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 침체·국제유가 반등 효과 미미…악재 여전만기도래 회사채 1.5조원…"유동성 악화 유발 리스크"
  • ▲ 국내 한 건설공사 현장. ⓒ뉴데일리경제 DB
    ▲ 국내 한 건설공사 현장. ⓒ뉴데일리경제 DB


    "최순실 게이트 덕에 SOC 예산이 좀 늘어나긴 했지만, 예전에 비하면 한참은 모자란 수준이죠. 국제유가도 반등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무슨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주택시장 분위기 꺾이는 거야 다들 아는 사실이고…. 사업계획 짜는 부서에서도 힘들다고 합니다. 정치판도 정신없어서 대선 공약에 기대할 것도 없고 어떻게 버틸 지 걱정입니다." (중견건설A사 관계자)

    10대 건설사들의 현금성 자산 등 단기간에 운용할 수 있는 비용이 줄어들고 있다. 유동비율 역시 감소세다. 서서히 현실화되고 있는 주택경기 불황에 해외건설 불확실성까지 더해진 내년 건설경기 전망에 유동성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22일 10대 건설사의 별도 재무제표를 자체 분석한 결과 3분기까지 누적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모두 9조4102억원으로, 지난해 3분기(10조5400억원)에 비해 10.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사별로는 각각 3.4배, 1.2배 늘어난 현대산업개발과 현대건설을 제외한 8개사가 모두 줄어들었다. 포스코건설이 55.1% 줄어들면서 가장 큰 감소폭을 기록했으며 이어 △롯데건설 48.4% △대우건설 26.9% △삼성물산 21.1% △SK건설 17.8% △현대엔지니어링 15.1% △대림산업 12.7% △GS건설 1.6% 등의 순으로 감소폭이 컸다.

    유동비율 역시 줄어들고 있다. 10대 건설사의 유동비율은 지난해 140.4%에서 138.4%로 2.03%p 감소했다.

    유동비율은 기업이 보유하는 지급능력 또는 그 신용능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신용분석적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 중 하나다. 이 비율이 높을수록 그만큼 기업의 재무유동성이 크다는 뜻이며 일반적으로 200% 이상을 우량하다고 본다.

    업종이나 기업 규모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에 표준비율은 아니지만,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동비율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건설사별로는 대우건설 -32.6%p, 롯데건설 -17.5%p, 삼성물산 -10.3%p 등의 순으로 줄어들었다.

    문제는 지금과 같은 재무구조로 내년에 불어닥칠 파고를 넘을 수 있느냐다.

    가장 먼저 최근 건설사들이 그나마 실적을 이어갈 수 있었던 국내 주택시장에 쏟아지는 악재다. 분양시장이 호황이던 2014년 이후 쏟아진 신규분양 아파트가 내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입주시즌에 들어간다.

    국토교통부 집계 결과 내년 1분기 전국 입주 예정 아파트는 7만8534가구로, 지난해보다 31.2% 늘었다. 1분기 입주물량으로는 2010년 이후 6년 만에 최대치다. 특히 수도권은 올해 1분기보다 80% 증가한 3만2761가구에 이르며 서울도 1만2242가구로, 올 1분기의 두 배가 넘는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내년부터 2년간 입주물량이 크게 늘면서 지역에 따라 과잉공급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미국 금리인상의 경우 건설사 입장에서는 잔금회수에 차질을 빚을 수 있어 또 다른 악재로 지적된다. 시장에 물건이 많이 공급되면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커지는데, 최근 정부가 가계부채 억제를 위해 시장규제에 나서고 미국 금리인상으로 벌써 시중금리가 올라가고 있다. 이로 인해 주택수요가 줄면서 가격하락폭이 더 커질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때문에 시장에서는 지난 3년간 건설사마다 사상 최대 규모의 주택분양을 쏟아낸 만큼 가격 하락과 미입주가 발생했을 때 많은 건설사가 적잖은 위기에 직면할 수 있으므로 입주대책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허윤경 건설산업연구원 박사는 "이미 일부 건설사들은 대출규제 강화에 대비해 잔금대출을 해줄 수 있는 제2금융권을 모색하는가 하면, 인근 부동산에 세입자 주선을 요청해놓고 있다"며 "건설사 입장에서도 미입주에 따른 자금부족을 전제로 자금계획을 수립하고 그동안 확대한 주택사업과 주택 관련 조직·인원을 조정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국제유가 반등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해외건설 역시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올해에 비해 소폭 증가할 수는 있지만, 큰 폭의 상승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후보의 당선으로 미국 내 원유생산이 증가할 경우 저유가 기조가 장기화될 수 있어 중동 산유국들의 발주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대형건설 B사 관계자는 "중동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이상 대규모 발주는 기대하기 어렵다"며 "올해 해외수주가 극심한 상황에서 내년 주택경기 전망까지 확실해지고 있어 몸집 줄이기에 나설 수 밖에 없는 처지"라고 호소했다.

    실제로 12월22일 기준 해외건설 신규수주액은 243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461억달러)의 52.8% 수준에 머물고 있다. 2006년 이후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더 큰 문제는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다. 10대 건설사의 만기도래 회사채 물량은 모두 1조5000억원으로, 30대 건설사의 전체 만기도래 회사채(2조300억원)의 73.8%를 차지한다. 현대건설 3000억원, 대우건설 2500억원, 대림산업·GS건설·포스코건설 2000억원 등이다.

    내년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를 보유한 건설사 중 현금성 자산이 많지 않아 차환에 성공하지 못하면 일시적으로 자금난에 빠질 우려가 있다. 차환은 만기가 돌아온 회사채를 상환하기 위해 회사채를 새로 발행하는 것을 뜻한다.

    하반기에 일부 대형사의 회사채 발행이 흥행하면서 건설 회사채시장에 '반짝' 온기가 불었으나, 여전히 채권시장에서 건설 회사채 기피 현상이 뚜렷한데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서 시장금리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돼 건설사들의 자금조달 여건이 만만치 않다는 게 중론이다. 높아진 이자비용을 추가하면 유동성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직접금융(주식·회사채)시장이 침체되면서 적기에 자금을 융통하기가 쉽지 않다"며 "국제유가 하락 등으로 몇년째 침체된 글로벌 경기와 주택경기 침체 현실화 등으로 기업의 자금 보유능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향후 있을지 모를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유동성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도 "여전히 주요 건설사들이 해외 프로젝트에서 미청구공사 등 잠재위험을 안고 있는데다 10대 건설사라고 하더라도 대부분 유동성이 높지 않은 편이기 때문에 내년 이후로는 더욱 유동성 관리에 힘쓸 필요가 있다"며 "주요건설사들의 실적 유지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