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리스트별 MP 연기로 전 일정 밀려… 본입찰 내년으로사우디 아람코 등 유력 인수후보 불참… 흥행 열기도 꺾여인수희망가격, 산은과 1조원 이상 차… '헐값 매각'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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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종로구 소재 대우건설 본사. ⓒ뉴데일리경제 DB
KDB산업은행의 대우건설 매각 작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인수적격예비후보(숏리스트)들의 요청으로 예비실사 기간이 미뤄지면서 본입찰이 내년 초로 넘어갔다. 유력 인수후보들이 참여하지 않으면서 흥행에 실패한데다 기간까지 늘어나면서 무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대우건설 매각자인 산업은행은 숏리스트들을 대상으로 내달 중순경 본입찰을 실시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날짜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매각주관사인 미래에셋대우-BoA메릴린치를 포함한 매도자 측은 산은의 비금융자본 조속매각 원칙에 따라 이달 내 본입찰을 실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지난 11월 숏리스트들에게 6주간의 실사기간을 줬고, 가상데이터룸(VDR) 실사의 마지막 단계로 지난주 경영진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당초 지난 11·12·14일로 잡혀있던 숏리스트별 MP(매니지먼트 프레젠테이션) 일정이 18~20일로 미뤄지면서 전반적인 매각과정이 순연됐다.
산은 측은 "현재 실사 과정에 있는 숏리스트들의 다양한 의견을 감안해 내년 1월경 본입찰을 실시하기로 했다"며 "입찰참가자들이 대우건설을 충분히 들여다봐야 하고 컨소시엄 구성을 포함해 본입찰을 위한 준비과정도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예비실사기간을 조금 더 늘려달라는 일부 숏리스트의 요청을 산은 측이 수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건설경기 전망 악화, 주가 하락 등으로 인수후보들의 부담감이 드러난 것이라는 후문도 있다.
업계에서는 산은의 본입찰 연기가 사실상 예견된 수순이었다고 보고 있다.
우선 주요 인수후보군으로 거론되던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 빈라덴 그룹 등의 불참으로 흥행 열기가 한 풀 꺾였다. 아람코의 경우 회장인 빈살만 왕세자가 지난 7월 왕자의 난을 일으켜 기존 왕세자였던 사촌형을 축출하고 왕위 계승권을 찬탈했으나, 왕자의 난으로 부패척결 등에 몰두하다 외국기업 M&A 등이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렸다는 분석이다.
사우디 최대 건설업체인 빈라덴 그룹은 반대로 빈살만 왕세자의 부패척결로 운신의 폭이 좁아지면서 인수전 참여를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줄어든 숏리스트 3개사도 M&A 참여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
일단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올 하반기 부동산 규제가 쏟아지면서 대우건설의 실적을 견인하는 주택시장이 침체를 겪고 있고, 내년에도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양도소득세 중과 등 규제가 줄줄이 예정된 만큼 침체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해외 사업장 역시 리스크가 잔존해 있는 만큼 대우건설의 미래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참여한 호반건설의 경우 해외 사업 경험이 전무하고, 기업규모나 자금력 측면에서 중국 업체에 밀리는 터라 인수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앞서 금호산업, 동부건설, SK증권 등 M&A시장에 잇달아 등장했지만, 막판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 지적된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호반이 그동안 배팅했던 것을 보면 이번에도 큰 기대를 하긴 어렵다"며 "호반건설과 대우건설은 주택사업 비중이 높아 사업 분야가 겹치는 등 합병시 어떤 시너지가 있을까하는 의문도 있다"고 말했다.
연 매출이 112조원에 달하는 중국 최대 건설사인 중국건축공정총공사(中國建築工程總公司·CSCEC)는 2014년 대우건설과 해외사업을 함께 하는 제휴 체결로 인연을 맺은 바 있다. CSCEC는 동남아시아, 중동, 북아프리카 등에서 인지도가 낮아 대우건설 인수로 해외시장 다각화에 물꼬를 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 등으로 중국 정부의 입김이 언제든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홍콩에 본사를 둔 중국계 사모펀드(PEF) 퍼시픽얼라이언스그룹(PAG) 역시 본입찰에 대한 의지가 불투명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곳은 국내에서 '또봇'으로 알려진 완구업체 영실업을 인수한 PEF로, 코웨이와 대성산업가스 등 조 단위가 넘는 인수전에 뛰어들 정도로 국내 기업 M&A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경기 변동에 민감한 건설업의 경우 리스크가 큰 만큼 최종 본입찰에는 참여하지 않을 공산이 커 보인다.
무엇보다 이들 두 곳의 경우 중국 정부가 대규모 해외투자를 죄는 상황에서 사드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는 한국 기업에 거액을 투자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IB(투자은행)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 기업 M&A는 입찰서류를 내봐야 결과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예측이 어렵다"며 "사드 사태라 봉합됐다고 하더라도 실제 중국인 투자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써낸 인수가격도 산은의 희망가격은 2조원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 산은은 시장가 원칙을 내세워 희망하는 가격을 2조원 수준이라고 밝혔다. 적어도 1조5000억원 이상에 팔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하지만 숏리스트들이 제시한 금액은 1조4000억원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가 이뤄지더라도 헐값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 같은 금액이 책정된 데에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배제한 채 산은이 보유한 대우건설 지분의 가치만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18일 현재 대우건설의 시가총액은 2조4148억원으로, 산은이 보유한 주식 2억1093만1209주(지분 50.75%)에 경영권을 얹어도 시장가치가 1조5000억원이 안 된다.
앞서 산은은 지난 10월 PEF인 KDB밸류 제6호를 통해 보유한 지분을 매각 대상으로 내놨다. 당시 이동걸 산은 회장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해 최대 3조원 이상까지 받겠다고 밝혔으나, 인수후보들이 하나둘 빠지고 있다는 소식이 증권가에 전해지면서 주가는 매각작업이 본격화된 지난 8월 초(2일·8320원)의 70% 수준인 5000원대(15일 종가 5940원)로 내려앉고 있다.
실제 매각이 성사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산은이 대우건설에 유상증자를 포함해 3조2000억원을 투입했는데, 2조원에도 못 미치는 가격을 받으면 국고로 환수돼야 할 혈세 역시 그만큼 줄게 돼 세금 낭비 논란 등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후보자들이 본입찰에서 기대만큼 배팅하지 않을 경우 매각이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회의감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히나 산은 입장에서는 매각 불발시 당분간 재매각을 추진하기 어려워지는 만큼 고심이 깊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매각 본입찰이 내년으로 미뤄지면서 무산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M&A시장 한 관계자는 "기대했던 사우디 쪽에서 입찰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흥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진행이 잘 되면 몇 주 늦어지는 게 변수는 아니지만, 일정만 늦춰지는 것이라면 딜(Deal)이 지지부진하게 늘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대우건설 내부 반발이 커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국건설기업노동조합 대우건설지부(대우건설 노조)는 산은 측에 경영간섭 및 졸속매각 방지 등을 촉구하고 나선 상황이다.
노조는 노조원들을 대상으로 전면 파업 여부에 대한 찬반투표를 오는 19일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다음 주 중으로 매각정상화를 위한 집회를 계획하는 등 내부 요구를 계속 관철해 나갈 것이라는 게 노조 측 전언이다.
이와 관련, 산은 측은 "매각 일정이 진행 중인 현재로선 인수 제시가격이 낮다고 해서 일정을 취소한다거나 재매각을 고려하진 안고 있다"며 "상식적인 수준에서 대우건설 몸값이 책정된다면 내년 초 새 주인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숏리스트들은 실사 종료 후 대우건설 인수희망가를 확정하는 막바지 밸류에이션 작업과 내부보고 수순을 거쳐 본입찰에 대비할 것으로 보인다. 산은과 주관사단은 본입찰 이후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되면 늦어도 내년 4월까지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하고 상반기 중 매매대금 수령(딜 클로징)을 완료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