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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앤드첨단소재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룹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태양광사업에서 괄목할만한 실적을 거두면서 '회장의 아들'이 아닌 '태양광사업의 총사령관'으로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특히 이번 인사를 통해 내년 출범 예정인 한화솔루션(가칭)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할 예정인 만큼 김동관 신임 부사장의 행보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김 부사장 역시 인사 과정에서 '김동관 사단'을 구축한 만큼 태양광 시장에서의 점유율 1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5일 업계에 따르면 2일 한화 임원인사를 통해 김 부사장이 승진했다. 2015년 전무에 오른 이후 4년 만의 승진이다.
김 부사장은 그동안 태양광사업 영업·마케팅 최고책임자(CCO)로서 미국, 독일, 일본, 한국 등 세계 주요시장에서 한화가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하는데 핵심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이 한화 측 설명이다.
한화 관계자는 "그룹이 2010년 태양광사업에 처음 진출한 이 후 한 때 사업철수설이 나돌 정도로 암흑기를 겪었으나, 김 부사장이 2012년 1월 합류한 이후 사업을 뚝심 있게 추진하면서 지금과 같은 결실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김 부사장이 태양광사업에 합류한 시점은 2012년 1월 기획실장으로 한화솔라원에 부임하면서부터다. 당시 태양광사업은 국제유가 하락과 정부 보조금을 등에 업은 중국 기업들의 치킨게임이 겹치면서 전망이 밝지 않은 상황이었다.
웅진그룹과 같이 태양광사업에 나섰다가 유동성 위기에 봉착, 그룹이 붕괴되는 일도 있었던 시기였다. 솔라원 역시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김 부사장은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2012년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 누적적자 4600억원, 공장가동률 20%로 파산한 독일 기업 '큐셀'을 인수했다. 당시 삼성, LG, 현대중공업 등 대기업그룹들이 과잉공급으로 태양광사업에서 발을 빼던 것과 배치되는 행보였다.
그럼에도 큐셀을 인수해 규모의 경제를 도모함과 동시에 기술력도 확보했다.
이듬해 큐셀에 부임한 김 부사장은 2014년 큐셀의 흑자전환을 성공한 이후 솔라원으로 복귀해 2015년 2월 솔라원과 큐셀 합병을 진행했다.
합병 후 미국 넥스트에라에너지와 1.5GW 모듈 공급계약을 체결하는 등 잇달아 대형 수주계약을 성공시키면서 2011년부터 적자를 이어오던 태양광사업을 흑자로 전환시켰다. 넥스트에라와의 계약은 당시 국내 태양광시장 전체와 맞먹는 수준의 규모로, 업계에서는 단일 공급계약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였다.
김 부사장이 이끄는 태양광사업은 2016년 미국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했고, 이듬해에는 일본 시장 1위를, 지난해에는 독일 시장 1위를 거머쥐는 등 탄탄한 입지를 다지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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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도 자연스럽게 반등했다.
분기보고서 분석 결과 한화가 본격적으로 태양광사업을 시작한 2011년 부문 매출액은 3분기 누계 기준 9139억원에서 올해 4조2976억원으로 4.70배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2011년부터 3년간 누적 손실이 2085억원에 달했지만, 이후 올해까지 6년간 총 5118억원, 평균 853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실적 측면에서는 이미 한화케미칼의 주력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이다.
태양광사업은 한화케미칼의 연결 기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분기 누계 기준 직전 3년 평균 38.2%였으며 올해의 경우 60.9%에 달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2020년 매출 6조7414억원을 달성, 전체 매출액 10조4111억원의 64.7%를 담당하게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 부사장은 이번 인사와 곧 있을 합병을 통해 그룹의 태양광사업을 진두지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는 내년 1월 그룹 핵심 계열사 한화케미칼에 한화큐셀을 흡수합병시켜 한화솔루션을 출범시킬 계획이다. 김 부사장은 합병 법인에서 핵심적인 전략부문장을 맡으면서 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 것으로 보인다.
방산·기계, 화학·태양광, 금융 등 크게 세 부문으로 나눠져 있는 한화의 사업 포트폴리오 가운데 화학·태양광 부문을 김 부사장이 총괄해서 챙기는 셈이다.
이 관계자는 "김 부사장은 태양광을 비롯해 석유화학과 소재를 아우르는 한화솔루션의 중장기 전략을 수립할 것"이라며 "신시장 개척과 사업모델 혁신을 통해 한화솔루션의 글로벌 성장을 이끄는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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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인사에서도 태양광 분야 승진이 대거 이뤄지면서 김 부사장에 힘이 더욱 실리게 됐다.
상무 이상 승진자를 보면 한화첨단소재 출신 금종한 전무를 제외하고 김은식, 박상욱, 홍정권 상무 모두 한화큐셀에서 국내외 태양광사업을 담당했다. 신임 상무 3명 모두 한국과 중국의 생산 부문에서 경력을 쌓았다.
김 상무는 한화 태양광사업의 시작을 함께 한 '개국공신'이다. 그는 한화가 2010년 중국 태양광 기업 솔라펀파워홀딩스를 인수할 때부터 현지에 파견됐다. 2006년에는 중국 치둥공장에서 운영 부문 부장을 역임했다. 세계 최대 태양광시장인 중국에서 한화의 태양광 입지를 넓히는데 기여했다.
박 상무는 한화케미칼 출신이다. 한화케미칼 여수 계전팀장으로 있다가 한화큐셀코리아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공장 E/U운영부문장과 생산지원부문장을 맡았다. 2016년 8월부터 1년가량 사내이사로 활동했다. 홍 상무 역시 한화큐셀코리아 한국공장 모듈사업부장으로, 2017년 10월부터 사내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뿐만 아니라 한화큐셀에서 김 부사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40세(1979년생) 팀장 두 명도 상무보로 승진했다. 김강세 상무보는 전략팀장, 영업기획팀장 등을 맡았다. 김 부사장이 CCO 직책을 수행하는 직할팀에 있었던 셈이다. 이준우 상무보는 말레이시아 공장장으로 태양광 셀·모듈 생산라인 안정화에 기여했다.
한화큐셀은 이번 인사에서 전무 1명, 상무 3명, 상무보 9명 등 모두 14명이 승진했다. 김 부사장까지 합치면 그룹 전체 임원 승진자 118명 중 12.7%에 달한다.
한화 역시 태양광사업에 힘을 실을 준비가 됐다. 한화케미칼도 앞으로 석유화학이 아닌 태양광 중심의 회사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룹은 지난해 태양광, 방산, 항공, 석유화학, 서비스 등 주요 사업에 2022년까지 22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 중에서 단일 사업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9조원을 태양광산업에 투입한다.
또한 9월 인사에서 한화케미칼 대표이사에 태양광사업 출신인 이구영 부사장을 앉혔다. 한화케미칼 대표에 태양광사업 출신이 앉은 것은 이 부사장이 처음이다.
한화케미칼이 한화큐셀과 합병한 뒤 사명을 한화솔루션으로 바꾸기로 한 결정 역시 석유화학 중심의 사업구조에서 탈피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화케미칼이 사명에서 '화학'이나 '케미칼'을 붙이지 않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화케미칼은 1982년 한화그룹에 한양화학으로 인수된 뒤 1994년 한화종합화학, 1999년 한화석유화학, 2010년 한화케미칼로 이름을 바꿨다. 꾸준히 화학 또는 케미칼을 사명에 넣어 정체성을 유지한 것이다.
다만 내년 한화솔루션을 둘러싼 대내외 여건이 녹록치 않은 만큼 김 부사장이 연착륙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태양광사업의 경우 세계 최대 내수시장과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한 중국 업체들이 급부상하면서 경쟁이 심화될 전망이며 석유화학사업도 중국의 자급률 상승과 미국의 셰일가스 기반 증설 등으로 국제 제품가격 약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낙관적이지 않다. 첨단소재 부문도 전방위산업인 자동차업계의 부진이 지속하고 있다.
김 부사장은 이 같은 불확실성을 타개하기 위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한 사업구조 혁신과 소재 부문 고부가 스페셜티 제품 전환을 가속화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주력 부문으로 자리 잡을 태양광사업은 미래 신소재 개발, 유럽·일본에서 에너지 리테일(전력소매)사업 강화 등 차별화 전략에 속도를 높인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