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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은산분리 규제 완화’ 말 한마디에 금융정책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
혁신이라는 명분 아래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을 늘려주겠단 생각이지만 이미 시민단체를 비롯해 소수정당 국회의원, 교수, 금융노조까지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논란의 시초, 케이뱅크 유상증자 실패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인터넷전문은행에서 시작됐다.
케이뱅크는 지난 7월 12일 1500억원의 유상증자를 했지만 KT, 우리은행, NH투자증권 등 3대 주주만 참여해 300억만 우선 납입됐다.
자본 확충 불가로 ▲직장인K 신용대출 ▲직장인K 마이너스통장 ▲직장인K 신용대출 ▲슬림K 신용대출 등이 일시 판매 중지됐다.
이에 심상훈 케이뱅크 대표는 “주주사가 20개에 달하는데 주주마다 자금 사정이 달라 유상증자 등 자본 조달이 쉽지 않다”며 “과감한 의사 결정과 증자를 감당할 수 있는 대주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은산분리 규제를 풀어 지분율 10%(의사결정권 4%) 규정에 묶여 있는 KT가 대주주가 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뜻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성장의 부진함을 은산분리 탓으로 돌리긴 명분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올해 1분기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는 각각 188억4300만원, 53억3400만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출범 초기 폭발적으로 늘었던 고객 수 증가율도 카카오뱅는 6월말 현재 2.6%에 불과하며 케이뱅크도 지난해 3분기 34.2%에서 올해 2분기 7%로 추락했다.
인터넷전문은행의 여신액 역시 지난해 7월 1조원에서 카카오뱅크 출범 이후인 8월 2조3000억원으로 130% 증가했지만 이후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해 지난해 12월 12.2%로 둔화해 올해 3월에는 6.1%까지 하락했다.
인터넷전문은행의 성장이 지지부진하다는 것이 여러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인터넷전문은행에 투자 중인 주주들이 사업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쉽게 자본을 추가 투입하긴 어려웠을 것”이라며 “애초에 금융당국이 자본 조달 능력을 검증했다면 지금과 같은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
금융산업은 시장 참여자, 금융당국 모두가 신뢰가 형성돼야 고객들이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는 특수한 산업이다.
특히 은행업의 경우 대부분 국가에서 강력한 규제로 산업을 통제한다. 은행이 망하면 국민도 망하게 되는 최악의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은행은 은행법에 근거해 탄생한 은행이며 은행업을 하기 위해선 법에서 규정한 인가 심사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이 중 하나가 자본 조달의 적정성으로 은행업 경영이나 사업에 드는 자금 조달 계획에 현실성이 있는지, 추가적인 자본 조달이 가능한지 등이 기준이다.
그런데 케이뱅크는 출범 이후 줄곧 자본을 추가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조대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케이뱅크의 자금 조달 방안에 대한 금융위의 실질적인 심사가 부족하고 소홀했던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심사 소홀을 넘어 인허가 과정에서 특혜 의혹도 있었다.
2015년 케이뱅크가 예비인가 신청 당시 주요 주주로 참여한 우리은행의 재무건전성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심사 기준에는 ‘직전 분기 BIS비율이 업종 평균치 이상일 것’이라고 돼 있지만, 당시 우리은행의 BIS비율은 14.01%로 평균치인 14.08%에 미치지 못했다.
이 같은 지적은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인사청문회에서 나왔다. 이후 금융위원회는 2016년 7월 문제가 된 ‘업종 평균치 이상일 것’이란 조건 자체를 시행령에서 삭제했다.
금융위원회 스스로 논란을 자초하고 감추기 위해 시행령까지 수정한 것이다.
◆대기업 사금고화 부채질…사실상 진입 문턱 낮춰
은산분리 규제는 재벌 대기업의 금융산업 진입을 막기 위해서다.
이에 은산분리 찬성 진영에선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자산 10조원 이상) 소속으로 총수가 있는 기업에 대해선 규제 완화를 배제하거나 대주주 대출과 발행증권 매입 제한으로 충분한 보완장치가 있단 주장이다.
하지만 현행 10% 제한에서 최소 34%까지 지분 확대를 허용하게 되면 실질적인 은행의 주인이 된다.
조대형 입법조사관은 “은산분리 규제 완화는 결국 은행의 주인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지배주주가 나타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주주 관점보다는 예금주 등 이해관계자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맹수석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벌의 사금고화 우려는 신흥 IT 재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이라며 “인터넷은행의 대주주인 IT 회사가 망하면 은행도 부실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이미 대기업이 금융회사를 사금고처럼 운영해 대규모 금융피해를 본 경험이 있다.
바로 2013년 동양증권 사태인데, 당시 동양그룹 경영진들은 자사의 부실회사채를 우량한 것처럼 속여 4만여명의 개인투자자들에게 판매했다.
동양증권이 재벌의 사금고 역할을 한 것이다. 증권회사와 제조업체 사례지만 은행에 산업자본이 투입되면 이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는다는 확신은 없다.
또 정부와 집권 여당은 진입 기업을 ICT 기술을 가진 기업만으로 한정하겠단 뜻을 밝혔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추혜선 국회의원은 “대주주 자격을 제대로 제한하면 ICT 기업 중에서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은 KT, 이미 자산규모가 8조원을 넘어서 카카오뱅크를 계열사로 편입하면 무조건 총수 있는 재벌기업에 해당하는 카카오, 자산규모 7조가 넘어 3조원 이내에서 은행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윤 내기 어려운 네이버, 개인정보 유출로 문제가 된 인터파크 등 ICT 기업들은 제외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추 의원은 “결국 SK텔레콤, 삼성SDS 정도밖에 남지 않는 상황에서 재벌기업에 은행업 진출을 허용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