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임위·법사위 통과에도 본회의 상정 하세월주52시간 예외조항 뺏지만 與 추가 논의 '몽니'기업 의사결정 정치 일정 종속 … 시계 불투명
  • ▲ ⓒ챗GPT
    ▲ ⓒ챗GPT
    반도체특별법이 상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고도 국회 본회의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전력·용수·예타·인허가를 한꺼번에 묶어 공장 증설 리드타임(주문 후 납품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이자는 ‘원패키지’ 성격상, 표결 날짜가 보이지 않는 시간 자체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투자 주체에겐 비용으로 전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이 메모리 반도체를 겨냥해 100%관세 카드까지 거론하며 투자 압박을 키우는 국면에서 국내 정치권의 지연은 정책 지원 효과보다 불확실성을 키운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본회의 앞에서 멈춘 ‘원패키지’ … 전력·용수·인허가가 꼬이면 일정 밀려

    20일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특별법은 지난달 4일 여야 합의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통과했고, 같은 달 10일 여야 합의로 법사위를 통과했다. 그러나 본회의 상정은 미뤄지고 있다. 법안에는 반도체 클러스터 지정과 기반시설 조성·지원, 전력·용수·도로망 확충, 예타(예비타당성조사) 특례, 인허가 지원 등 생산거점 조성의 병목을 줄이기 위한 장치들이 담겼다.

    산업계가 이 법을 원패키지로 보는 이유는 공장 증설의 선행 조건이 촘촘하기 때문이다. 장비 반입과 양산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전력 계통, 용수, 환경·안전 인허가 가운데 한 축만 지연돼도 전체 일정이 연쇄적으로 밀릴 수 있다. 법이 본회의에서 멈춘 순간부터 투자 집행은 보수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커진다.

    ◇주52시간 예외조항은 빠졌지만 … 부대의견 ‘추가 논의’ 변수로 남아

    이번 법안의 핵심 쟁점이던 R&D 인력 주52시간 예외 적용 조항은 최종안에서 제외됐고, 대신 근로시간 특례 도입 여부는 추후 논의한다는 취지의 부대의견이 달렸다. 법문에서 빠졌다고 해서 쟁점이 완전히 소멸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본회의 상정 지연이 길어질수록, 이미 정리된 것으로 여겨진 쟁점이 다시 의사일정의 명분으로 호출될 여지는 커진다.

    반도체특별법을 대표발의한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실 측은 “상임위 차원에서는 시급성을 감안해 주52시간 등 쟁점을 부대의견으로 달아 관련 상임위에서 지속 논의하는 형태로 산자위를 통과했고 법사위도 통과했다”면서 “그러나 주52시간 예외 적용에 대한 여야간 이견과 특검법 등 정쟁으로 인해 밀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특검법 등 정쟁성 안건과 필리버스터 대치가 의사일정을 잠식한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실제로 상임위·법사위 심사를 마쳤는데도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한 법안이 지난 15일 기준 170건이 넘는다. 여야가 필요성에 공감해온 법안조차 ‘상정 공백’에 갇히면, 기업의 투자 의사결정이 정책 신호가 아니라 정치 일정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 ▲ ⓒ뉴데일리
    ▲ ⓒ뉴데일리
    ◇최태원 “계단식 규제·예측 불가 형벌은 계산 불가 리스크” … 예측성이 투자 조건

    이 같은 불확실성 프레임은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최 회장은 지난 18일 KBS 일요진단에서 잠재성장률 1.9% 수준, 실질성장률 1% 안팎을 언급하며 성장 여력 약화를 경고하고, “기업이 커질수록 불리한 계단식 규제”가 성장 의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징역형 등 형사처벌 위험이 결합되면 기업이 예측하기 어려운 “계산 불가 리스크”가 된다는 취지로 경제형벌 제도 개선 필요성도 제기했다.

    최 회장은 해법으로 AI(인공지능)를 ‘문명 전환’에 준하는 변화로 규정하며 글로벌 수준 AI 인프라 확충, AI 스타트업 생태계, 기술 검증(PoC) 지원체계 구축을 주문했다. 반도체특별법 지연이 기업에 주는 신호도 결국 같은 결로 읽힌다. 법안의 내용보다 ‘언제 확정되는가’가 불투명해지는 순간, 투자 집행은 확정이 아니라 조건부로 바뀌고 그만큼 국내 투자 시계는 느려진다.

    대외 환경은 더 거칠다. 미국 상무장관이 한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등을 겨냥해 미국에 투자하지 않으면 최대 100%관세를 물릴 수 있다는 취지로 경고했다. 기업은 미국 투자 계획과 국내 클러스터 투자를 병행하는 상황에서 추가 압박까지 대응해야 하는데, 국내에서는 속도를 내자던 법이 본회의에서 멈춰 선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가 속도전이라면 국회는 상정 지연의 이유와 일정을 설명해야 하고, 정부는 대외 압박 국면에서 기업이 투자 결정을 확정할 수 있도록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