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농가 영국 메리알사 외 백신 만족도 높고, 가격도 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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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이 확산하면서 '물백신' 논란이 제기되는 가운데 방역 당국이 정보 부족과 안이한 행정으로 기존 영국산 백신을 고집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백신에 쓰이는 균주의 유전자적 특성을 고려할 때 러시아산 백신이 국내에 더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14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에 공급되는 구제역 백신의 수입처는 총 3곳이다. 기존 공급처인 영국 메리알사에서는 'O형' 단가백신과 'O+A형' 혼합백신(복수 유형의 바이러스 방어 백신)을 수입한다.
O형 백신에는 'O1 마니사'(O1 Manisa)와 'O 삼공삼구'(O 3039) 등 2가지 백신주가 함께 들어 있다. 2010년 첫 구제역 발생 이후 O1 마니사 백신주로 구성된 백신을 써왔지만, 2014년 물백신 논란 이후 O 삼공삼구가 추가됐다.
A형 백신은 'A22 이라크'(A22 Iraq)라는 균주로 만들어졌다.
농식품부는 물백신 논란 이후 감사원 지적에 따라 백신 수입처를 다변화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러시아산 'O 프리모스키'(O Primorsky)와 아르헨티나산 'O 캄포스'(O Campos)를 시범 도입하고 있다.
방역 당국은 이번에 소에서 O형과 A형 구제역이 동시에 발생해 백신이 부족하자 메리알사에 계약했던 O+A형 백신의 조기 수입과 추가 백신 공급을 긴급 요청한 상태다.
문제는 이번에 구제역이 발생한 농가를 조사한 결과 항체 형성률이 법적 기준치(80%)를 웃도는 사례가 확인돼 물백신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1일 전국에서 5번째로 구제역이 발생한 충북 보은군 마로면 송현리 한우 농장의 경우 구제역 발생 전 일제 조사에서 항체 형성률이 87.5%로 나왔다.
방역 당국은 13일 현재 확진된 소 농가 6곳이 모두 50마리 이상을 키우고 있어 자가접종한 사례라며 접종 방법상의 오류나 접종 소홀로 구제역에 걸렸을 수 있다는 태도다. 백신이나 효력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방역 당국이 적합도가 높아 효력이 더 좋은 백신을 놔두고 영국 메리알사 제품을 고집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서상희 충남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는 "메리알사의 백신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구제역과 유전적으로 차이가 있어 접종했더라도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변종이 생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 교수는 "2011년 구제역 세계표준연구소(퍼브라이트 연구소)에 따르면 러시아산 백신인 O 프리모스키가 우리나라 구제역과 유전자가 98%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메리알사 제품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류영수 건국대 수의학과 교수는 "동물실험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프리모스키는 '바다에 연해 있다'는 뜻으로, 연해주에서 발생한 바이러스를 균주로 쓰므로 국내 발생 구제역과 유전학적으로 더 가까울 수 있고,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현재 러시아와 아르헨티나산 백신은 O형 단가백신만 수입해 돼지 농가에 시범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역 당국은 그동안 국내에서 주로 나타난 유형에 따라 소는 O+A형 혼합백신, 돼지는 O형 단가백신을 접종토록 정하고 있다.
일선 축산현장에서는 영국산 외 백신에 대해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최대 돼지 축산단지가 있는 충남 홍성은 지난해부터 아르헨티나산 백신을 돼지에 접종하고 있다.
충남도 관계자는 "지난해 돼지에 대한 일제접종 때 백신이 부족하자 방역 당국에서 백신을 지역별로 임의 배정했는데 당시 O 캄포스가 공급됐다"며 "마리당 가격이 메리알사는 1430원인 데 비해 아르헨티나산은 1100원으로 싸고 항체 형성률도 괜찮게 나오면서 농가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올해는 축협에서 농가 선호도 조사를 통해 백신을 공급했는데 지난해에 이어 O 캄포스 백신을 선택한 농가가 많다고 충남도는 밝혔다.
러시아와 아르헨티나산 백신에는 A형도 있다. 혼합백신은 주문자 생산방식이므로 방역 당국이 주문하면 O+A형 백신도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실제로 2015년부터 러시아산 O+A형 백신(아리아 백)이 수입 허가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방역 당국은 혼합백신의 경우 여전히 영국산 제품만을 고집하는 상황이다.
방역 당국은 영국산 백신을 편애하는 것은 아니라는 태도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메리알사 백신이 과거 발생했던 바이러스에 적합한 것으로 확인돼 쓰는 것"이라며 "러시아·아르헨티나산 백신에 대해선 충분한 자료가 없다"고 답했다.
방역 당국은 백신을 수입할 때 해당 제품의 바이러스에 대한 적합도(R1값)가 기준치인 0.3을 넘는지 확인한다. 백신의 R1값을 측정하려면 표준 균주와 백신 혈청이 필요한 데 현실적으로 구하기 어렵다. 백신 제작회사가 자료 공개를 꺼려서다.
방역 당국은 퍼브라이트 연구소가 분기별로 내놓는 보고서를 통해 R1값의 적합도를 예측한다.
방역 당국의 백신 선택이 영국 메리알사 제품에 치중되는 가장 큰 이유는 퍼브라이트 연구소가 국제수역사무국(OIE)이 인증한 세계표준연구소임에도 러시아와 아르헨티나에 있는 OIE 인증 지역표준연구소와 정보 공유가 잘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 구제역백신연구센터 관계자는 "퍼브라이트 연구소에는 러시아 등에서 개발한 백신주가 없는 것으로 안다"며 "퍼브라이트 연구소는 세계적으로 많이 쓰이는 자국의 메리알사 R1값만 갖고 있고, 지역표준연구소에서는 보고서를 내지 않다 보니 백신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방역 당국의 안이한 행정과 네트워크 부재를 지적한다. 지역표준연구소도 엄연히 OIE 인증을 받은 곳임에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백신 정보를 수집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