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조절' 김동연 경제부총리 vs '영향 없다' 장하성 BH실장 견해차 연장선김영주 노동장관 "과장된 우려 지양" 주문… "통계 왜곡 압력" 지적도
  • ▲ 최저임금.ⓒ연합뉴스
    ▲ 최저임금.ⓒ연합뉴스
    최저임금 인상과 고용 감소를 둘러싼 정부 내 경제 컨트롤타워 간 엇박자가 국책연구기관 간 대리전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일각에선 통계·분석에 대한 순수성을 지켜야 할 국책연구기관들이 정부 내 주도권 기 싸움에 휘말려 나팔수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근 국책연구기관장과의 간담회에서 친정부적인 정책분석을 주문하면서 예견됐던 일이라는 의견도 있다.

    5일 청와대는 전날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은 것에 대해 "개인 연구원의 보고서인 만큼 (청와대가) 굳이 공식 입장을 낼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최경수 KDI 선임연구위원은 KDI 포커스에 실은 보고서에서 "올해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도 고용감소 효과는 크지 않지만, 내년 이후에도 대폭 인상이 반복되면 고용감소 폭이 커지고 임금질서마저 교란돼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최저임금 인상속도 조절론과 맥이 닿아있다. 김 부총리는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고용에 미치는 영향과 시장·사업주의 수용성을 고려해 목표 연도를 신축적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밝혀왔다.

    이런 견해는 청와대와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청와대에서 열린 2018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소득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증가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는 앞서 통계청이 발표한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와 차이를 보이는 내용이었다.

    통계청은 지난달 24일 내놓은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소득하위 20%의 소득이 지난해보다 8% 감소했고, 하위 20%와 상위 20%의 소득격차가 벌어졌다"고 발표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 경제의 아픈 곳을 찌른 통계로 받아들여 졌다.

    문 대통령은 어떤 근거로 '90%' 발언을 했을까. 청와대는 통계청으로부터 가공되지 않은 원시자료를 넘겨받아 한국노동연구원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별도로 재분석을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 발언은 이 재분석 결과를 근거로 삼아 나왔다.

    하지만 해당 분석자료에는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많이 받는 자영업자와 실직자 자료가 빠져 있어 신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청와대가 통계를 왜곡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논란이 벌어진 후 통계청은 자료 출처를 명확히 하지 않아 구설에 올랐다. 통계청은 지난 1일 브리핑에서 해당 자료가 "통계청 게 아니다"라고 했다가 다음 날 "통계청이 제공한 자료"라고 말을 바꿨다.

    청와대도 문 대통령의 '90% 긍정적 효과' 표현 근거에 대해 적절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다가 사흘 뒤인 지난 3일에야 해명 자리를 마련해 의혹을 부채질했다.
  • ▲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왼쪽)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연합뉴스
    ▲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왼쪽)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연합뉴스
    노동계 일각에선 이번 국책연구기관 간 대리전 양상의 배경에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간 기 싸움이 작용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장 정책실장은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 우려와 관련해 "일부 식음료 분야 등을 제외하면 고용감소 효과가 없다는 게 현재까지 결론"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김 부총리는 "경험이나 직관으로 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이나 임금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맞섰다.

    두 경제정책 수장이 엇박자를 내자 급기야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지난 1일 브리핑에서 "우리 정부가 왜 기재부 장관을 경제부총리로 앉히고 그 직책을 줬겠느냐"며 "경제 전반 권한을 기재부 장관에게 줬기 때문에 경제부총리라고 한 것이다. 김동연 부총리에게 컨트롤타워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진화했다.

    청와대는 노동부와 함께 최저임금 인상을 주도해왔다. 김 부총리는 사실상 문재인 정부의 경제라인 중 유일하게 최저임금 인상에 관해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KDI와 노동연은 국무총리실 산하지만, 일감 대부분은 각각 기재부와 노동부에서 나온다. 이들 부처 입김을 무시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 ▲ 김영주 고용부 장관.ⓒ연합뉴스
    ▲ 김영주 고용부 장관.ⓒ연합뉴스
    일부 노동전문가는 정부가 정책효과를 홍보하려고 순수성을 지켜줘야 할 국책연구기관에 줄서기를 강요하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영주 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8개 국책연구기관장과 '노동시장 상황점검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간담회에는 KDI와 노동연을 비롯해 산업연구원, 한국고용정보원, 한국직업능력개발원,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참석했다.

    김 장관은 이 자리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등의 효과를 다각적으로 진단해 공유하고, 과장된 우려보다 발전적 논의가 이뤄질 수 있게 지혜를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김 장관의 당부가 있고 사흘 뒤 문 대통령은 노동연에 의뢰한 분석결과를 토대로 '90% 긍정 효과' 발언을 했다.

    일각에선 김 장관이 국책연구기관장들에게 친정부적인 정책분석을 내놓도록 주문한 거나 진배없다고 비판했다.

    노동부 한 오비(OB·전직 고위관료)는 "청와대로 불러 얘기했느냐, 노동부 장관이 전달했느냐 차이가 있을 뿐 국책연구기관장에게 정책분석을 친정부 쪽으로 왜곡해달라고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통계 수치를 왜곡하기는 어려우니 결과를 분석할 때 소득주도 성장 등 정부 정책 추진에 부합하게 진단해달라고 사실상 지침을 준 거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