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연구원 보고서, 'E-BUS' 사례 소개...'수요 대응형 버스 서비스' 도입 검토 제안
  • ▲ 경기도와 인천시에서 서울을 오가는 수도권 광역버스의 모습. ⓒ 사진 연합뉴스
    ▲ 경기도와 인천시에서 서울을 오가는 수도권 광역버스의 모습. ⓒ 사진 연합뉴스

     

    지난달 26일 서울시가 경유를 연료로 쓰는 광역버스에 대한 출입 통제 방침을 밝히면서 촉발된, 수도권 3개 시도간 갈등이 갈수록 깊어지면서, 근본적인 해법 마련을 위해서는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와 관련해 5년 전 한국교통연구원이 펴낸 연구보고서 ‘수도권 수요대응형 버스 서비스 도입방안 연구’는, 수도권 광역버스 운영 체계가 안고 있는 난제를 풀 수 있는, 유용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연구원이 2011년 7월 31일 발간한 이 연구보고서는, 2010년 말 경기 용인 등 일부 지역에서 약 3주 동안 시행된 ‘E-BUS’라는 이름의 서비스에 주목하면서, 수도권 광역버스 운행체계 개선을 위한 장단기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이 보고서는 수도권 광역버스 갈등이 안고 있는 상습적인 교통혼잡, 입석 운행에 따른 위험 증가, 이용객 불편 가중 등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꿀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대중교통에 대한 이용자의 요구는 다양해지고 있는데, ‘공급자 중심’의 버스 교통 정책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고객의 요구를 적극 반영한 새로운 유형의 버스 서비스가 시장에 착근할 수 있도록, 관련 법제를 정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보고서가 소개하고 있는 ‘E-BUS’ 사례는, 수도권 광역버스 갈등의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끈다.

    ‘E-BUS’는 경기도에 살면서 매일 아침 서울로 출근하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목적지 맞춤형 통근버스'로, 2010년 말 경기 용인 등 일부 지역에서 약 3주 동안 시행됐다.

    ‘E-BUS’ 운영 업체는, 통근버스 이용을 원하는 주민들과 전세버스 업체를 연결해 주는 일종의 중계서비스를 제공했다.

    예를 들어, 경기 용인에서 서울 강남역까지 이동을 원하는 사람들이 20명 이상 모이면, 회사가 이들 주민을 전세버스 운영업체와 중계해 주는 방식이다.

    ‘E-BUS’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입석의 불편 없이 편하게 출근을 할 수 있다는 점(지정좌석 예약 가능), 목적지는 물론 경유지도 주민들이 합의로 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 광역버스와 비교할 때 출근시간이 줄어든다는 점 등이 큰 장점으로 꼽혔다.

    이 서비스는 시작과 함께 입소문을 타고 급격히 확산됐다. 2010년 연말 처음 운영에 들어간 ‘E-BUS’는 경기 용인에서만 신청자가 1천명이 넘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 서비스는 운영 3주만에 중단됐다.

    2011년 2월 국토해양부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4조에 의해 운송사업 면허를 받지 않거나 등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법"이란 판단을 내렸다.

    ‘E-BUS’이용자들은 당국의 서비스 금지 처분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시민들은 "당국이 대책도 없이 금지부터 했다"며, 정부의 처분에 불만을 터트렸다.

    실정법을 기준으로 할 때, 당국의 처분을 비판만 할 수는 없다. ‘E-BUS’를 운영한 업체가 법률이 정한 절차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E-BUS’는, 수도권 광역버스 운영 체계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E-BUS’의 핵심은, 고객이 노선을 직접 설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목적지와 경유지, 출발지점과 시각 등을 고객이 지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버스 교통 체계와 차별화된다. 만약 이런 서비스가 합법화된다면, 매일 아침 출근길 전쟁을 치치르는 수도권 직장인들에겐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연구원은 ‘E-BUS’에 대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노선을 편하게 이용하고 싶은 이용자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서비스"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런 서비스가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관련 법제의 정비가 우선돼야 한다. 교통연구원도 위 보고서를 통해 이런 점을 지적하고 있다.

    교통연구원은 수도권 광역버스가 안고 있는 문제로, 수요 공급의 불균형, 공급자 중심 서비스 운영, 노선 조정 및 증차 협의 등의 장애, 이용자의 이기심과 공급자의 수익 추구, 광역버스 서비스에 대한 행정기관의 소극적 대응 등을 꼽았다.

    이어 교통연구원은 '수도권 수요 대응형 버스 서비스 도입'을 위한 단기적 대안으로, 전세버스 운송사업의 사업범위 확대,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시행령 상 '공동운수협정' 체결 대상 확대, 같은 법 시행규칙의 개정 등을 제시했다.

    연구원은 중장기적 대안으로, '여객자동차 운송 주선 사업'을 새로 만들고, 여객자동차 운송사업 유형에 '수요 대응 여객운송사업' 신설을 제안했다.

    광역버스 운행과 관련된 서울-경기·인천 3개 市道간 갈등이 깊어지면서, 지역 시민단체들까지 나서고 있다.

    지난달 31일 시민단체 글로벌에코넷은 인천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의 경유 광역버스 출입 제한 검토 계획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단체는 “미세먼지 때문에 인천 경유버스의 서울 운행을 제한한다면, 미세먼지가 훨씬 더 많이 발생하는 인천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력의 서울 공급을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수도권매립지 사용 기간을 연장키로 한 환경부와 서울·경기·인천시 4차 협의체 합의도 파기할 것을 요구했다.

    수도권 3개 시도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정부의 역할론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수도권 광역버스를 둘러싼 논란은, 지방정부의 합의 내지 협치로 풀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이런 의견은 설득력이 있다.

    한 국립대 교수는 "수도권 버스전쟁을 소지역 이기주의 내지 지방정부간 갈등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국가 교통정책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