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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총수일가 경영비리 혐의로 공판이 진행 중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법정에 출석했다. 신 명예회장의 공판 출석은 3월20일 첫 출석과 4월18일에 이어 세 번째다.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건강 상태가 비교적 양호해 법정 내에서 소란을 피우거나 차질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와 변호인 측은 신 명예회장의 의사 전달 능력을 두고 설전을 펼쳤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4부(부장판사 김상동)는 19일 신격호 명예회장,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신 회장의 셋째 부인 서미경씨에 대한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조세) 혐의 10차 공판과 신격호 단독 피고 4차 공판을 함께 진행했다.
재판부는 그간 재판에 참석하지 못한 신 명예회장을 대상으로 '기일 외 증거조사' 형식으로 진행된 서류증거들을 알리고 증거능력을 부여했다. 즉, 신 명예회장의 조세 혐의 공판에 대해 사실상 결심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신 명예회장 측 변호인은 '심신 미약'을 이유로 공판절차 정지를 요청했고, 재판부는 "의사능력이 없는 상태로 보기 어렵다"며 수용하지 않았다.
신 명예회장 측 변호인은 지난 4월 두 번째 공판 이후 3개월만에 공판에 출석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아 재판을 정상적으로 받을 수 없다는 뜻을 전하면서 "공판절차를 정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주장했다.
반면, 재판부는 "이 정도로 고령인 분이 장기간 재판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면서도 "현실적으로 신격호 피고인이 순간순간 의사능력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롯데 경영비리 첫 공판에서 '누가 나를 기소했느냐'고 묻는 등 재판에 적정한 말을 했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신 명예회장 측 변호인은 "의사능력이나 판단능력이 있긴 하지만 의사표현이나 판단도 기억력이 있어야 하는데 신 명예회장은 옛날 일에 대해 물으면 '기억이 잘 안난다'고 답하고, 어떤 일에 대해 물으면 생각해서 대답하는 정도"라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형사재판에서는 정신장애인들도 변호인의 도움을 받아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 피고인 심신상태에 맞춰서 정리하자면 10분 하고, 쉬고 10분 하고 쉬더라도 진행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겠다"면서 신 명예회장의 재판이 중단될 수 없음을 강조했다. -
한편, 신 명예회장은 이날 오후 1시46분께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은 채 법원에 들어섰다.
법정에 입장한 신 명예회장은 가끔 소리를 치긴 했지만, 앞서 두 차례 출석한 재판 때보다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신 명예회장의 변호를 맡은 조문현 변호사는 신 명예회장 곁에 붙어 앉아 상황을 설명하고, 재판 중간에도 종이에 글씨를 써서 보여주는 등 원활한 소통 창구 역할도 수행했다. 조 변호사는 일본어에 능통하기 때문이다.
조 변호사가 재판 중간 내용을 설명하는 듯 신 명예회장을 향해 몸을 기울이고 속삭이면 이에 응할 뿐 재판부와 변호인단이 발언하는 도중에도 신 명예회장은 정면을 응시할 뿐이었다. 간병인이 주는 휴지를 받아 눈가와 입 주변 등 얼굴을 닦기도 했다.
롯데 경영비리 다음 공판은 오는 8월7일 진행되고, 이날 공판에는 신동빈 롯데 회장,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신 명예회장의 셋째 부인 서미경씨, 채정병 전 롯데카드 사장이 피고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