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시장이 열린다⑩] 오리온, 촘촘한 유통망·기발한 아이디어로 '국민과자' 등극

[베트남 호찌민 = 김수경 기자] 오토바이 한 대가 상점 앞에 멈춰선다. 운전사는 오토바이 시동도 끄지 않은 채 걸터 앉아 가게 주인에게 과자와 음료수 등 본인이 원하는 제품의 이름을 말한다. 가게 주인이 그 제품을 비닐봉투에 담아 건네자 손님은 돈을 치른 뒤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떠난다. 이는 베트남 유통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재래 시장의 흔한 장보기 풍경이다.

뉴데일리경제는 최근 찾은 베트남 호찌민 3군에 위치한 한 전통 시장을 방문했다.

호찌민 시내 중심인 1군이 백화점과 대형 쇼핑몰, 편의점 등 신(新) 유통 채널로 가득 채워진 것과 달리 차를 타고 15분 가량 달리면 한국의 1980~1990년대를 보는 것 같은 전통시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작고 비좁은 골목 사이 사이로 간판도 제대로 달지 않은 소위 '구멍가게' 상점들이 즐비해있다. 

과자와 음료수 등을 파는 가게 앞에는 어김없이 오리온 '오스타'와 '투니스' 등이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베트남 사람들이 재래 시장에서 장을 볼 때 가게에 직접 들어가서 물건을 고르지 않고 본인이 원하는 제품명을 말하거나 눈에 바로 띄는 제품을 주로 산다는 것에 착안해 오리온이 고안해 낸 아이디어다. 

오리온 베트남 법인 관계자는 "베트남 사람들의 장보는 습관을 연구해 생각해 낸 아이디어"라며 "오리온이 과자를 매달아 걸어놓는 것을 본 뒤 경쟁 제과 업체들도 이를 따라하는 등 이제는 대부분의 상점이 이같은 방식으로 제품을 진열해두는 둥 중요한 유통 툴이 됐다"고 말했다. 

이같은 방식은 홍보 효과가 커 신제품을 내놓거나 주력 제품을 고객들에게 소개할 때 유용한 방법으로 쓰이고 있다. 상점 주인들은 제품을 가게 앞에 매달아주는 대신 홍보비 명목으로 업체로부터 돈을 받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10년 째 호찌민 3군에서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푸옹(Phuong·48세)씨는 "다른 과자 브랜드들은 가게 앞에 제품을 매달아주는 대가로 홍보비를 받고 있는데 오리온은 제외"라며 "오리온이 가장 먼저 이런 방식을 사용했고 고객들이 말하지 않아도 오리온 과자를 알아서 찾기 때문에 항상 맨 앞에 오리온 제품을 걸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가게에서는 오리온 초코파이가 과자 중 제일 잘 팔리고 오스타와 투니스도 즐겨 찾는다"며 "날이 많이 더울때는 초코파이를 냉장고에 넣어서 팔기도 하는데 손님들이 좋아한다"고 전했다. 

오리온 베트남 법인에 근무하는 한국 직원은 법인장을 포함해 10여명 가량. 이들은 대부분 베트남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베트남 전국에 뻗어있는 16만 거래처를 3000여명의 영업사원이 직접 발로 뛰며 관리하는데 중간 관리자 역할을 하는 한국인 직원들이 이들과 현지어로 대화할 수 있어 발빠른 소통과 깊은 교감이 가능한 것이 오리온의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오리온 관계자는 "베트남에 진출한 외국 기업 중 전체 거래처를 직접 방문하면서 영업활동 하는 것은 오리온이 처음이었다"며 "초반에는 말단 직원들까지 직조직으로 관리하는게 힘들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지만 그 단단한 기반 덕에 마케팅 플랜이나 실행력을 촘촘하게 꾸려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리온의 이같은 전국적 유통조직과 다양한 아이디어 전략 덕에 지난해 베트남에서 '초코파이' 판매량 5억 개를 돌파했다. 1억명에 달하는 베트남 인구가 한 명 당 초코파이 5개씩을 먹은 셈이다. 

초코파이는 베트남 파이 시장에서 63%의 점유율로 압도적 1위를 지키는 '국민 과자'로 자리잡았다. 제사상에도 '초코파이'가 오르고 있으며 지난해 9월 출시한 신제품 '초코파이 다크'도 매출 성장에 일조하고 있다.

최근에는 '투니스'와 '오스타'가 각각 전년 대비 매출 39%, 38% 씩 증가하며 스낵류 시장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오리온 베트남 법인은 이같은 실적에 힘입어 지난해 현지화 기준으로 매출이 전년 대비 13.3% 성장한 2224억원을 기록했다.

오리온 관계자는 "베트남 법인은 중국에 이은 오리온의 제 2글로벌 성장동력"이라며 "현지 유통망을 지속적으로 넓히고 시장 지배력을 강화해 베트남에서 높은 성장세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오리온은 1995년 초코파이 수출로 베트남에 진출한 이후 2006년 호치민에 생산 공장을 세우며 베트남 진출을 본격화했다. 2009년에는 파이와 비스킷의 주요시장인 북부 지역을 공략하기 위해 하노이에도 공장을 가동하면서 입지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 뉴데일리 기획특집 [베트남, 시장이 열린다] ⓒ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