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 미만 영세사업장도 자발적 근로시간 단축 추세줄어드는 수익 보전 위해 두탕족 늘듯… 대기업 노조와 양극화 심화
  • ▲ 근로시간 단축.ⓒ연합뉴스
    ▲ 근로시간 단축.ⓒ연합뉴스

    최저임금 인상에 이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노동시장에 봄바람이 불지만, 영세 소상공인 사업장에는 냉기가 확산하는 등 양극화가 심화할 조짐이다.

    소상공인 업계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은 노조라는 비빌 언덕이 있는 대기업·공공 부문 근로자에게나 해당한다며 자신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라는 견해다.

    소위 귀족노조는 일하는 시간이 줄어도 최저임금 인상으로 임금을 보전받아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겠지만, 골목상권 근로자는 생계를 위해 겹벌이(투잡)를 고민해야 할 처지라는 것이다.

    6일 소상공인연합회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시간 단축 대상에서 예외지만, 자동으로 근로시간 단축 사업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로 불가피하게 근로자 휴식시간 연장을 검토하는 사업장이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대준 소상공인연합회 이사장은 "특히 외식업종은 스스로 근로시간을 줄여 경영의 효율화를 꾀함으로써 최저임금 인상의 충격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적지 않다"며 "예전에는 손님이 뜸한 점심과 저녁 장사 사이(오후 2~4시) 영업 준비 시간도 근로시간으로 봤지만, 이제는 점심 장사를 서둘러 마감하고 휴식시간을 두어 비용 지출을 최소화하려는 사업장이 늘고 있다"고 부연했다.

    김 이사장은 "서유럽처럼 고임금 사회에서는 이런 브레이크 타임이 흔하다"며 "서울도 강남 같은 곳은 지금도 일정 시간 쉬는 사업장이 있다"고 했다.

    이근재 한국외식업중앙회 서울시협의회장은 "아는 갈빗집 사장은 직원에게 하루 7시간만 일하자며 아침에 1시간 늦게 나오라고 했다"면서 "골목상권의 생활 자영업자들은 붐비는 시간대에 집중해 영업시간을 쪼개 쓰는 방법으로 경영 효율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깃집의 경우 점심 장사는 포기하고 오후 2시쯤 문을 열어 저녁·밤 장사에 치중하는 식이다.

    이 지회장은 "가족도 총동원한다"며 "부부가 같이 일하면서 직원 1명을 내보내거나 바쁜 시간대에는 딸을 불러 아르바이트 대신 쓰는 등 가족경영 사례가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지회장은 "아직은 관망하는 경우가 많지만, 휴식시간을 도입해 근로시간을 줄이겠다고 하면 그래도 남아 일하겠다는 대답이 60%, 그만두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겠다는 반응이 40%쯤"이라며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오는 6월쯤이면 이런 업계 현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지회장은 "앞으로 (외식업 근로자는) 투잡 또는 5시간씩 일하는 두탕족 아주머니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면서 "임금 인상에 따른 근로시간 단축으로 낮에는 홀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다른 가게로 옮겨가 설거지를 하는 식으로 수입을 유지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 아르바이트 모집.ⓒ연합뉴스
    ▲ 아르바이트 모집.ⓒ연합뉴스

    소상공인 업계는 워라밸 열풍은 딴 세상일이라고 말한다. 노동시장의 양극화 심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 이사장은 "소상공인 업계는 노동시간 단축이 그림의 떡일 뿐"이라며 "사실상 대기업·공공 부문 근로자 등 상대적으로 좋은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소위 귀족노조(고연봉노동자)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노동계가) 무노동 무임금에 대한 저항을 피하려고 최저임금 인상을 먼저 터트린 뒤 정해진 순서대로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했다가 최저임금 산입범위(산정기준) 개편을 요구하는 경영계 목소리가 커지자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사라진다며 반대하는 게 현재의 모양새"라며 "문제는 이런 논란이 소상공인이나 저소득·취약계층 근로자에게는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라고 부연했다.

    김재락 중소기업중앙회 인력본부장도 "근로시간 단축으로 연장근로수당을 받지 못해 수입이 줄면 회사에서 임금을 보전해주거나 (투잡을 뛰는 등)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하지 않겠느냐"며 "노조라는 비빌 언덕이 있는 곳은 투쟁을 통해 임금을 보전할 수 있지만, 영세사업장은 그러기 어려우니 양극화 심화가 우려된다"고 거들었다.

    외식업계에서도 대형·영세 음식점 간 양극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이 지회장은 "상가 주변에서 식당을 운영한다. 물가 상승 등을 고려해 점심값을 6000원에서 6500원으로 올렸더니 손님이 20~30명 줄더라"며 "강남이나 법원 근처 식당은 8000원 이상 받아도 큰 지장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권에 따라 같은 메뉴를 팔아도 수입이 달라지는 게 외식업계 현실이다. 설상가상 대기업 브랜드가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골목상권에 침투하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며 "대기업 음식점과 종사자는 살고 영세 식당 근로자는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지회장은 CJ푸드빌이 운영하는 한식브랜드 '계절밥상'을 예로 들었다.

    이 지회장은 "인사동에 계절밥상이 들어왔는데 점심값을 주변 식당보다 내리고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공짜로 준다"며 "대량구매로 비용을 낮춰 골목상권을 잠식하면 다시 값을 올리는 전략을 쓴다. 계절밥상이나 종사자는 큰 타격이 없지만, 주변 영세 식당은 가격경쟁에서 밀려 문을 닫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