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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에 거센 후폭풍이 몰아칠 것으로 예상된다. 조양호 회장의 이사 연임이 무산되면서 책임경영에 적잖은 공백이 우려되기 때문. 임직원들은 망연자실해 하며 향후를 걱정하고 있다.
올해 6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총회도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경영진들은 비상대책 수립에 나서는 등 혼란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27일 오전 9시 서울 강서구 본사에서 열린 대한항공 정기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건이 부결됐다.
이날 주총에 참석한 주주는 5789명, 주식수는 7004만 946주로 의결권 있는 주식의 73.84%를 차지했다. 보통결의 사항 뿐 아니라 특별결의 사항도 결의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조 회장 연임 안건은 출석한 의결권 있는 주식수 가운데 찬성 64.1%, 반대 35.9%로 부결됐다. 대한항공 이사 선임은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가 필요한데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조 회장 및 오너일가와 한진칼 등은 대한항공 지분 33.3%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2대주주인 국민연금의 11.56%가 반대표를 던지면서 조 회장 연임이 무산된 것.
이외에 ▲재무제표 및 연결재무제표 승인의 건 ▲정관 일부 변경의 건 ▲이사 보수한도 승인의 건 등은 원안대로 통과됐다. 사외이사에는 박남규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가 신규 선임됐다.
◇ 국민연금 반대가 승패 갈라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지난 26일 조 회장 연임 반대를 결정했다.
수탁위는 당초 전날 대한항공의 정기주총 의결권 행사 방안을 심의, 결론짓기로 했으나 위원 간 의견이 엇갈리면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조 회장이 배임, 횡령 혐의로 검찰에 기소돼 사내이사로서 의무를 다하는데 어려움이 많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일부 수탁위원들은 조 회장에 대한 1심 재판 결과가 나온 뒤에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으나 '기소 단계'에서도 반대가 가능하다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결국 국민연금은 조 회장 연임에 반대를 결정했고, 그것이 치명타가 된 셈이다.
앞서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와 서스틴베스트,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등은 조 회장 연임에 반대 권고를 했다. 이들은 위법협의를 받는 조 회장의 재선임시 주주가치 훼손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표 행사를 권유했다. 해외 연기금인 플로리다연금도 조 회장 연임 안건에 반대의사를 밝혔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 단체들은 소액주주를 대상으로 의결권 위임을 권유하며 조 회장 연임 반대 의견을 모았다.
이날 오전 7시30분부터 박창진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장을 비롯한 직원연대가 대한항공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 회장 연임의 반대를 주장했다.
박 지부장은 “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 이사 연임을 반대하는 140명의 소액주주들의 위임을 받아 주총장으로 간다”며 “소액주주들의 위임에 따라 반대표를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
주총장에서는 주주들간의 고성이 오가면서 혼란이 이어졌다.
주주 대리인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재무제표 안건을 진행하는 도중 회사의 방만경영으로 주주들이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채 의원은 “땅콩회항 사건 이후 지금까지 조 회장 일가의 황제 경영으로 회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탓에 대한항공의 재무제표가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일부 주주들이 안건과 상관없는 발언은 삼가라며 서로 고함을 쳤다.
김남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는 조 회장이 배임 횡령으로 270억원이 넘는 피해를 회사에 입혔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감사가 이뤄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 규명하라고 촉구했다.
조 회장 사내이사선임과 관련해 안건이 사전 위임장과 외국인 주주 사전 조사에 따라 투표없이 진행되면서 주총장에 참석한 주주들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고 일부 주주들이 지적했다.
일부 주주는 “주주 안건마다 현장에서 찬반이 집계되지 않는 것은 주총이 위법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며 “현장 참석 주식에 대한 찬반을 집계해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주총을 마치고 민주노총, 참여연대, 민변 대리인 등은 이번 결과가 주주의 힘으로 재벌 총수가 물러나는 좋은 선례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오늘 대한항공 주총은 주주들의 힘을 보여준 것으로 큰 의미가 있다”며 “조 회장이 사내이사에서 물러나는 것이 또 다른 꼼수를 위한 물러남이 아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조 회장 퇴직금이 700억~800억원 수준인데 회사에 피해를 입힌 것을 감안하면 퇴직금도 받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 침통한 대한항공, 대책 마련에 분주
이로 인해 대한항공 분위기는 침통한 상태다. 임직원들은 조 회장의 연임 무산이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향후 경영에 대한 불안감에 삼삼오오 모여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곧바로 경영진들이 모여 이번 사태에 대한 대책 마련에 나선다.
조양호 회장이 대한항공 등기임원에서 물러나게 됐지만,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어 그룹 회장으로서의 역할은 유지하게 된다.
그럼에도 대한항공은 조원태 총괄사장 중심으로 당분간 경영이 이뤄질 수 밖에 없게 됐다. 대한항공은 향후 혼란을 최소화하고 조 회장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방안을 찾겠다는 계획이다.
한편, 오는 29일 열리는 한진칼 주총에서 주주제안 자격이 없는 KCGI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도 관심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