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신조펀드 적용대상 벌크선·항만 터미널 등으로 확대 추진현대상선의 한진해운 핵심자산 인수 우회 지원 가능법원의 공개입찰 과정에서 특정업체 밀어주기 논란 우려
  • ▲ 현대상선.ⓒ연합뉴스
    ▲ 현대상선.ⓒ연합뉴스

    해양수산부가 현대상선을 육성·지원하는 문제를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서둘러 대형 국적선사를 육성할 필요가 있지만, 이 과정에서 자칫 특혜 시비에 휘말릴 수 있어서다.

    20일 해수부와 해운업계 전문가에 따르면 정부가 1조4000억원 규모 선박 신조 지원 프로그램(선박 신조 펀드)의 적용을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달 말 해운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하는 해수부는 선박 신조 펀드를 선박 신조에만 국한하지 않고 해운 관련 인프라 확장 등에 폭넓게 활용하는 방안을 관계 부처에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정부가 선박 신조 펀드의 지원대상을 컨테이너선에서 벌크선 등으로 조기에 다양화하려 한다는 지난달 뉴데일리경제의 보도 내용보다 한 발 더 나간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말 1조4000억원 규모의 선박 펀드 조성을 승인한 상태다. 이는 1만3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10척을 건조할 수 있는 규모다. 금융위는 우선 대형 컨테이너선을 지원한 뒤 추후 수요를 봐가며 펀드 규모를 확대한다는 방침으로, 대상 선종도 다양화한다는 구상이었다. 업계에서는 대형 선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선박 신조 펀드의 우선 수혜자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현대상선이 선박 신조 펀드 활용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면서 펀드가 활용되지 못한 채 사장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해수부는 펀드의 적용 대상을 중소 연근해선사나 벌크 선사로 확대하겠다는 태도였다.

    해수부는 선박 신조 펀드 적용 대상 확대와 관련해 "해운업 관계자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여러 방안을 관계부처와 협의하고 있으나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확정된 게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벌써 업계에선 한진해운의 미주노선 인수전에 뛰어든 현대상선이 선박 신조 펀드를 지원받아 한진해운의 핵심자산을 인수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14일 한진해운의 아시아∼미주노선 물류 시스템과 해외 자회사 7곳, 컨테이너 선박 5척, 노선 담당 인력 등을 매각한다는 공고를 냈다. 구체적인 매각 자산 목록은 공개되지 않았다.

    현대상선은 오는 28일 마감되는 미주노선 인수 예비입찰에 참여할 계획이다.

    노선 핵심 인프라에는 통상 선박과 항만 터미널, 영업망 등이 포함된다. 해수부 안대로 선박 신조 펀드 적용 대상이 해운업 관련 인프라로 확대되면 현대상선이 펀드를 지원받아 미주노선 인수에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업계에선 특히 현대상선이 선박 신조 펀드를 통해 한진해운이 보유한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롱비치터미널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미주노선 경쟁력을 강화할 거로 전망한다. 한진해운은 롱비치터미널 지분 54%를 보유하고 있다.

    일각에선 롱비치터미널의 지분계약이 복잡해 현대상선이 지분을 획득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롱비치터미널의 2대 주주는 세계 최대 해운동맹 2M의 스위스 국적 해운사 MSC(46%)로, MSC는 한진해운 지분에 대한 우선매수 청구권을 갖고 있다. 한진해운이 자사 지분을 팔 때도 MSC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해운 전문가들은 "(해당 내용에 대해) 정부 부처 간 협의가 진행 중이라면 지분 인수가 가능하기 때문이 아니겠냐"며 긍정적인 반응이다.

    해운업 주무부처인 해수부의 고민은 선박 신조 펀드 활용 폭을 넓히는 게 자칫 특정 업체에 대한 특혜 시비로 번질 수 있다는 데 있다.

    한진해운의 자산매각은 법원 주도로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이뤄지는 가운데 해수부의 선박 신조 펀드 활용에 관한 제안이 특정 업체에 대한 지지나 우회적인 지원으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진해운 자산 매각을 법원이 진행하고 있고, 입찰에 경쟁사가 참여할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해수부 처지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심정적으로는 한진해운의 알짜 자산이 외국 선사나 해외 자본에 넘어가는 게 불편하지만, 대놓고 나서기가 어렵다"고 귀띔했다.

    다른 해운 전문가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해운 운임이 유럽노선은 50%, 미주노선은 100% 올랐다는 얘기가 나온다"면서 "대형 국적선사의 공백이 큰 만큼 (해수부로선)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인프라를 흡수해 공백을 메워주길 바라지만, 그런 견해를 공식적으로 나타낼 수 없으니 입장이 난처할 것"이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