구애를 받던 유력 대권주자 반열에 올랐다.

청계천 복원과 버스중앙차로 사업으로 전 국민의 눈길을 끄는데 성공한 이명박 전 시장은 재임 당시의 성과를 바탕으로, 청와대의 주인이 됐다.

그 뒤를 이은 오세훈 전 시장은 한강르네상스, 새빛둥둥섬,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경인운하(아라뱃길) 등 눈길을 잡아끄는 초대형 토목사업을 잇따라 벌이면서, 광폭 행보를 이어갔다. 그가 향하는 목적지가 청와대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그는 대권을 향한 열망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특히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대통령 당선은, 서울시장 자리가 대권을 향하는 ‘중간 기착지’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전임자들의 이런 과거 행적을 토대로 할 때, 박원순 시장이 보여주는 현재의 모습은 예사롭지 않다.

취임 당시 전임자의 토목 사업을 ‘전시 행정’이라고 비난하면서, "(대규모 건설 혹은 토목사업과 관련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시장으로 남고 싶다"고 했던 그의 첫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서울시장 박원순의 변신은 놀랍다.

서울역 고가를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구상은, 이명박 대통령의 청계천 복원, 오세훈 전 시장의 새빛둥둥섬 프로젝트를 연상시키는데 부족함이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오세훈 전 시장도 이들 사업을 추진하면서,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드', '서울의 상징'이란 수식어를 앞세웠기 때문이다.

서울의 상징을 만드는데 성공한 전임자는 17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됐고, 랜드마크 조성에 실패한 전임자는 얼마 전 끝난 4.13 총선에서 큰 표 차로 낙선하면서, 정치인으로서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박원순 시장이 대형 토목행정의 '가치'에 새롭게 눈을 뜨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역 고가 철거 및 공원화 사업은 박 시장이 2014년 미국 뉴욕을 방문해, 하인리히 파크를 둘러본 뒤 급물살을 탔다. 그 전까지만 해도 박 시장은 서울역 고가를 공원으로 만들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만약 그의 뉴욕 방문이 2014년이 아닌 2011년쯤이었다면 어땠을까?
전임자의 대형 토목 사업에 매우 비판적이었던 박원순 시장의 취임 초기 모습을 떠올린다면,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서울 강남 영동대로 지하에 잠실야구장 30배 크기의 초대형 지하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도, 박원순 시장의 취임 초기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토목공사다. 이 사업에는 국가 예산 4천억원, 서울시 예산 5천억원, 민자 2천5백억원 등 모두 1조 1,691억원의 돈이 들어간다.

박 시장이 임기 초반과 달리 과감한 행보를 보이면서, 그가 최근 추진하는 주요 정책들도 연장선상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관측이 있다.

박 시장이 중앙정부와 소송 전까지 벌이면서 강행 추진하는 '청년 수당제'나, 중앙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는 '광화문광장 태극기 게양대 설치 사업' 등은, '대권'이라는 욕망 혹은 야망에 눈을 뜬 박 시장이, 그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던진 승부수라는 분석이 그것이다.

박 시장은 “시정에 전념하겠다”, “시장으로서의 임기를 마치겠다”며 우회적으로 대권 도전에 뜻이 없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지만, 그를 야권의 잠재적 대권주자로 인정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때문에 그의 발길이 향하는 마지막 종착지가 어디가 될 지는, 언론은 물론 정치권의 비상한 관심사항이 될 수밖에 없다.

박원순 시장이 두 전임자 가운데 누구의 길을 따라가게 될 지는 알 수 없다.

청계천 복원과 버스중앙차로 개선은 시민들의 마음을 얻었지만, 이름조차 낯선 새빛둥둥섬은 시민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을 받았다. 민심을 얻은 사람은 결국 대권을 움켜쥐었고, 민심을 등진 사람은 고개를 떨궈야 했다. 같은 토목공사라고 해도, 이처럼 결과는 극명하게 갈린다.

박원순 시장이 각별하게 공을 들이고 있는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이 어떤 평가를 받을 지는 조금 더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그가 성공한 시장으로 남게 될지 여부가, 결국 ‘민심’에 달려있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