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가 코오롱생명과학의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이하 인보사)'의 품목허가 취소 결정 과정이 법적 절차에 어긋난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인보사 사태' 이후 식약처의 눈치를 보며 숨죽였던 코오롱생명과학이 반격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식약처는 지난 28일 기자회견을 통해 인보사의 품목허가를 취소하고 형사고발에 들어가겠다고 발표했다. 식약처는 이날 오후 8시경 코오롱생명과학에 청문통지서를 보냈다.
◆ 식약처, 허가 취소 언론 브리핑 후 청문 통지… 법학계 "위법성 없어"
행정절차법을 살펴보면, 행정청은 당사자에게 의무를 부과하거나 권익을 제한하는 처분을 하는 경우에는 처분에 앞서 당사자 등에게 통지해야 한다. 또한, 행정절차법 제21조 제2항과 약사법 제77조에 따르면 행정처분에 앞서 청문 실시를 해야 한다.
식약처는 당사자에 허가 취소에 대한 통지 없이 해당 처분을 발표하고 뒤늦게 청문통지서를 보냈다. 이는 명백히 법적 절차를 위반한 것이기 때문에 허가 취소는 무효라는 게 코오롱생명과학 측의 주장이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지난 28일 허가 취소가 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확실한 입장을 정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이날 코오롱생명과학이 입장문을 통해 "회사의 입장이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힌 것으로 보인다.
식약처는 코오롱생명과학에 청문 통지서를 보내면 공시해야 하기 때문에 어차피 허가 취소 여부가 알려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오롱생명과학에서는 지난 29일 저녁 식약처로부터 인보사 행정처분 사전통지 공문을 수령했다고 공시했다.
또한, 식약처는 "지난 28일 언론브리핑과 보도자료 배포를 통해 인보사 허가 취소를 발표한 것은 인보사 관련 종합조사 결과에 따른 조치로서 허가 취소 처분 절차를 진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명했다.
법학계에서는 식약처의 행위가 적정성에는 논란이 있겠지만 위법성은 없다고 보고 있다. 청문 통지를 비밀리에 진행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는데다 식약처가 허가 취소에 대해 언론에 미리 알린 것은 별개의 행정행위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는 "식약처가 피허가권자(코오롱생명과학)에 통보하기 전에 언론에 알리는 것은 별개의 과정이기 때문에 위법한 것이 아니다"라며 "행정청으로서는 허가취소에 대해 은닉한 상태에서 (청문 등의) 절차를 진행하다가 피해를 볼 수 있는 개인투자자들을 보호·방어하는 차원에서 별개로 (언론브리핑을) 진행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오 교수는 "청문 통지를 꼭 비밀리에 해야 한다는 원칙은 없다"며 "(허가 취소에 대해) 미리 알린 것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사안의 중대성, 긴급성에 비하면 오히려 공개를 안 하는 것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 코오롱생명과학의 반격… 美 FDA 임상 3상 재개 통한 반전 모색
이번에 코오롱생명과학이 식약처와의 관계 악화를 감수하고 반격에 나선 배경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인보사 사태 이후 코오롱생명과학은 극도로 식약처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코오롱생명과학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임상 3상 재개를 통한 반전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 임상 3상을 무사히 마치면 인보사 시판이 가능하다는 계산에서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연골세포(TGF-β1 유전자가 삽입된 동종유래 연골세포)에서 신장성분(TGF-β1 유전자가 삽입된 태아신장유래세포·GP2-293세포)으로 품목변경해 미국 임상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미국 임상 3상이 재개될 경우 코오롱생명과학은 1조원대의 수출 계약 파기 위기를 넘길 수 있다. 주주·환자들의 줄소송에 대응하기에도 보다 수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인보사의 미국 임상 3상 가능성에 대해 대체로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인보사의 미국 임상 3상 재개는) 아마 쉽지 않을 것"이라며 "식약처에서 허가 취소가 난 이상 코오롱생명과학으로서는 미국 임상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내달 18일 오후 3시 청문에 참석해 인보사 허가 취소 행정처분 수위에 대한 입장을 표명할 예정이다. 식약처는 코오롱생명과학이 이의 제기 절차를 마치는 대로 조속히 최종 행정처분을 시행할 계획이다. 청문으로 식약처의 허가 취소 결정이 번복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식약처가 내달 허가 취소 처분을 내릴 경우 코오롱생명과학은 빠른 시일 내에 식약처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행정소송은 정부로부터 취소 통보를 받은 이후 90일 이내에 제기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이번 식약처의 허가 취소 결정이 성급했다고 봤다. 바이오의약품의 특성상 케미컬의약품과 달리 보다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는 얘기다. 코오롱생명과학에 과학적으로 해명할 기회를 충분히 줬어야 한다는 아쉬움 섞인 지적도 제기됐다.
인보사 사태를 타산지석 삼아 위기관리 관련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향후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바이오신약에 대한 위기관리 프로토콜을 만들어야 한다"며 "식약처의 조사 과정을 보다 과학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