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당선에 10만달러 육박…SEC, 현물 ETF 옵션거래 허용금융당국, 보수적 입장 고수…김병환 “주식시장 자금이탈 우려”금융위, 가상자산위 출범…‘선결과제’ 법인 실명계좌 이슈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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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트코인이 친(親) 암호화폐(가상자산) 정책을 약속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제47대 미국 대통령 선거 승리와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옵션거래 승인 등으로 고공행진을 펼친 가운데, 국내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이 법적 불확실성을 이유로 비트코인·이더리움 등을 기초자산으로 한 금융상품의 출시·중개를 여전히 막고 있어서다.

    27일 가상자산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오전 10시 20분 기준 비트코인 1개당 가격은 24시간 전보다 1.86% 내린 9만2441.27달러(한화 약 1억2902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달 초까지만 하더라도 6만달러(약 8372만원) 후반대에 머물렀던 비트코인은 지난 23일 9만9655.50달러(약 1억3905만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는 가상자산에 친화적 행보를 보여왔던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영향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 비트코인을 미국의 전략자산으로 비축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으며 스스로를 ‘가상화폐 대통령(Crypto president)’이라 칭하기도 했다.

    실제 트럼프 당선인은 2기 내각 인선에서 가상자산에 우호적인 인물들을 전면에 대거 포진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정부효율부 수장으로 지명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 지명자 등이다.

    또한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 1월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를 허용한 데 이어 9월 옵션 상품의 상장을 승인한 점도 호재로 작용했다.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와 통화감독청(OCC)도 각각 지난 16일, 18일 상장을 허용했다. 옵션 상품들은 지난 20일부터 본격적으로 거래되기 시작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비트코인 현물 ETF 상품의 발행과 중개를 금지하고 있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 1월 “국내 증권사가 해외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를 중개하는 것은 가상자산에 대한 기존의 정부입장과 자본시장법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자본시장법 제4조 제10호에서 규정하는 기초자산인 ▲금융투자상품 ▲통화(해외 통화 포함) ▲일반상품(농산물·축산물·수산물·임산물·광산물·에너지) ▲신용위험 ▲기타(합리적이고 적정한 방법에 의해 가격·이자율·지표·단위의 산출이나 평가가 가능한 것)에 가상자산이 포함되지 않아 위법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가상자산 간접 투자에 대한 투자자들의 수요는 늘어나는 상황이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세이브로)에 따르면 서학개미들은 최근 한 달 동안 비트코인 최대 보유 기업으로 알려진 미 마이크로스트래티지(MICROSTRATEGY INC CL A) 주식 1억6668억달러(약 2330억원)어치를 사들이면서 순매수 종목 상위 2위에 이름을 올렸으며 ‘2X ETHER ETF(1억1289만달러·약 1578억원)’도 5위를 기록했다.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 국민연금도 코인베이스(26만5646주), 마이크로스트래티지(24만5000주)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부펀드 한국투자공사(KIC) 역시 이들 종목을 매입하는 등 가상자산 관련주에 투자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여전히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24일 오전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지난 7월 19일 가상자산보호법이 시행되면서 이제야 투자자 보호를 위한 감시·감독, 의무부여가 시작됐다”며 “앞으로 (이 산업을) 어느 수준까지 육성할 것이냐는 결국 미국의 정책 변화 속 다른 나라의 스탠스, 국내 여건 등을 살펴보고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또 김 위원장은 국내 가상자산시장 거래 대금이 주식시장 규모를 넘어선 것과 관련해 “가상자산 가격이 단기간에 굉장히 급등하고 있고 시장 자체가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불공정거래가 있는 것 아니냐에 중점을 두고 면밀히 감시할 필요가 있다”며 “주식시장은 우리 경제 선순환에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다 인식하고 있는데, 가상자산은 실질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 뭔가에 대한 의문들이 있기 때문에 가상자산 쪽에 거래량이 더 많은 데 대해서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비트코인 현물 ETF의 승인으로 국내 증시가 침체된다면 앞서 먼저 허용했던 미국 증시도 침체됐어야 한다”며 “자금은 시장 상황과 투자 매력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지,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됐다고 해서 급작스럽게 빠지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실제 연초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가 허용된 이후 가상자산 시장에 대규모 자금이 유입되며 비트코인이 역대 최고가를 쓴 것은 사실이지만, 뉴욕 증시 주요 주가지수들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며 “국내 증시에서 빠진 거래량과 거래 대금은 가상자산시장이 아닌 뉴욕 증시로 흘러 들어가는 규모가 더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가상자산시장이 글로벌에 비해 뒤처질 수 있단 우려도 제기된다. 장경필 쟁글 리서치센터장은 “트럼프 당선 이후, 기관투자의 확대와 미국 주 정부의 비트코인 비축 법안은 비트코인의 신뢰도를 높이고 금과 같은 가치 저장 수단으로 인정받는 시기를 앞당기고 있어 비트코인이 향후 글로벌 금융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크게 확대할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하지만 한국은 제도적 논의가 세금 부과에만 집중돼 정책적 대응이 더딘 상황이기 때문에 디지털 자산 시장의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국내 자산운용사들도 비트코인 현물 ETF의 출시 허용을 기다리고 있다. 현물 ETF가 승인된다면 가상자산 연계 상품의 중개·발행·유동성 공급 등을 통해서 이익을 얻고 가상자산 기반 상품 개발과 운용에도 경쟁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운용사 관계자는 “비트코인이 제도권 상품으로 들어오면 개인과 기관투자자의 투자 선택지가 넓어지고 ETF 시장의 성장성도 가속화될 것”이라며 “자산운용업계도 상품 다각화, 투자자 유치 측면에선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시장에서는 최근 금융위가 정부와 민간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기구인 ‘가상자산위원회’를 출범했고, 지난 4월 치러진 22대 총선에서 여야가 비트코인 현물 ETF 투자 허용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만큼 관련 제도들과 관련한 논의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했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비트코인 현물 ETF 등 가상자산을 기초로 한 금융상품의 출시 예정일을 예단할 수는 없지만, 시장의 수요가 높아 자문기구 등에서 빠른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며 “이번 1차 회의에서도 기관들의 가상자산 투자를 위한 선결과제인 법인 실명계좌 발급 이슈가 논의돼 시장의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가상자산 관련 금융상품의 출시까지는 상당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봤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법인 계좌 발급에 대한 논의도 이제 첫발을 뗐을 뿐, 실제 발급이 이뤄지기까지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면서 “이 가운데, 비트코인 현물 ETF가 언제 상장될지 기다리는 것은 것은 아직 아주 먼 얘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