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타 재수도 '미시행'으로 가닥…시기상조론에 발목대통령 응원메시지·실세 장관·국회 공조 등 백약이 무효과기평 제2쇄빙선 건조 시기상조 입장인듯...삼수도전 관심
  • ▲ 7487t급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연합뉴스
    ▲ 7487t급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연합뉴스

    해양수산부가 의욕적으로 재추진한 제2 쇄빙연구선 건조사업이 사실상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제2 쇄빙선 사업 추진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극지 투자 확대를 언급한 적도 있지만, 예비타당성 조사(이하 예타)의 벽을 넘지 못할 공산이 커졌다. 해수부로선 정권 초기 실세장관으로 불렸던 김영춘 전 장관부터 문성혁 장관으로 바통이 이어지며 '재수'에 도전했으나 쓴잔을 들게 됐다.

    10일 해수부와 정부 연구·개발(R&D) 상황에 밝은 소식통의 설명을 종합하면 해수부가 재도전한 제2 쇄빙선 예타가 1차때와 마찬가지로 '미시행'으로 결론 날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식통은 "사실상 사업을 평가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과기평) 자문회의 위원들이 미시행으로 방향을 잡았고 최종적으로 문서작업만 남은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미시행이란 평가위원이 경제성과 정책성, 기술성 등을 따졌을때 현재로선 사업을 시행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을 말한다.

    제2 쇄빙선사업은 지난 2018년 첫번째 예타 평가에서 계층화 분석(AHP)값이 0.291에 그쳐 평가위원 만장일치로 미시행 결론이 났다. AHP값은 기준치인 0.5를 넘겨야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해수부는 극지의 과학·경제·외교적 가치를 고려할 때 제2 쇄빙선 건조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지난해 5월 재정 당국의 수시 예타에 재도전했다.

    과기부의 최종 예타 결과 발표는 다음달 말로 예정됐다. 과기부와 과기평은 지난달 19일 해수부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제2차 점검회의를 열고 자료 검토 및 조사방법 등과 관련해 의견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수부 한 관계자는 "과기평에서는 제2 쇄빙선이 왜 필요한지, 건조가 시급한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고 전했다. 

    예타를 경험해 본 전문가들은 이 부분과 관련해 부정적인 견해가 지배적이다. 한 예타 전문가는 "구체적인 배의 사양이 다소 달라지긴 했지만 결국 같은 사업에 대해 예타를 다시 진행하는 상황이고 처음 열린 점검회의도 아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제2 쇄빙선이 왜 필요하냐, 급한거냐를 물었다는 것은 사업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소식통도 "(과기평은) 아직 제2 쇄빙선 건조가 시기상조라는 시각"이라며 "(해수부는) 사업이 필요해 삼수에 나선다면 시간을 두고 준비할지, 과기평이 평가하는 R&D 사업 대신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수행하는 인프라부문 일반사업으로 도전할지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유은원 해수부 해양개발과장은 "(삼수도전 여부는) 결과가 나오면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라며 "(해수부는) 제2 쇄빙선 건조가 극지연구의 새 장을 여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 문재인 정부 해수부 장관인 김영춘 전 장관(왼쪽)과 문성혁 장관.ⓒ연합뉴스·해수부
    ▲ 문재인 정부 해수부 장관인 김영춘 전 장관(왼쪽)과 문성혁 장관.ⓒ연합뉴스·해수부

    해수부는 극 지역의 경제·지정학적 가치를 고려할 때 북극 공해로 진입하려면 제2 쇄빙선 건조가 필요하다는 태도다. 북극해 연안에 머물지 않고 중심지역으로 들어가 자원개발과 연구활동을 벌이려면 두꺼운 얼음을 깰 수 있는, 성능이 향상된 쇄빙선은 필수라는 설명이다.

    해수부는 지난해 예타를 재기획하면서 두께 1.5m의 평평한 얼음덩어리(평탄빙)를 3노트 속도로 쇄빙하는 능력(Polar 15)을 갖춘 1만1500t급 중대형선으로 건조 규모를 다소 줄였다. 2016년 1차 예타 때 신청했던 쇄빙선 제원은 두께 2m의 평탄빙을 부수는 수준(Polar 20)의 1만2000t급이었다.

    과기평은 1차 예타에서도 제2 쇄빙선 건조가 시기상조이고 활용 수요도 적어 과잉사양이라며 6000t급으로 가위질했었다. 당시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실세 장관으로 불렸던 김영춘 전 장관이 '해양강국'을 강조하고, 남극 세종과학기지 설립 30주년을 맞아 브이아이피(VIP) 축하 영상 메시지까지 받아 승부수를 띄웠지만 무위에 그쳤다. 문 대통령은 축하영상에서 "세종기지가 대한민국과 인류의 삶을 이롭게 하는 산실이 될 수 있게 정부도 뒷받침하겠다"면서 "미래 성장동력인 극지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겠다. 제2 쇄빙연구선과 코리아루트 같이 가슴 뛰는 도전을 국민과 함께 응원하겠다"고 했었다.

    바통을 넘겨받은 문성혁 장관도 제2 쇄빙선 추진 의지를 분명히 했다. 문 장관은 지난해 4월 국회에서 열린 제2 쇄빙선 건조 추진 공청회에서 "해수부는 2050년까지 세계 7대 극지 선도국가로 도약한다는 비전을 마련했다"면서 "추진전략으로 제2 쇄빙연구선 건조를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해수부는 국회 공조를 위해 20대 국회 전반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과 손을 잡고, 노무현 정부에서 과기부 차관을 지낸 박영일 교수를 기획연구단 단장에 앉히는 등 여러 전술을 구사했다.

    한편 우리나라 최초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는 2009년 건조돼 올해로 취항 11주년을 맞는다. 세계 최초로 북극 동시베리아해에서 거대빙상의 증거를 발견하고, 남극 아문센해 빙붕의 해빙 원인을 밝혀내는 등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연간 300일 이상 운항할 정도로 일정이 빠듯하고 현재의 쇄빙능력(Polar 10)으로는 연구범위에 한계가 있어 연구선 추가 건조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 ▲ 해수부.ⓒ연합뉴스
    ▲ 해수부.ⓒ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