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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전방위 부동산 규제로 상반기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하락세를 기록했다.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는 시그널을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는데다 하반기 새 아파트 입주물량도 대거 예정돼 있으면서 집주인들도 전셋값을 낮추며 '세입자 모시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전세금을 제외하고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갭 투자'의 경우 급매물로 집을 내놔도 쉽게 팔리지 않는데다 최근 전셋값이 하락하면서 역전세와 깡통전세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2일 경제만랩에 따르면 올 상반기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19곳의 아파트 전셋값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만랩이 KB부동산 주택가격동향을 분석한 결과 상반기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1.09%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 1월만 하더라도 3.3㎡당 평균 전셋값은 1770만원이었지만, 6월에는 1751만원으로 1.07% 내려앉았다.
전셋값이 상승한 곳은 △종로 △송파 △노원 △용산 △중랑 △도봉 등 6개구에 불과했다. 종로구의 경우 1월 1738만원에서 6월 1755만원으로 0.95% 상승했다. 이어 송파구 0.82%, 노원구 0.59%, 용산구 0.51% 등의 상승률을 보였다.
반면 강동구의 경우 급증한 입주물량으로 전셋값이 대폭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1809만원에서 1719만원으로 하락하면서 상반기에만 4.97% 떨어졌다.
대규모 아파트 입주가 예정된 강동구는 전세물량에 수요가 따라가지 못하자 가격을 대폭 낮추고 있는 모양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고덕주공 9단지' 전용 83.3㎡의 경우 1월 4억원(14층)에 전세계약이 이뤄졌지만 6월에는 3억500만원(11층)에 거래가 이뤄지면서 반년새 1억원 가까이 낮아졌다. 강동구 암사동 소재 '프리미어 팰리스' 전용 84.9㎡도 1월 6억원(15층)에 전세거래가 이뤄졌지만, 6월에는 4억8000만원(20층)까지 내려왔다.
전문가들은 강동구 전셋값 하락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말 입주가 시작된 '래미안 명일역 솔베뉴' 외에도 9월 입주를 시작하는 '고덕 그라시움(4932가구)', 12월 '고덕 센트럴 아이파크(1745가구)'와 '고덕 롯데캐슬 베네루체(1859가구)' 등 대규모 단지가 줄줄이 입주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거래량 감소도 전셋값 하락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집계를 보면 강동구 전세 거래는 3월 1119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6월에는 381건으로 줄어들었다.
강동구와 가까운 송파구와 경기 하남 미사신도시 등에 여파가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전셋값은 입주 시작 2개월에 저점을 찍는데, 1만2000가구 릴레이 입주를 앞두고 가격 조정이 시작된 셈"이라며 "강동을 포함한 미사신도시 등 근접 지역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강남과 서초 등지에는 간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변곡점이 없는 한 약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오대열 경제만랩 리서치팀장은 "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대출과 세 부담이 높아져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진 이들이 전세시장으로 옮길 가능성도 있지만, 올 하반기 강동구 위주로 예정된 입주물량이 적지 않은 만큼 한동안 서울 전세시장의 약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부동산학)는 "전세시장 약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공급 확대 등 시장 지표로 볼 때 정도가 더 강해질 수 있다"며 "상황이 더 악화될 경우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깡통전세'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