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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포항지진에서 문제가 된 필로티 건물 대부분은 철근부족, 비정상적 콘크리트 두께 등의 구조적인 문제가 발견됐다. ⓒ연합뉴스
지난 15일 경북 포항에서 진도 5.4 지진이 발생한 이후 필로티 구조 건축물에 대한 위험성과 함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언론보도와 SNS를 통해 젓가락처럼 휘어버린 기둥과 그 사이로 그대로 드러난 철근사진이 여럿 공개되면서 필로티 건물에 대한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필로티 구조는 1층을 비우고 벽면없이 기둥으로 하중을 지지해 건물을 짓는 방법으로, 보안이나 사생활보호 등의 이유로 저층거주를 꺼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주차공간 확보가 중요해지면서 2000년대 이후 늘어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필로티 건물로 지어지지 않은 빌라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보편적인 건축스타일로 자리잡았다. 또 일부 시공사들 경우 재건축아파트 수주 시 '필로티 구조'를 특화설계에 포함시켜 조합원들 환심을 사는데 활용하기도 한다.
미관적 요소와 실용성을 모두 겸비해 필로티 건물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건축구조상 필로티가 무조건 위험하다는 여론은 안타까울 정도다.
먼저 포항지진 이후 빠르게 퍼지고 있는 필로티 건물 대부분은 빌라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2015년부터 3층 이상 모든 건축물에 대한 내진설계가 의무화 됐다. 필로티 건물도 3층 이상이라면 당연히 내진설계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소급 적용이 되지 않은 탓에 내진설계를 누락시킨 건물이 많아 피해를 부추겼다.
대부분의 전문가들 역시 무너지고 갈라진 건물들에 대해 철근부족, 비정상적 콘크리트 두께 등 구조적인 문제와 함께 부실시공을 지적했다.
필로티 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진설계를 무시한 채 건물을 지었기 때문에 지진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한국지진공학회 관계자는 "똑같은 필로티 건물인데도 지진 발생 시 멀쩡한 건물이 있다"면서 "기둥의 사이즈, 기둥 안의 철근 배치 등 내진설계 기준을 잘 따르면 문제가 없다"고 단언했다.
이어 "내진설계 기준에 따라 건물을 지었다면 이번 지진피해가 이 정도로 심각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정부는 내진설계 기준을 정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설계대로 시공될 수 있는 절차와 이를 검증하는 제도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형재 국토교통부 건축주택과 사무관 역시 "필로티 구조로 건물을 지었다 하더라도 양질의 건설 기준과 설계, 시공 과정을 지켰다면 지진에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는 포항지진 피해사진으로 인해 필로티 구조 아파트 거주자 역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아파트의 경우 더욱 안심해도 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 내진설계가 처음 의무화된 것은 1988년으로 당시에는 6층 이상·연면적 10만㎡ 이상 건축물이었으나, 1995년 6층 이상·연면적 1만㎡ 이상 건축물로, 2005년부터는 3층 ·연면적 1000㎡ 이상으로 확대 적용된 후 올 2월에는 2층 또는 13m 이상·연면적 500㎡으로 내진설계 대상 기준이 높아졌다.
아파트 경우 건축법이 내진설계를 규정한 1988년부터 의무적으로 지키고 있고, 건설사마다 특화된 제반기술을 바탕으로 내진설계를 보강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대형건설사들은 기본적으로 규모 6.5를 견딜 정도로 내진설계를 하고 있고, 일부 건설사들은 한 발 더 나아가고 있다"면서 "필로티 방식이라도 튼튼한 기둥을 넣은 주상복합이나 아파트, 빌딩은 오히려 더 안전한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파트의 경우 각 기둥을 지붕까지 연결한 방식의 필로티 구조를 취하고 있어 안전하고, 아래만 떠받치는 구조의 다가구 주택은 진동을 기둥이 다 떠안게 돼 취약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필로티 구조로 지어진 건물이 일반구조 건물에 비해 수평방향 진동에 약한 것은 사실인 만큼 구조설계 시 내진성능·하중조건 등을 고려해 상대적으로 더 튼튼하게 지어야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결국 이번 포항지진에서 필로티 건물이 무너진 것은 구조자체 문제라기 보다 내진설계를 지키지 않은 시공사와 그 기준만 만들어 놓고 감시와 검증에는 소홀한 관할 부처 탓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