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1000년 준비 '뉴비전' 10일 선포
  • ▲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100주년기념관 전경. ⓒ중앙대
    ▲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100주년기념관 전경. ⓒ중앙대
    국가 발전을 이끌 인재 양성을 위해 달려온 중앙대학교가 올해 개교 100주년을 맞이했다. 교육, 금융, 문화예술, 의료, 정·재계 등 그동안 다양한 분야에 인재들을 배출시킨 중앙대는 새로운 1000년을 준비하는 '뉴 비전(New Vision) 선포'를 앞두고 있다.

    1918년 정동유치원의 분원으로 설립된 중앙유치원을 시작으로 1928년 유치원 교사 양성기관인 중앙보육학교로 인가받은 뒤 1953년 4년제 종합대학으로 승격되면서 현재 중앙대로 성장했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 둥지를 틀고 있는 중앙대는 과거 일제 탄압으로 교사 구축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1936년 흑석동에 교육을 위한 교지가 마련됐지만 일제 간섭으로 교사 건축비 모금은 뜻대로 되지 않았고, 1933년 중앙보육학원을 인수한 임영신 박사는 미국으로 건너가 모금 활동을 벌였다.

    중앙대 100주년 기념사업단에 따르면 당시 임영신 박사는 자선사업가인 애니 파이퍼 여사, 영부인 엘리노어 루즈벨트 여사, 폰 클라인 스미스 남가주대 총장 등 미국 명사들을 찾아가 후학 양성을 위한 중요성 등을 강조했다.

    파이퍼 여사는 항일투쟁으로 옥고를 치른 임 박사에 관심을 표했고, 3만7천달러를 건넸다. 1930년대 후반 미국에서 새집 한 채 가격은 평균 3900달러였다. 교사 건축을 통한 후학 육성에 거액을 내놓은 것으로, 루즈벨트 여사는 현지 신문에 임 박사의 모금 운동을 지원해주기 바라는 칼럼을 게재했고 유명 인사들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중앙대 영신관은 파이퍼 여사의 도움으로 세워졌다. 교사가 마련되지 않아 피어선 성경학교에서 진행된 교육은 1938년 5월 영신관 건립으로 새로운 배움터가 구축됐다. 파이퍼 여사는 이후에도 30만달러를 쾌척해 '애니 머너 파이퍼 재단'을 설립, 중앙대를 후원했다.
  • ▲ 중앙대 100주년 기념사업단이 공개한 과거 학내 영신관, 중앙도서관, 운동장, 파이퍼홀 모습.
    ▲ 중앙대 100주년 기념사업단이 공개한 과거 학내 영신관, 중앙도서관, 운동장, 파이퍼홀 모습.
    일제 탄압으로 신입생 모집 중단, 휴교 조치 등의 시련이 있었지만 1945년 9월 다시 문을 열면서 '의에 죽고 참에 살자'라는 교훈과 교가를 제정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같은해 10월 중앙보육학원은 중앙여자전문학교로 개교식을 가졌고 1947년 중앙여자대학으로 개편, 이듬해 5월에는 남녀공학의 중앙대로 기틀을 마련해 나갔다.

    하지만 6·25 전쟁으로 중앙대는 휴교를 맞이하게 된다. 전란 중 중앙대는 부산 등에 분교 설치해 교육을 진행하며 후학 양성을 위한 대학의 역할을 이어나갔다.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1953년 문리과대학·법정대학·경상대학·약학대학 등 4개 단과대학 9개 학과 및 대학원을 설치하면서 종합대학으로 승격한 중앙대는 휴전을 맞이한 뒤 흑석동으로 복귀했다.

    다만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이 교사에 주둔하고 있어 가교사에서 강의를 진행하게 된다. 이후 미군으로부터 교사를 인수해 재정비한 뒤 인재 육성에 집중했다.

    1965년 1월에는 개편 등을 거쳐 6개 단대로 증설한 중앙대는 1971년에는 의과대학을 설치, 1980년 3월 경기 안성캠퍼스를 구축하면서 학교 시설을 확장했다.

    중앙대는 현재 15개 단대 29개 학부 23개 학과, 16개 대학원을 둔 종합대학으로 성장했다. 학사, 석·박사 등 20만명이 넘는 인재를 배출한 중앙대의 재적학생 규모는 2만5천여명으로 전국 200여개 일반대 중 상위권에 올라 있다.

    중앙대는 올해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이달 10일 새로운 1000년을 향한 '뉴비전 선포식'을 가질 예정이다.

    박상규 중앙대 100주년 기념사업단장은 8일 "중앙의 100년은 한국대학의 성장과 역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유치원에서 시작해 보육학원, 단과대학 종합대학으로 성장했으며 일제의 탄압을 이겨내고 6·25의 아픔 속에서도 부산 분교 등을 설립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4·19 학생의거에 앞장서는 등 중앙대의 역사는 대한민국 근대사와 그 궤를 같이한다. 그래서 중앙의 100년은 더욱 의미가 깊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