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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더블폰 시대가 열리고 '제2의 스마트폰 혁명기'가 도래한 가운데 화학업계에서도 핵심소재인 투명 폴리아미드(PI)필름 양산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단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세계 최초로 양산에 돌입했으며 SKC와 SK이노베이션 등도 본격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세계 최초 투명PI필름 양산을 발표했다.
노정석 코오롱인더스트리 기획담당 상무는 3분기 실적발표회에서 “전에는 샘플 공급구조여서 별다른 언급을 못했지만, 현재는 공장이 가동, 양산이 본격화됐다"며 "향후 가동률은 고객사와의 관계와 수요 확충에 따라 달라질 부분"이라고 밝혔다.
투명PI필름은 삼성전자를 비롯해 화웨이, 모토로라 등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잇달아 폴더블폰을 내놓으면서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스마트폰 기술 변화의 직접적인 수혜주로 꼽히며 판매 증가에 따른 반사이익을 누릴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디스플레이에는 강화보호필름이 적용된다. 하지만 폴더블 디스플레이에는 접히면서도 얇고 가벼우며 디스플레이를 보호할 내구성과 투명하게 빛을 투과할 수 있는 소재가 필요하다.
투명PI필름의 경우 유리처럼 표면이 딱딱하면서도 수십만번 접었다 펴도 흠집이 남지 않아 기존 액정표시장치(LCD) 등의 덮개유리(커버글라스) 대체 필름으로 쓰인다.
현재 투명PI필름 사업은 코오롱인더스트리와 함께 SKC,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일본 스미토모 등이 경쟁 중이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이 2005년부터 제품 개발을 지휘해 2016년 생산기술을 확보했고, 지난해 경북 구미공장에 투명PI필름 양산 체제를 가장 먼저 갖췄다. 그동안 투명PI필름은 시제품만 나와 있던 상태로, 코오롱인더스트리가 1년 동안 시생산·샘플 공급 등의 과정을 거쳐 세계 최초로 상업생산에 돌입한 것이다.
생산규모는 연간 100㎡로, 5.5인치 패널 기준 약 3000만대를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설비와 연구개발에만 대략 2000억원이 투입됐다.
또한 투명PI필름과 관련한 국내 특허의 80%를 자치하는 104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해외에서도 관련 특허 중 절반가량인 200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자체 개발한 투명PI필름에 CPI®라는 이름을 붙이고 국내 상표 등록까지 마치며 시장 선점을 위한 준비를 끝냈다.
노정석 상무는 "최근 양산에 들어가 매출이 생겨나고 있다"며 "폴더블폰 출시로 많은 고객사 대상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다. 의미 있는 수익성 개선은 이른 시간 내 실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국내외 글로벌 디스플레이사에 투명PI필름을 공급 중이다. 삼성전자와는 차기 폴더블폰에 쓰일 투명PI필름 납품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 출시된 갤럭시 폴드 초도물량에는 일본 스미토모화학의 파일럿 제품이 쓰였다.
노 상무는 "CPI는 고객사가 원하는 수준의 강성과 탄성을 모두 갖췄다"며 "이런 소재의 경우 경쟁력이 적용성에서 나오는 만큼 고객 사용성을 최대한 빨리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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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IET와 SKC도 양산을 준비 중이다.
SKC는 지난달 충북 진천공장에 생산설비를 준공하고 양산 준비에 돌입했다. 이달 말까지 시운전을 진행하고 연내 고객사 인증과정을 거쳐 내년 상반기까지는 상업생산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필름원단 생산 기능과 코팅 기능을 일원화해 제품 경쟁력을 높이기로 했다. SKC가 고품질의 투명PI필름 베이스필름을 만들면 자회사 SKC하이테크앤마케팅이 고경도 코팅을 진행한다. SKC하이테크앤마케팅은 중국 소주공장 투명PI필름설비 확보에 170억원을 추가 투자, SKC 지원사격에 나선다.
SKIET도 투명PI필름 양산 준비에 나섰다. SK이노베이션은 400억원을 투자해 지난 4월 충북 증평공장 부지 내 투명PI필름 브랜드 FCW(플렉서블 커버 윈도우) 생산 공장 가동에 들어갔다. 그동안 업체의 폴더블 디스플레이 개발에 참여하며 제품 실증을 진행해왔다.
현재 시운전 기간을 거쳐 늦어도 내년 1월까지는 상업생산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향후 시장 확대를 고려, 2공장 건설도 검토 중이다. SK이노베이션의 FCW의 경우 한 공장 내에서 베이스필름 제조와 하드코팅 공정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생산효율성도 갖췄다는 평이다.
이에 반해 스미토모는 파일럿 공장만 있을 뿐 대규모 생산체제를 갖추지 못했다. 완공 후 시운전을 하고 수율 및 채산성을 맞추려면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과의 수출규제 갈등 심화로 삼성전자가 국내 파트너사를 찾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는 상황에서 스미토모 측에서도 대량 공급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안다"며 "코오롱의 투명PI필름이 삼성전자의 퀄리티 테스트까지 통과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폴더블폰과 롤러블TV 등 휘어지는 디스플레이 시장이 커지면서 투명PI필름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면서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은 현재 안전성 평가를 진행 중이며 물밑에서 스마트폰 제조사들과 각종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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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삼성전자는 9월 국내에서 갤럭시 폴드를 출시한 데 이어 최근 중국에서도 출시했다. 모토로라는 13일 폴더블폰 '레이저V4'를 공개한다. 화훼이 역시 15일부터 폴더블폰 '메이트X'를 자국 시장에 출시한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도 지난 2일 폴더블폰 '서피스듀오'를 깜짝 공개한 바 있다.
스마트폰 시장 조사업체인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는 글로벌 폴더블폰 출하량을 올해 320만대에서 2020년 1360만대, 2021년 3040만대, 2022년 5010만대까지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업계에서는 웨어러블 기기가 상용화되는 등 제2의 스마트폰 혁명이 본격화됨에 따라 곡선 형태의 수요가 증가하고 투명PI필름 수요도 함께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키움증권은 "아직 폴더블폰 출하는 일반 스마트폰에 비해 미미하지만, 실제 투명PI필름 사용량은 출하량 대비 5배 이상 클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망했다.
다만 폴더블폰 시장이 이제 막 열린 만큼 확산 속도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은 불안요소로 꼽힌다. 폴더블폰의 성공을 가늠할 수 있는 물량이 풀리지 않아 수익성을 따지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에 납품하는 스미토모도 양산 라인이 아닌 파일럿 라인에서 부품을 공급 중으로, 수율이 맞지 않아 밑지고 장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적어도 폴더블폰 물량이 몇백만대는 풀려야 양산한다고 볼 수 있는데, 지금은 경영상 판단을 하기가 힘든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양산은 수율도 문제지만, 공급물량이 어느 정도 뒷받침돼야 수익성을 가늠할 수 있다"며 "성장가능성은 모두 공감하지만, 아직은 불확실성이 큰 만큼 사업 초기 시행착오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