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조사 진행 중인데 정책 방향 선제 제시원가·환율·안전 기준 빠진 단순 가격 프레임 논란표준 생리대 구상에 선택권·시장 왜곡 우려"개별 품목 개입은 국정 우선순위 혼동" 전문가 비판
  • ▲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정책 자료집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정책 자료집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생리대 가격 문제를 다시 꺼내 들며 정부가 직접 생리대를 제작해 무상 공급하는 방안까지 언급했다. 생리대 가격 부담이라는 문제 제기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원가와 유통, 안전 기준 등 가격 형성의 복합적 구조에 대한 진단 없이 국가 개입과 무상 공급이라는 처방이 먼저 제시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정책 방향이 선제적으로 제시되면서 해법보다 메시지가 앞섰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 대통령은 20일 국무회의에서 "필요한 최저 품질을 갖춘 생리대를 싸게 만들어서 정부가 무상 공급하는 걸 연구해 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현재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에게 연간 16만8000원의 생리용품 구매 이용권을 지급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직접 생산과 공급에 나설 수 있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 생리대가 외국보다 40% 가까이 비싸다"며 "정부가 지원해주면 기업들이 바가지를 씌우는 데 도움만 주는 꼴"이라고도 비판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달 공정위 업무보고에서도 생리대 가격 문제를 지적했다. 이후 공정위는 유한킴벌리, LG유니참, 깨끗한나라 등 주요 생리대 제조업체 3곳에 대한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생리대 시장은 상위 3∼4개사가 약 8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구조로 추정된다. 공정위는 담합 여부와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가능성, 가격 결정 과정과 유통 구조 전반을 들여다보고 있다. 

    국내 생리대 가격 이슈는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시민단체 조사와 해외 비교 자료를 통해 반복돼 왔다. 여성환경연대가 2023년 5월8일 세계 월경의 날을 맞아 발표한 일회용 생리대 가격·광고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국내 생리대 가격은 해외 주요 국가보다 평균 39%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는 국내에서 판매 중인 생리대 513종과 일본, 미국, 영국 등 11개국의 생리대 69종 가격을 비교한 것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가격 수준만을 떼어 놓고 논의하는 것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생리대는 의약외품으로 분류돼 원재료 수입 단계부터 품질 검사와 안전 기준이 엄격하게 적용된다.

    주요 원재료인 펄프와 고분자흡수수지(SAP)는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환율과 글로벌 원자재 가격 변동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여기에 2017년 생리대 유해물질 파동 이후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 요구가 높아지면서 유기농과 프리미엄 제품 비중이 확대된 점도 평균 가격 상승 요인으로 꼽힌다.

    생활용품업계 관계자는 "대통령이 생리대 가격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상황에서 말을 아끼는 분위기"라며 "국내 생리대 가격을 단순 비교로 평가하기는 어렵고 의약외품으로서의 관리 기준과 원자재 수입 구조, 환율과 물류비 등이 반영돼 있다"고 토로했다.

  • ▲ 생리대 매대 ⓒ뉴시스
    ▲ 생리대 매대 ⓒ뉴시스
    이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가격 형성의 구조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고급화해서 비싸다, 싼 생리대는 왜 안 만드느냐는 표현이 기업의 제품 전략과 소비자의 선택 문제에까지 국가가 개입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 읽힐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생리대는 개인별 피부 상태와 사용 목적에 따라 선택이 중요한 품목인 만큼 정부가 일정 기준의 표준 생리대를 정해 공급할 경우 선택권 침해와 품질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러한 우려는 개별 소비자의 선택권 문제를 넘어 국가 개입의 범위를 둘러싼 논쟁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무상 공급은 단순한 복지 확대를 넘어 정부가 생산과 유통 과정에 직접 관여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기존 시장 기능을 대체하는 정책 수단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수요를 사실상 떠안게 되면 제조사와 유통사의 가격 인하 압박이 약해지고 장기적으로는 가격 구조가 경직될 가능성도 있다.

    해외 사례 역시 생리대 무상 공급이 만능 해법이 아님을 보여준다. 가나는 생리 빈곤 해소를 명분으로 지역에서 생산한 생리대를 여학생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정책을 추진했고 스코틀랜드는 2020년 세계 최초로 모든 시민에게 월경용품을 무료로 제공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다만 스코틀랜드의 경우 월경용품 비치 장소를 안내하는 정부 애플리케이션 정보가 부정확하고 현장 근무자 상당수가 제도를 인지하지 못해 접근성이 떨어졌다는 현지 언론 보도도 나왔다. 대규모 재정 투입에도 불구하고 운영 실효성 논란이 이어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생리대 가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통령이 개별 품목 가격에 직접 개입하기보다 시장의 경쟁과 구조 개선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봤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통령이 생활물가의 개별 품목 가격에까지 직접 개입하려는 것은 국정 운영의 우선순위를 혼동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환율 변동, 경기 둔화, 재정 건전성 등 국민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특정 상품 가격을 국무회의 의제로 꺼내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특정 품목이 비싸다고 인식될 경우 시장에서는 신규 진입과 경쟁을 통해 가격이 조정되는 것이 정상적인 작동 방식"이라며 "이를 폭리로 규정하고 국가가 직접 생산·공급에 나서는 접근은 시장 기능을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개별 상품 가격을 판단하고 개입하는 방식이 반복되면 시장의 자율성과 효율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