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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유가와 글로벌 경기침체, 국내 주택시장 호황 그리고 연이은 대형건설사들의 어닝쇼크 등으로 하락세를 이어왔던 해외건설이 새해에는 반등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건설사들의 수주전략 수정과 미뤄졌던 발주물량들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풀릴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3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동안 국내 건설기업들이 수주한 신규 해외프로젝트는 모두 281억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2015년 461억달러 보다 38.9%, 2014년 660억달러에 비해서는 57.2% 줄어든 수치일 뿐 아니라 2007년부터 최근 10년 간 가장 낮은 해외수주 기록이다.
지역별로는 중남미(16억달러)에서 64.2% 급락하면서 가장 크게 줄어들었으며, 이어 △태평양·북미(13억달러) -62.1% △유럽(5억달러) -37.8% △아시아(126억달러) -35.7% △중동(106억달러) -35.3% 등의 순으로 감소했다. 아프리카(12억달러)는 유일하게 증가(+38.3%)했다.
이 같은 해외수주 급감은 글로벌 경기침체와 장기화된 저유가가 주된 원인이다. 국제유가가 반등하지 못하자 중동 산유국들의 재정상황이 개선되지 못하면서 발주 자체가 줄어들거나 지연된 것이다.
또한 2009~2012년 급속히 늘어난 저가수주 현장 여파가 지난해까지 '어닝쇼크' 등으로 이어진 데다 최근 몇 년 간 국내 주택시장이 호황을 맞으면서 건설사들이 해외진출에 소극적이었던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A투자증권 건설 담당 애널리스트는 "올해 해외 실적 부진은 중동 산유국의 재정 악화와 저유가 여파로 인한 발주 지연 및 감소 때문"이라며 "여기에 국내 주택시장 호황이 맞물리면서 전반적인 해외수주액이 급격히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체 수주의 90%가량을 도급사업에 치우쳐 있는 구조도 지적된다. 최근 해외수주 환경은 단순 도급사업에서 벗어나 PPP(민관협력) 형태의 투자개발사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월드뱅크 집계 결과 전 세계 투자개발형 사업규모는 2004년 232억달러에서 2014년 1075억달러로, 10년새 4배 이상 증가했다.
해외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국가 재정사업보다는 민자사업이 늘어나고 있다. 단순 도급형태에서 벗어나 '디벨로퍼'로 거듭나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라며 "최근의 발주물량 감소도 해외 민자사업에 대한 미숙한 경험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국내 건설기업들이 타국 건설기업보다 더 큰 타격을 입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중국의 경우 부족한 기술력에도 정부의 전폭적인 자금 지원으로 굵직한 고속철 프로젝트를 잇따라 따냈다"며 "업체도 리스크 분석을 통해 선별적 투자에 나서야 하지만, 정부 역시 나서서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정책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건설사들은 일단 2015년 후반부터 프로젝트 수익성에 초점을 두고 선별적인 수주에 나서는 모습이다. 또 국내 ECA(공적수출신용기관) 자금이 투입된 사업이나 MDB(다자간 개발은행) 사업 등 안정적인 사업을 바탕으로 투자개발형 사업을 도모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바꾸고 있다.
국내 건설기업들의 수주전략 수정과 함께 그동안 사업추진이 지연됐던 대형 해외프로젝트가 올해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최근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산유량 감산 합의가 이뤄진 후 유가가 25%가량 급등하면서 중동 국가 프로젝트들에 대해 긍정적인 시그널이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는 "OPEC 감산 합의로 국제유가가 반등 추세에 있는데, 유가가 60달러 선을 회복하게 될 경우 산유국들의 재정 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되고, 발주물량도 계속해서 미룰 수 없는 만큼 중동에서의 수주 여건이 나아질 것"이라며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의 강세로, 아시아 신흥국들은 여파가 있을 수 있지만, 수주 방향을 좌우할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발주처가 쿠웨이트 스마트시티 사업 관련 세부내용을 일부 수정하면서 지난해 예정됐던 설계발주가 올해로 넘어왔다. 올해 초 설계용역 계약이 체결되면 이후 건설공사 수주에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4조6000억원대에 달하는 쿠웨이트 신도시 조성 사업에 국내 건설사들의 진입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대우건설과 한화건설이 현지 건설사와 공동 시공을 맡은 사우디아라비아 신도시 프로젝트도 상반기 중 본계약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우디에 10만가구 규모의 신도시를 건설하는 본 프로젝트는 사업비만 23조원에 달해 사상 최대 해외건설 수주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지만, 지난 3월 MOU 체결 후 아직 본계약에 이르지 못했다.
이 밖에 저유가로 발주가 지연됐던 오만 두쿰, 바레인 밥코 정유시설 사업 등 중동 대형 프로젝트나 동남아시아 및 중앙아시아 신규 발주, 북아프리카 플랜트 발주 등이 내년 본격화되면 건설사들의 해외 실적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대형건설 B사 관계자는 "지난해 반토막 났던 해외수주가 올해는 회복세로 돌아선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기대를 갖고 있다"며 "올해는 정부 규제로 국내 주택사업에만 전적으로 의존할 수도 없는 상황인데다 중동에서 메가 프로젝트 입찰이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적극적인 해외수주로 돌파구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