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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 시장이 최근 강남 재건축 인가가 어렵다고 선을 그으면서 재건축 단지들의 집값 하락이 가속화되고 있다. 강남뿐 아니라 목동·여의도 등 재건축 단지가 몰려있는 지역들도 재건축 사업 진행에 차질을 빚고 있다.
19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강남의 대표 재건축 단지인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76㎡(13층)가 지난달 15억300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같은 층 같은 평형이 17억5000만원에 실거래됐으니 5개월새 2억2000만원이나 떨어진 셈이다.
전용 84㎡ 역시 지난해 10월 19억6750만원(11층)에 거래되던 것에서 지난달 16억9500만원(13층)까지 떨어졌다. 무려 실거래가가 2억7250만원이나 급락했다.
게다가 최근엔 박원순 서울 시장이 한 TV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지난해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부동산 가격을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며 "그런 상황에서 지금은 (강남 재건축 인가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해 파장을 일으켰다.
사실상 강남 재건축 단지들의 건축 인가를 당분간 내주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 발언 이후 은마아파트, 잠실 주공5단지 등 지은지 40년이 넘은 노후아파트 조합원들은 그동안 서울시 가이드라인을 고분고분 따랐는데 이제와서 딴 소리하는 것은 '행정갑질'이라며 격분하고 있다.
덩달아 이들 재건축 단지들의 집값도 연일 하락세다. 은마아파트의 경우 최근 부동산 중개업소에는 전용 76㎡가 14억 후반대에 매물이 나와 있다. 84㎡ 역시 16억5000만원까지 떨어졌다.
잠실주공 5단지도 전용 81㎡가 지난해 9월 20억원 선에서 거래되던 것에서 최근엔 17억 후반대에 실거래된다. 박 시장 발언 이후 중개업소에는 17억4000만원(14층)에도 급매물이 나와 있다.
업계 한 전문가는 "당분간 강남 재건축 단지들은 사업성이 불투명해지면서 약세를 보일 것"이라며 "공급 부족은 몇 년 후 또다시 집값 폭등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뿐 아니라 목동·여의도 등의 재건축 단지들도 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이들 지역은 서울시가 도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지정하는 지구단위계획구역에 포함돼 있어 개발이 쉽지 않다.
대표적으로 목동신시가지 아파트는 14개 단지를 한데 묶어 '지구단위계획'으로 재건축이 추진되고 있지만 서울시 문턱을 넘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주민들은 지난해 말 시청 앞에서 시위를 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시가 국제금융중심지로 개발하겠다는 여의도 역시 마스터플랜이 보류되며 재건축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에 따라 올 들어 1억원 이상 가격이 하락한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서울시가 지금처럼 강력한 재건축 규제를 이어나갈 경우 장기적으로 주택 공급이 부족해져 집값이 급등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집값을 잡기 위해 공급을 안 하는 건 굉장히 단편적인 생각"이라며 "단기적으로 효과를 볼 수는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시장 왜곡으로 이어져 가격이 급등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