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자구책 제출 마감 임박 … 산단별 속도차 울산단지, 3사 협약 후 한 달째 컨설팅 착수 못해정부 "골든타임 놓치면 지원도없다" 속도전 압박
  • ▲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여천NCC 공장 2사업장 전경ⓒ여천NCC
    ▲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여천NCC 공장 2사업장 전경ⓒ여천NCC
    정부가 중국발 과잉 공급 등으로 불황에 빠진 석유화학 산업의 재편을 위해 각 기업에 제출을 요구한 자구책의 데드라인이 임박해 오고 있다. 연말까지 약 두 달을 앞두고 각 산단의 사업재편 논의가 어떤 방향으로 결론날지 주목된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울산·대산·여수 화학단지 내 주요 기업들은 오는 12월까지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맞춘 문서 형태의 사업재편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 8월 20일 국내 전체 납사분해시설(NCC) 생산능력 1470만톤 중 18~25%에 해당하는 270만~370만톤을 기업들이 자율 감축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자율협약식에는 LG화학, 롯데케미칼, SK지오센트릭, 한화토탈, 대한유화, 한화솔루션, DL케미칼, GS칼텍스, HD현대케미칼, 에쓰오일 등 10개 기업이 참여했다.

    협약 체결 이후 약 두 달 반이 흐른 현재, 산단별로 기업들이 처한 상황이 달라 논의 속도에 온도차가 감지된다.

    여수산단에서는 LG화학과 GS칼텍스가 협업 논의를 구체화하고 있다. 이달까지 진행된 구조개편 진척 상황과 관련해 양철호 LG화학 석유화학 경영전략담당 상무는 "국내 정유사와 협업 모델을 발굴하는 등 상호 시너지 창출 방안을 치열하게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를 통해 원료 구매 경쟁력 강화와 비용 절감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논의 결과에 따라 일부 설비 감축 효과도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LG화학은 앞서 같은 여수산단에 속한 GS칼텍스에 NCC 통합 운영을 제안했고, 이에 대해 양사 간 협의가 일정 부분 진전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울산산단 내 에쓰오일, 대한유화, SK지오센트릭은 지난 10월 외부 컨설팅 기관에 구조재편 전략 자문을 의뢰하기로 자율협약을 체결했지만, 한 달이 지난 현재까지 컨설팅 업체를 선정하지 못해 구체적 진전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김용수 SK지오센트릭 경영기획실장은 "당사를 포함한 울산 단지 내 3개사는 정부 정책 방향에 맞춰 업무 협의를 진행 중이나, 현재 구체적인 검토 옵션이 마련되지 않아 공유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 마감 시한까지는 사업재편안을 제출하겠다는 입장이다.

    대산산단의 경우,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대산 내 석화 설비를 통폐합하는 사업재편안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져, 업계 첫 자율 협약 사례가 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그 외 기업들은 각자 내부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있다. 대산산단의 석유화학 관계자는 “자사뿐 아니라 산단 내 여러 업체가 사업 일부 통합 또는 가동률 조정 등 다양한 형태의 검토를 내부적으로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기업 간 NCC 통폐합 논의가 쉽지 않아 연말 데드라인이 유예될 가능성도 점친다. 정부의 지원이 절실한 또 다른 기업들은 다시 한차례 정부 지원이 미뤄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석유화학협회 관계자는 "각사별로 정부가 요구한 자구책 연말까지 준비 중"이라며 "정부의 산업 재편 방향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 ▲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정부도 데드라인이 임박하면서 기업들을 향해 다시 고삐를 죄고 있다. 정부는 '선(先) 자구책, 후(後) 지원' 원칙을 내세웠다. 각 기업이 올해 말까지 구체적인 사업재편 계획을 먼저 제출하면, 정부가 이를 바탕으로 규제 완화와 자금 지원 등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일부 산단과 기업의 사업재편이 여전히 지지부진해 업계의 진정성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모든 산단과 업계가 '속도전'을 펼쳐줄 것을 당부했다. 그는 이어 "연말까지가 골든타임"이라며 "이번 골든타임을 허비한다면 정부와 채권금융기관도 조력자로만 남기 어렵다. 뼈를 깎는 자구 노력과 타당성 있는 사업재편에 대해서는 정부도 적극 지원하고, 먼저 사업재편을 추진하는 산단·기업에는 보다 신속한 지원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다운사이클이 지속될 경우 3년 내 석유화학 기업의 절반만이 생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산단 내 1~2개 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연관된 2·3차 협력업체까지 연쇄 도산으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