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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과잉공급과 미중 무역 분쟁으로 시나브로 시작된 정유-석유화학업의 침체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수요 위축과 국제유가 급락까지 더해지면서 정유업계는 어닝쇼크라는 직격탄을, 석유화학기업은 재무 악화라는 유도탄을 맞았다.
수요 회복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실적이 다시 본궤도에 올라올 시점도 불확실하기만 하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전날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석유화학 호황기 이후 나프타 가격 상승 등 스프레드 정상화 과정을 거치면서 국내 석유화학사들의 수익성이 하락하고 있다"며 "석유화학 실적 개선을 제약하는 산업 환경 요인이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업스트림(개발·생산) 석유화학사의 평균 영업이익 규모는 석유화학 호황기였던 2017년 2조원까지 확대됐으나, 이후 불리한 산업 환경 등으로 2019년 5800억원 규모로 축소됐다.
다운스트림(정제·판매 및 마케팅) 석유화학사의 평균 영업이익 역시 하락 폭은 다르지만 2018년 1900억원 규모로 확대된 이후 최근 1600억원 수준으로 감소했다.
나이스신평은 △미국의 에탄크래커(ECC) 증설 효과로 에틸렌 계열 제품의 국내 유입 증대 △중국의 자급률 상승에 따른 석유화학제품 공급 증가 △미중 무역 분쟁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석유화학제품의 수요 감소 등을 석유화학 업종을 위협하는 3대 요입으로 꼽았다.
여기에 최근 산유국간 신경전에서 비롯된 국제유가 급락 등 유가변동성 확대도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이 같은 상황에서 국내 주요 석유화학사들이 투자와 배당을 확대하면서 재무 부담도 증가하고 있다고 나이스신평은 진단했다.
이혁준 연구원은 "석유화학사들의 실적은 일정한 주기에 따라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데, 현재는 불황기 국면"이라며 "불황기에 접어든 기업들의 현금창출능력이 저하된 가운데 대규모 투자와 배당 관련 자금 소요로 석유화학사들의 차입 부담이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요 모니터링 대상으로 LG화학, 한화솔루션, SKC, 한화토탈 등 4개사를 지목했다.
이 연구원은 "모니터링 대상 석유화학사는 2019년 결산 기준으로 신용등급 하향 검토 기준을 모두 또는 일부 충족했다"며 "여타 석유화학사에 비해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거나 배당 부담이 존재하고 M&A 관련 투자 부담이 상존한다"고 판단했다.
핵심사업에 대한 설비투자 부담의 경우 LG화학과 한화솔루션이 해당된다.
LG화학의 연결 기준 CAPEX(유·무형자산 순증가 기준) 규모는 2015년 1조5000억원에서 2019년 6조4000억원으로 증가했으며 투자 관련 자금소요로 총차입금 규모는 같은 기간 2조6000억원에서 8조4000억원으로 확대됐다.
한화솔루션은 2018년 11월 합병 과정에서 한화큐셀코리아의 차입금(1조2000억원) 반영과 이후 핵심사업에 대한 투자 부담 등으로 2019년 말 연결 기준 총차입금 규모는 6조6000억원에 달한다.
그는 "LG화학은 우수한 현금창출능력에도 최근 주력 사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차입 부담이 크게 증가했고, 한화토탈은 합작투자회사(JV)로서 한화그룹과 토탈에 대한 높은 배당급 지급 과정에서 재무구조가 저하됐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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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토탈은 대규모 배당이, SKC는 M&A 관련 투자가 재무 부담 증가 원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높은 배당성향으로 대규모 배당금 지급은 한화토탈의 재무안정성 개선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화솔루션은 연간 기준 2017년 8394억원, 2018년 7686억원, 2019년 4919억원의 배당금을 지급했다.
SKC는 M&A 관련 인수자금 부담이 여타 석유화학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폭의 재무부담 확대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최근 SKC는 KCFT 지분 전량을 1조2000억원에 인수했다. 화학사업 물적 분할 후 매각, SKC코오롱PI 지분 매각 등으로 필요자금을 조달했지만 이를 웃도는 인수금액이 부담이라는 지적이다.
이 연구원은 "한화솔루션은 올해 통합법인으로 합병하는 과정에서 차입이 증가한데다 핵심 사업 관련 투자가 늘어 차입 부담이 확대됐고 SKC는 신사업 관련 M&A 과정에서 차입 부담이 늘었다"고 말했다.
정유업계 역시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1분기 최대 3조6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손실이 예상된다. 코로나19로 고꾸라진 수요가 2분기 이후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실적 전망이 불투명하다.
한국신용평가 분석 결과 올해 1분기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사들은 3조2000억~3조6000억원의 영업손실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오유나 한신평 선임연구원은 "유가가 배럴당 1달러 하락하면 정유4사의 합산 영업이익은 700억~800억원 감소한다"며 "지난해 말에 비해 1분기 말 유가가 약 40달러 하락한 점을 고려하면 정유4사의 1분기 재고 관련 손실은 총 2조8000억~3조2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정제마진이 1달러 하락할 경우 정유4사의 합산 영업이익은 약 1조2000억원 줄어든다"며 "마진이 지난해 평균에 비해 올해 1분기 약 2달러50센트 줄어든 만큼 정유4사의 정제마진에 따른 손실 규모는 약 5000억~6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하반기까지도 손실분 회복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번 어닝쇼크가 2014년 저유가로 인한 대규모 손실과 유사한 모양새지만, 그 때와 달리 코로나19 팬데믹 및 대체연료 수요 증가 등으로 정유제품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
IMF 자료를 보면 올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전 세계 불확실성 지수는 평균 13.46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증후군) 때의 평균인 4.4보다도 3배나 높다. 한국은 8.71에 그쳤지만 정유사들의 주요 수출국인 중국은 30.44에 달한다.
불확실성 지수가 높을수록 코로나19 지속과 이에 따른 경제적 여파를 가늠하기 힘들어진다. 즉 석유제품 수요 회복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셈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후에도 재고 소진에 상당시간이 걸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한신평은 "수요가 받쳐주지 않는 상태에서 석유제품 가격 변동 없이 유가만 오른다면 정제마진만 더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