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사우디서 잇달아 2조9000억원 어치 계약해지 통보"해지통보 의견차이만 아닐 것"… 사우디에 미운털 박혔나
  • ▲ 삼성엔지니어링 글로벌비지니스센터 이미지. ⓒ삼성엔지니어링
    ▲ 삼성엔지니어링 글로벌비지니스센터 이미지.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엔지니어링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2조원이 넘는 계약해지를 겪으면서 수주잔고가 바닥을 치고 있다. 매출과 직결되는 수주잔고가 줄어들면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가운데, 그룹 지원은커녕 해외수주 환경도 어려운 만큼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9일 지난달 삼성ENG는 사우디아라비아 해양담수청(SWCC)이 발주한 1조6000억원 규모 얀부 발전 및 하수담수 플랜트 계약해지를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계약해지 사유는 발주처인 SWCC와 삼성ENG가 공사비 증액 등 계약조건 변경에 대해 협상하던 중 SWCC가 공사타절을 통보하면서다.

    문제는 이에 앞서 지난해 3분기에도 1조3000억원 규모 카자흐스탄 발하쉬 화력공사 계약이 해지된 바 있다는 점이다. 

    삼성ENG 수주잔고는 2013년 15조6360억원에서 △2014년 12조850억원 △2015년 12조430억원 △2016년 7조8163억원으로 매년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4년 새 반토막 난 셈이다. 건설업 특성상 수주잔고가 향후 매출과 직결되는 점을 감안할 때 매출감소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연간 실적 기준으로 삼성ENG는 흑자전환(영업이익 701억원·순이익 94억원)에 성공했지만, 지난해 4분기에는 사우디 얀부 발전 프로젝트 계약해지에 따른 일회성 비용 1982억원이 반영되면서 영업손실 133억원·당기순손실 33억원을 기록했다.

    김형근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얀부 프로젝트는 적자현장으로, 수익성과 사업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수주가 공사계약 해지로 이어진 사례"라며 "이번 계약해지로 수주잔고가 급감해 앞으로 매출감소는 물론, 기존 해외 저가수주에 대한 추가손실도 1년 내 반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유동성 문제다.

    삼성ENG는 2013년 중동현장에서 발생한 손실로 1조원 영업손실을 낸 데 이어 2015년에도 1조5000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초 1조2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하면서 턴어라운드에는 성공했지만, 유동성 압박은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삼성ENG 영업활동현금흐름은 2015년 -6836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 1분기부터 3개 분기 연속 △-2331억원 △-774억원 △-1274억원 마이너스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영업활동현금흐름은 기업이 외부 재무자원에 의존하지 않고 차입금 상환, 영업능력 유지, 배당금 지급 및 신규투자 등을 할 수 있는 지를 판단하는 주요 지표다. 일반적으로 재고자산이 늘거나 결제조건이 악화돼 매출채권이 증가하는 등 운전자금 부담이 늘어난 경우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삼성ENG 3분기 말 기준 매출채권 규모는 모두 9327억원으로 전년동기 5896억원에 비해 36.7% 늘어났으며, 같은 기간 크게 개선된(-850.0%p) 부채비율도 여전히 다른 상장 대형건설사에 비해 높은 수준(340.2%)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채상욱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초 유증을 통해 자본을 확충했지만 아직 관계사 및 기타사업을 통한 수익성이 충분히 발휘되지 않고 있다"며 "영업활동현금흐름 개선을 통한 자본 및 재무구조 안정화가 필수"라고 판단했다.

    결국은 신규수주 확보가 가장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동안 줄어드는 수주잔고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룹공사 덕분이었다. 안정적인 수주고를 올리면서도 손실을 소폭이나마 만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삼성ENG가 지난해 3분기까지 그룹 계열사로부터 수주한 금액은 모두 3조8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전체 수주액의 84.2%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지난해 1월 세계 최대규모 바이오플랜트인 삼성바이오로직스 제3공장 수주에 성공한 것이 실적개선에 큰 도움이 됐다.

    그러나 올해 이후 상황은 불확실성 투성이다. 삼성그룹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검찰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과 운신의 폭이 줄어든 삼성그룹이 그룹 구조조정을 기존과 같이 쉽게 진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룹 차원의 지원이 불투명한 상황인 만큼 삼성ENG 위상 역시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그룹 공사의 경우 대부분 입찰경쟁이 없는 수의계약이라 입찰비용이 적어 안정적인 수주가 가능해 수주가뭄으로 어려움을 겪는 건설사에게는 '가뭄의 단비'와 같은 존재지만, 내부수주 확대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며 "그룹 지원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획기적인 수익성 제고가 없는 이상 기존에 누렸던 '삼성 프리미엄'도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시장 역시 여전히 버겁다. 지난해 우리 건설업계는 해외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지난해 국내 건설업계 신규 해외수주액은 모두 281억달러로, 전년 461억달러에 비해 38.9% 줄어들었다. 이는 2006년164억달러 이후 10년 만에 최저치다.

    올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난달 국내 건설사의 해외건설 수주액은 16억달러로, 지난해 1월 29억달러에 비해 43.3% 줄어들었다. 2012년 1월 15억달러 이후 5년 만에 최저치다. 이는 국제유가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으면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이 지난해 감산을 결정해 국제유가가 소폭 올랐다. 배럴당 최저 30달러 선까지 하락했던 국제유가가 지난해 12월 이후 두 달 가까이 50달러 선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셰일오일업체들이 산유량을 늘릴 전망이라 국제유가가 다시 하락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유가가 약세를 보이면 '오일머니'가 부족한 중동 지역 발주처가 신규사업 발주를 줄일 수밖에 없다. 안정적인 사업비 마련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밖에 기업 이미지 제고에도 힘을 쏟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두 사업 모두 EPC방식으로 계약했지만, 결국 공사를 마무리 짓지 못 한 채 손을 떼게 되면서 오점을 남기게 됐다. 특히나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에서의 향후 사업전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발주처인 SWCC가 국영기관이라는 점에서 삼성ENG가 현지에서 영업활동을 벌이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해외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공사가 55%나 진행된 대규모 프로젝트 계약에 대해 해지통보를 했다는 것은 발주처가 상당한 리스크를 짊어진 것"이라며 "타절까지 간 것은 단순히 의견차이라는 표면적인 이유 외에 또 다른 사연이 있지 않을까"고 말했다.

    한편, 삼성엔지니어링 한 관계자는 "카자흐스탄 사업은 진행이 원활하지 않으면서 이미 수주잔고에서 빠져 있던 프로젝트이고, 사우디 프로젝트의 경우 관리 중이던 현안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며 "양적으로는 줄어들었지만, 질적으로는 건전화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사우디 샤이바 프로젝트가 완공됐고, UAE 카본블랙 정유공장 공사도 90% 이상 진행되는 등 현안 프로젝트들이 정리되고 있다. 손익개선이 가능할 것"이라며 "수익성 있는 프로젝트 중심으로 입찰에 나서고 있고, 수주를 대기 중인 사업도 있다. 수주잔고가 급격히 늘어나진 않겠지만, 질적으로는 회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