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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야?, 음료수야?"
지난해 주류 업계를 강타한 저도 과실주 열풍이 올해 탄산주로 확산되는 가운데 알록달록한 패키지 때문에 주류를 일반 음료수와 혼돈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어 세심한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주부 김수현 씨(가명·38세)는 최근 마트에서 장을 보다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남편과 7살 된 딸아이가 즐겨마시는 소다 음료수인 줄 알고 골라든 음료가 자세히 보니 알코올이 함유된 술이었기 때문이다. 롯데주류의 과일탄산주 '순하리 소다톡 사과'는 용기 하단에 한자로 酒(술 주)를 표기했지만, 이를 읽지 못할 경우 음료수로 오인할 수 있다.
김 씨는 "병 모양부터 색상까지 비슷해 아무 생각없이 술을 살 뻔 했다"면서 "요즘 과실주가 유행이라고는 들었는데 병 모양이며 디자인까지 음료수와 너무 똑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계산 전에 술이라는 걸 알아서 다행"이라면서 "화려한 색상의 과일맛 음료수 용기처럼 디자인돼 술인지 모르는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이 혼돈해 마시지는 않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
실제 기자가 지난 1일 둘러본 서울 주요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저도 과일주와 탄산주의 경우 대부분 일반 음료수와 유사한 디자인의 병, 캔, 페트(PET) 제품이 유통되고 있었다.
이러한 주류 제품은 알록달록한 색상과 귀여운 캐릭터까지 들어가 있어 뒷면에 씌여진 식품 정보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술이라는 사실을 알아채는 것이 쉽지 않았다. -
이날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던 직장인 박정수 씨(가명·36세)에게 하이트진로에서 출시한 '이슬톡톡'을 보여주며 어떤 제품인지 아느냐고 묻자 "어디서 많이 본듯한 복숭아 음료수 같다"고 답했다.
음료수가 아닌 알코올이 들어간 주류 제품이라고 알려주자 그는 "이게 정말 술이냐"면서 "디자인도 귀엽고 색상도 예뻐서 당연히 음료수인줄 알았는데 술을 이렇게 만들어도 상관없냐"고 되물었다. -
대형마트의 경우 주류 코너가 따로 마련 돼 있어 소비자들이 주류 제품인 것을 쉽게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매장이 좁은 편의점의 경우 음료수가 진열된 바로 윗 칸이나 옆 칸에 주류 제품이 진열돼 있어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
실제로 서울역 근처 편의점 5곳을 돌아본 결과 협소한 공간 때문인지 음료수가 진열된 바로 윗 칸이나 옆 칸에 나란히 알록달록한 주류 제품이 진열돼 있었다.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구입 후 냉장고에 보관할 때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음료수로 착각해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고시한 '식품 등의 표시 기준'에 따르면 주류의 경우 식품 유형과 제조연월일을 표시해야 한다.
주류 중 과실주의 경우 에탄올의 함량을 표시해야 한다. 주원료의 종류에 따라 포도주, 사과주, 딸기주 등으로, 포도주는 색상에 따라 적포도주, 백포도주, 홍포도주 등으로 표시할 수 있다.
탄산가스를 함유한 제품은 그 내용을 표시해야 하는 등의 기준을 갖고 있지만 이러한 주류 제품에 사용할 수 있는 색상이나 디자인 등과 관련한 기준은 마련 돼 있지 않다. 현행법상 이를 규제할 마땅한 제도가 없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국내에서만 30여종에 이르는 다양한 과실주와 탄산주가 봇물터지듯 쏟아졌다"면서 "젊은 2030 여성층을 주요 타깃으로 한 제품인 만큼 여심을 공략할 수 있는 예쁜 색상과 디자인을 만들다보니 대부분의 제품이 일반 음료수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어 "담배갑에는 무시무시한 폐암 경고 사진과 섬짓하기까지한 경고 문구가 크게 박혀 나오는 반면 주류 제품에는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귀여운 캐릭터와 알록달록한 디자인과 색상이 허용되는 것을 보면 술에는 너무 관대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달콤하고 알코올 도수가 낮다고 해도 '술'은 '술'일 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