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제재심 취소…TRS 거래 양측 주장 여전히 팽팽3월 개최도 불확실…'통상적 거래' 업계 인식도 부담
  • 한국투자증권이 발행어음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최태원 SK그룹 회장 개인대출에 부당 사용했다는 혐의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징계 결정이 미뤄지고 있다.

    양측의 상반된 주장에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 쉽지 않은 가운데 안건 상정 자체가 지연되고 있다.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오는 28일 금융감독원의 제재심의위원회에서 한국투자증권의 자본시장법 위반 안건은 상정되지 않는다.

    오는 26일 별도로 제재심을 한 차례 더 열고 해당 안건을 심의하는 방안도 검토됐지만 취소됐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직접 한국투자증권의 2월 중 제재심 개최를 언급한 바 있어 28일 제재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결국 이달 내 결론은 나지 않게 됐다.

    결국 칼을 뽑아든 금감원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결정적 근거를 찾아야 하지만 아직 확실한 입증 카드를 뽑아들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투자냐, 총수 개인대출이냐 논란

    지난해 한국투자증권 종합검사 당시 발행어음 자금이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흘러 들어간 것을 두고 한국투자증권은 '투자'를, 금감원은 '개인대출'이라는 상반된 주장을 고수해 쉽게 결론에 이르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SPC를 통한 TRS(총수익스와프) 거래는 증권업계의 관행으로 대다수 증권사에서 이뤄지는 거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이번 거래를 한국투자증권과 최태원 회장 개인의 거래로 보게 되면 그동안 관행적으로 수행됐던 증권사의 모든 SPC 대출이 불법이 되는 것"이라며 "발행어음 자금을 SPC 유동화사채에 투자한 것일 뿐 개인에 대한 대출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금감원은 한국투자증권의 경우 발행어음 조달자금으로 사실상 최 회장에게 SK실크론 매입자금을 대출해준 것으로 보고 있다.

    형식상으로는 한국투자증권과 최 회장 사이에 SPC가 끼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자본시장법상 금지된 개인대출에 해당한다는 판단이다.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발행어음 자금은 개인 대출이 금지돼 있다.

    특히 발행어음 자금이 대기업, 특히 그룹 총수인 최 회장에 흘러간 것으로 볼 수 있는 여지 자체를 당국이 문제삼은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당국의 발행어음 사업자격 부여가 중기·벤처기업에 대한 모험자본 공급을 원활히 하겠다는 취지라는 점에서 해당 자금이 결과적으로 대기업 계열사 혹은 총수에 들어갔다는 점에서 문제를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점에서 사업의 적법성을 떠나 활용 목적 자체에 대해 금융당국이 경고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인수자금이 아닌 발행어음 통한 전단채 상환

    한국투자증권은 2017년 LG실트론(현 SK실트론)의 지분 19%(1600억원) 인수를 위해 페이퍼컴퍼니(SPC)인 키스아이비제16차(주)를 만들었다.

    당시 키스아이비는 최태원 SK회장과 5년 만기 총수익스왑(TRS)을 체결하게 되는데, 실트론 지분 매입을 위한 여유자금이 없었던 최 회장과 IB수익을 올리기 위한 한국투자증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이 과정에서 키스아이비16차는 실트론 매입을 위한 전자단기사채를 발행, 1600억원을 마련했다. 보통 전단채는 단기사채이기 때문에 만기시 다른 전단채를 신규발행하며 롤오버하게 된다.

    이 과정까지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전단채의 롤오버 문제가 발생하면서 투자자들에게 조기상환해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한투는 롤오버를 위해 키스아이비에 발행어음을 통한 상환자금을 대여해줬다.

    발행어음은 법으로 개인에 대한 신용공여가 금지 돼 있다. 금감원도 이 부분을 콕집어 실질적으로 최태원이라는 개인에게 발행어음 자금이 대여된 것으로 보고 법위반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키스아이비가 실트론 매입자금을 시장에서 조달한 것까지 문제가 없지만 이후 전단채 상환과정에서 소요된 자금이 한투 발행어음이었다는 지적이다.

    TRS 계약 상대방이 최태원 개인이 아닌 SK계열사이거나, 한투가 전단채 상환용으로 발행어음 대신 다른 자금을 사용했다면 문제가 없었다.

    대심제, 시장영향 고려한 철저한 준비에 지연

    명확한 제재 근거와 결정적 증거가 현재로서는 부족하기 때문에 제재심이 미뤄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TRS 거래에 대한 입장이 한국투자증권의 주장과 맥락이 같다는 점에서 당국은 여론을 의식할 수 밖에 없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TRS거래는 거래수단 가운데 하나의 관행으로, 위법이 아니다"라며 "통상적으로 TRS거래와 관련해서 당국에서 별도의 제재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다수의 자산운용사들이 증권사 프라임브로커서비스(PBS)를 통해 TRS 거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TRS 계약에 따른 소유권 및 주주로서의 권리는 SPC에 있기 때문에 이번 계약 역시 최태원 회장 개인에 대한 대출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일부 심의위원도 그동안 SPC를 통한 대출이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던 만큼 중징계는 다소 과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제재심은 법정처럼 금감원 조사 부서와 제재 대상자가 함께 출석해 의견을 제시하는 대심제로 운용돼 금감원 입장에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례가 발행어음 사업자에 대한 첫 제재인 만큼 시장에 미칠 영향 등을 다각도로 검토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 금감원의 설명이다.

    금감원은 아직 다음 제재심 일정을 잡지 못한 상태다. 법률검토 작업이 얼마나 걸리느냐에 따라 다음 제재심 일정이 달라질 것으로 보이지만 다음달 제재심 개최도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금감원이 제재심을 열어 제재를 의결해도 최종 결정은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향후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위원회 심의를 더 거쳐야 하기 때문에 최종 제재 결정 때까지는 더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