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2020년부터 도입"업계 "영업손실 지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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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약자인 휠체어 장애인도 명절에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에 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국토교통부는 오는 2020년부터 휠체어 탑승설비를 갖춘 고속버스(이하 교통약자 고속버스)를 본격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고속버스 관련 업계에선 정부 바람과 달리 자율적인 도입에는 한계가 있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15일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 장거리 노선버스 운송사업자가 교통약자를 위해 휠체어 탑승설비를 연차별·단계별로 설치하게 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앞서 정부는 2017~2021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5개년 계획에 교통약자용 고속·시외버스를 도입한다는 내용을 반영했다.
이번 개정안은 공포 후 1년 뒤 시행하는 것으로 돼 있다. 조만간 공포될 예정이므로 내년부터 휠체어 장애인의 고속버스 이용이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법 시행에도 교통약자용 고속·시외버스 표준모델과 승강장치 개발, 안전기준 확보, 터미널·휴게소 등 이용시설의 설계 보완 등이 필요해 당장 현실화하기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의견이다.
국토부는 한국교통안전공단을 총괄 연구기관으로 지정하고 한국교통연구원과 아주·신한대를 통해 내년 9월까지 관련 연구·개발(R&D)을 진행하고 있다.
국토부 설명으로는 교통약자 고속버스는 시내버스에 도입한 저상버스와 달리 기존 고속버스를 개조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휠체어 탑승장치를 달고 내부 좌석을 뜯어낸 뒤 휠체어 고정장치를 설치하는 방식이다.
외국도 고속형 저상버스를 운행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교통약자를 위한 장거리 시외버스를 운행하는 미국·영국·일본도 기존 버스를 고쳐 휠체어 탑승장치를 장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고속형 저상버스는 기계 구조적으로 도입이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면서 "R&D 과정을 거쳐 2020년부터 본격 도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교통약자 고속버스 도입이 의무조항이 아니어서 운송사업자가 자율적으로 차량을 도입할지 의문이라는 점이다.
먼저 버스제조업계 한 관계자는 "사업적인 측면에서 교통약자용 고속버스는 시장성이 전혀 없다. 시장성이 있다면 제조업체가 알아서 개발할 것"이라며 "정부는 사업성과 무관하니 그런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내 수요가 몇 대나 되겠느냐"며 "(차량을 만들어도) 공급 대수가 적으면 판매가격이 엄청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전국고속버스운송사업조합 관계자도 "차량 구매비를 지원하는 것만으로는 운송사업자들이 교통약자 고속버스 도입에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며 "휠체어 탑승을 위해 일반 좌석을 없애야 하므로 중장기적인 영업손실까지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저상 시내버스의 경우 차량 가격이 일반 버스보다 1억원 이상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저상버스 도입 확대를 위해 지난 2004년부터 국비를 지원하고 있다. 현재 국비와 지방비 각각 50%를 투입해 일반 버스와의 구매비 차액을 전액 지원한다.
그런데도 저상버스 도입률은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2016년 말 현재 전국에 도입된 저상 시내버스는 총 6447대로, 전체 시내버스 3만3887대의 19.0% 수준이다.
서울시는 7436대 중 2757대가 저상버스로, 도입률 37.1%다. 수도권인 인천시와 경기도 도입률은 각각 12.7%(345대), 9.9%(1051대)다. 제주도는 2.6%(5대)로 전국에서 도입률이 가장 낮다.
국토부 관계자는 "개정안에는 차량 도입 비용만 지원하는 것으로 돼 있다"며 "(지금으로선) 영업손실비용이나 운영비 지원 여부에 대해 답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애초 이찬열 의원(바른미래당)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에는 운송사업자가 탑승설비 설치를 의무화하는 규정이 있었다. 하지만 본회의를 통과한 최종 수정안에는 이 조항이 삭제됐다.
차량 도입을 위해 기본적인 법적 근거는 마련됐으나 운송사업자에게 이를 강제할 조항은 빠진 것이다.
고속철도와의 경쟁으로 적자에 허덕인다는 고속버스업계의 주장을 고려하면 2020년 이후에도 교통약자 고속버스 도입이 쉽지 않을 거라는 견해가 제기되는 배경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차량 도입을 의무화하는 것은 (운송사업자에게) 너무 강력한 조항이란 의견이 있었다. 도입을 강제화했으면 개정안 통과가 어려운 상황이었다"면서 "시내 저상버스처럼 정부 기본계획 수립 이후 재정지원과 지방자치단체 유도를 통해 도입을 늘려가는 방법으로 수정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