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아시아시장, 시도조차 못 하나"'흥행가도' 건설장비 업계도 '노심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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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사진. 현대건설이 준공한 베트남 몽정1 발전소. ⓒ뉴데일리경제 DB
[뉴데일리경제 성재용·이지완기자]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경제보복'이 구체화되면서 경제산업 전반에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국내 건설업계 역시 해외건설시장 판도가 중동에서 아시아로 옮겨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보복이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사업참여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중국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건설장비업계도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사드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면서 국내 건설사들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단 건설업계에서는 중국 건설시장보다는 아시아시장에서의 입지가 줄어들 것을 우려했다. 중국시장에서는 주로 자사나 그룹 계열사 공사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2010년대 들어 중국시장 신규수주액은 모두 61억달러로, 이 기간 전체 수주액 3295억달러의 1.85%에 불과하다.
2014년 준공한 삼성전자의 중국 산시성 시안 반도체공장은 삼성물산이 시공사로 참여했으며, 포스코건설과 GS건설은 모기업 또는 계열사가 발주한 사업인 포스코현대국제물류단지와 LG디스플레이 공장을 시공했다. 롯데건설은 그룹공사인 롯데백화점과 롯데쇼핑 신축 및 리모델링 등을 담당했다.
문제는 아시아시장이다. 2000년 이전뿐만 아니라 2010년대 들어서도 중동지역 수주가 전체 신규수주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 그 비중이 줄어들고 아시아 비중이 증가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해건협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체 신규수주액 가운데 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24.1%(159억달러) △2015년 42.7%(197억달러) △2016년 44.9%(126억달러) 등으로 증가하고 있다.
반면 같은 기간 중동의 신규수주 비중은 47.4%에서 37.9%까지 줄어들었다. 2012년 368억달러를 수주하면서 전체 수주액 648억달러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것에 비하면 크게 감소한 셈이다.
이처럼 국내 건설사들의 '수주 텃밭'이 옮겨가고 있는 데에는 국제유가 하락·정세 불안 등으로 인한 발주량 감소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지난해 중국 주도로 출범한 AIIB 영향이 크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향후 AIIB가 추진하게 될 수많은 아시아 인프라 관련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한 사전작업이라는 것이다.
AIIB는 지난해 중국이 주축이 돼 설립한 국제기구로, 아시아지역 개발도상국 등의 낙후된 인프라시설을 개발하기 위해 설립됐다. 우리나라는 이곳에 창립회원국으로서 37억달러가 넘는 분담금을 투입, 전체 57개 회원국 중 지분율 5위(3.81%)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건설기업들이 AIIB에서 추진하는 프로젝트들을 새로운 시장으로 전망하는 것은 AIIB 투자규모 때문이다. AIIB는 2016년에만 총 9개 프로젝트·17억달러 이상을 융자한 데 이어 향후 5년 내 연간 융자규모를 100억~150억달러 규모로 확대할 계획이다. 국내 주택경기 침체·SOC투자 감소·해외수주 급감 등 여느 때보다 극심한 부침을 겪고 있는 국내 건설업계로서는 매력적인 투자처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해건협이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수요 조사한 결과 AIIB사업에 참여를 타진한 기업은 대우건설·GS건설·현대엔지니어링·롯데건설 등 대형건설사를 포함해 모두 11곳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 큰 문제는 AIIB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승인이 사실상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AIIB 회원국 중 가장 많은 지분(26.06%)을 갖고 있는 최대 의결국이다. 프로젝트 승인 과정에서 중국의 입김이 작용할 가능성이 그 만큼 큰 것이다.
만약 중국이 사드 배치를 빌미로 국내 건설사의 AIIB 프로젝트 승인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국내 건설기업들의 참여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현대건설·현대ENG 등 국내 건설기업이 중국 내 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추진하고 있는 에콰도르 정유공장 프로젝트의 경우 사업자금을 지원해야 할 중국은행·중국무역보험공사 등 중국 내 금융기관이 사드배치 문제가 터진 이후 자금 지원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형건설 A사 관계자는 "현재 AIIB 프로젝트 사업 참여를 검토하고 있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사드로 역풍을 맞게 된다면 4조원이 넘는 분담금을 내고도 혜택은커녕 시도조차 못해보고 문이 닫히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해건협 중국 담당 관계자는 "국내 건설기업이 중국 시장에 직접 뛰어들긴 어려운 환경이고 사업 비중도 낮아 당장 매출이 급감할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하지만 계열사 공사 및 한중 합작 사업이 제한될 수 있고, AIIB의 사업 참여에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AIIB가 엄연한 국제기구로서 기준을 지키면서 움직이기 때문에 당장은 구체적인 조치로 이어지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가능성은 열어둬야 한다고 진단했다.
손태홍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AIIB는 창립 당시 다자간개발은행(MDB)으로부터 투명성 등 국제기구에 맞는 기준을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의 시선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중국이 월권을 행사하기는 힘든 상황"이라면서도 "중국이 거부권을 가진 만큼 국내 건설사 입찰에 의도적으로 어깃장을 놓을 가능성은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한편, 중국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국내 건설장비업체들도 노심초사하고 있다.
건설장비업계에 따르면 두산인프라코어와 현대중공업은 지난달 중국 굴삭기 시장점유율에서 톱 10에 드는 성과를 달성했다. 특히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달 판매량(1202대)이 전월에 비해 4배나 증가하면서 중국 내 점유율 4위를 차지했다.
현대중공업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배가량 늘어난 500대를 판매하며 9위에 랭크됐다.
두산인프라코어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사드 배치와 관련, 피해가 발생하지 않아 구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해 두진 않았다"며 "피해 발생은 없지만, 상황이 어떻게 변화될지 몰라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