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전문가 4인에게 종부세 기능 들어보니"어떤 재정학 교과서도 세금이 투기 막다는 내용 없어""대대적 손질 필요 … 실수요자 부과는 폐지해야 맞아"
  • ▲ 서울 도심의 아파트ⓒ뉴데일리DB
    ▲ 서울 도심의 아파트ⓒ뉴데일리DB
    [편집자주] 노무현 정부 때 도입한 종부세를 20년 만에 개편하자는 정치권의 공감대가 무르익고 있다. '부자 감세'로 치부하던 민주당이 개편 얘기를 꺼내며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투기방지용 취지와는 달리 중산층 조세저항까지 불러왔던 종부세의 문제점은 무엇이며, 왜 폐지해야 하는지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세금으로 집값 잡겠다는 것은 과시이며 애초 실패 정책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조세의 목적도, 기능도 '집값 상승 억제'는 없다. 어떤 국가도 집값이 올랐다고 보유세를 올리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

    세제 전문가들이 종합부동산세(종부세)에 대해 '집값 상승 억제'라는 취지를 살리지 못한채 중산층으로 부담이 전이된 '세금폭탄'이 됐다고 비판했다. '부유세' 기능을 상실한 만큼 손질이 불가피하다는 견해도 내놨다.

    종부세는 사실상 실패한 정책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설령 정치적 갈등으로 종부세 자체를 폐지할 수 없더라도 '실수요자 보호'라는 정책목적에 맞게 1주택자에 대한 과세는 폐지하는 게 맞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종부세, '집값 안정' 목적과 어긋난 부작용 생겨

    1일 본지가 국내 주요 세제 전문가를 대상으로 최근 불거진 종부세 존폐 논란에 대해 물었더니 당초 도입 취지에 배치되는 징벌적 제도로 변질됐고 집값 안정과 실수요자 보호 등의 기능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준형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종부세가 주택 보유를 억제하거나 가격 안정에 기여했다는 확실한 근거는 찾기 어렵다"며 "오히려 특정 지역의 투기 수요가 있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주면서 투기가 몰리는 부작용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이어 "지방 부유층이 지방 주택을 처분하고 서울의 똘똘한 한 채를 갖는 전략을 가속화했다"고 덧붙였다.

    '똘똘한 한채' 쏠림현상은 지역별 주택가격 양극화를 부추겼고 그 결과 문재인 정부 단 5년만에 서울 집값은 거의 3배 가까이 폭등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종부세 최고세율을 인하하고 기본공제액을 상향했음에도 서울 집값은 떨어지지 않았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집값 상승 억제는 완전경쟁시장에서만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울은 항상 초과 수요 상태로 가격 상승 요인이 크고, 종부세를 낸다 해서 주택 보유로 인한 기대수익이 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종부세가 집값 상승을 억제할 만큼의 영향력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 겪었듯이 세금을 통해 실수요자는 보호하되 투기를 없애는 것은 현실에서 불가능하다"며 "세금 교과서, 재정학 교과서 어디에도 세금의 기능 중에 투기 방지는 없다. 목적을 이룰 수 없는 것부터 종부세의 실패"라고 강조했다.
  • ▲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시민들이 종부세 규탄 피켓을 들고 서 있다.ⓒ연합뉴스
    ▲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시민들이 종부세 규탄 피켓을 들고 서 있다.ⓒ연합뉴스
    ◆무르익는 실거주 주택 종부세 폐지론에는 "없애야"

    도입 20년이 된 종부세가 집값 억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부작용이 큰 것으로 판명 난 만큼 대대적인 손질이 필요하다는 정치권 논의에 대해 세제 전문가들은 공감했다. 

    일부는 무조건적인 완화, 폐지를 논하기 보다는 당초 취지였던 극소수 고가 및 다주택 보유자에게 물리는 부유세 개념을 회복하고, 부작용으로 나타난 부분들을 제거한 재설계가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종부세의 본래 제도 목적이 부동산 투기 방지인 만큼 아예 폐기하는 것은 과하다"라면서도 "실제 거주하는 1주택자에게 종부세를 부과하는 것에 대해선 폐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또 "집 한 채는 기본적으로 행복 추구권과 거주 이전의 자유와 관련된 문제"라면서 "인권과 재산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부연 설명했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본인이 갖고 있는 주택 자산 가액이 높으면 (세금을)많이 내고 적으면 적게 내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면서 보유 주택 수보다 소유한 재산의 가액에 비례해 과세하는 방향으로 수정하자고 제안했다.

    임 교수는 "과세 기준이 1주택자는 12억원이고 다주택자는 9억원인데 이게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본다"면서 "전세 끼고 집 사서 시세차익 노리는 투기가 활발한데 이걸 그냥 놔둬야 하냐는 고민도 깊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과 지방 간 조세 형평성에 대한 논란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김우철 교수는 "종부세로 걷은 세수는 지방정부의 재원으로 들어가다 보니 조세 저항을 키울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서울에서 거둬들인 종부세는 46.1%에 달했지만, 배분된 부동산 교부금은 9.6%에 그쳤다. 반면 경상북도에서 걷힌 종부세는 1.4%에 그쳤지만, 배분된 교부금은 10.6%였다. 서울시민들로선 자신이 낸 세금이 다른 데로 쓰이니 조세 저항만 키운다는 뜻이다.

    김우철 교수는 "본인이 소유한 주택 근처의 학군, 의료·교통시설이 좋아지면 본인 재산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에 조세저항이 덜하지만, 종부세는 세금이 다른 지역 발전에 쓰여 조세 저항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 ▲ 어느 한 부동산의 매물들ⓒ뉴데일리DB
    ▲ 어느 한 부동산의 매물들ⓒ뉴데일리DB
    한편, 대통령실은 지난달 31일 종부세 폐지를 포함한 과세 형평 및 시장안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최근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비롯해 고민정 의원 등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종부세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을 밝히자 화답한 모양새다.

    그러나 정부·여당과 야당의 입장이 똑같은 것은 아니어서 보다 진전된 논의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대통령실은 민주당에서 언급한 '1주택자 종부세 폐지'로 개편하기보단 여전히 종부세 폐지가 옳다고 보고 있다.

    김준형 교수는 "종부세를 기형적인 형태로 운영하기보다 이미 '재산세'라는 별도의 보유세를 가지고 있으니 재산세와 통합을 포함한 전체 과세 체제를 정비해 나가야 한다"며 "애초 의도한대로 집값 상승을 막자는 것에 효과를 봤는지 되돌아 봐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