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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코로나19(우한 폐렴) 상황이 엄중한 가운데 한국마사회 상임 임원들이 근무시간에 버젓이 음주·가무를 즐긴 것으로 드러나 공직사회 기강해이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국민 불편이 가중되고, 마사회도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간 시기에 연임 통보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낮술을 마시고 2차로 노래방을 찾은 것으로 확인돼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18일 국무총리실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마사회 상임임원 4명이 지난 3월28일 근무시간에 술을 마시고 노래방을 가는 등 1·2차에 걸쳐 음주·가무를 한 것으로 드러나 징계절차를 밟은 것으로 확인됐다.
총리실과 농식품부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마사회 상임이사 7명 중 3명이 최근 연임에 실패했다. 연임 통보를 받지 못해 낙담한 상임이사 A씨는 지난 3월28일 함께 탈락한 B씨와 다른 2명의 상임이사를 불러 낮부터 술판을 벌인 뒤 2차로 노래방에 간 것으로 전해졌다. 재임용되지 못한 상임이사 C씨는 동석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날은 토요일이지만, 마사회는 주말에 일하는 대신 월·화요일에 쉬는 체계여서 근무일·근무시간에 해당한다. 1차 음식점에선 상임이사 B씨가 직원 사기진작 용도의 업무카드로 21만원을 결제하고 2차 노래방 비용은 개인카드를 긁은 것으로 조사됐다.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은 이런 감찰내용을 농식품부에 넘겼고 농식품부는 자체 감사를 벌여 지난 11일 마사회에 징계처분을 통보했다. 김현수 농식품부 장관은 엄벌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와 국민이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등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안간힘을 쓰던 시기에 개인적인 이유로 근무시간에 2차로 노래방까지 가고 사적으로 업무용 카드를 사용한게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농식품부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주동자인 A씨는 해임, B씨는 직권면직을 각각 요구하고 나머지 2명의 상임이사에 대해선 마사회가 자체적으로 징계할 것을 통보했다. 동석한 2명의 상임이사는 근무시간에 부적절한 행동을 한 것은 맞지만 A씨에게 불려 나갔다는 측면을 참작했다고 농식품부는 설명했다. B씨는 A씨 호출을 받긴했으나 카드사용에 동참하는 등 도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게 농식품부 설명이다. 농식품부 감사관실 관계자는 "(B씨의 경우) 직권면직도 해임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
그러나 일각에선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A씨와 B씨는 이미 지난달 임기가 끝난 상태여서 마사회가 남은 상임임원 2명을 경고 처분하는 선에서 이번 논란을 덮어버릴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A씨와 B씨는 감사를 받자 1500만원 상당의 퇴직금을 챙기려고 감사 결과가 나오기 전 사표를 내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농식품부는 이번 사안이 가볍지 않다고 판단하고 감사 진행을 이유로 이들의 사표를 제출·수리하지 못하게 막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해임요구를 받은 A씨만 퇴직금의 절반을 받지 못하게 됐을뿐 직권면직 처분을 받은 B씨는 퇴직금을 전액 수령할 수 있게 됐다.
마사회는 지난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낙제점'인 D등급(미흡)을 받았다. 올해도 D등급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설상가상 올해는 코로나19까지 겹쳐 마사회는 지난 2월23일부터 경마사업장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사상 첫 적자경영이 예상되는 가운데 마사회는 3월27일부터 넉달간 임원 급여 30%를 반납하기로 하는 등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식통은 "(마사회 회장이) 상임임원 4명에 대한 무더기 징계는 과하다며 윗선(농식품부 장관)에 연임에 실패한 2명만 사직하는 선에서 이번 사건을 무마하려 시도했다는 얘기가 돌았다"고 귀띔했다. 이에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번 감사 결과는 농식품부 자체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무마 청탁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
◇전염병 창궐로 어수선한데… 공직기강 도마 위
코로나19 사태 속에 공직사회 기강해이가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난달에는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교통안전공단 상임이사들이 코로나19 '심각' 단계였던 지난 3월1일 골프를 치고 회사 마스크를 개인적으로 유용한 의혹이 불거져 물의를 일으켰다.
교통안전공단은 관련 상임이사 모두가 사표를 냈고 감사결과에 따라 추가적인 징계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회적으로 엄중한 시기에 공공기관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특히 마사회는 고 문중원 기수 자살사건과 그의 유서로 폭로된 승부조작 의혹, 불법 베팅룸 운영 등 내부 부조리 문제로 골치를 앓는 와중에 기강해이 문제마저 불거져 곤혹스러운 눈치다. 현 정부의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낙하산 인사로 분류되는 김낙순 회장의 전문성 부족도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김 회장은 지난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중앙선거대책본부 조직본부 부본부장을 지내고 공공기관장으로 재취업에 성공한 사례다. 이번에 물의를 일으킨 A씨는 평소 김 회장을 '형님'으로 부르며 친분을 과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