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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코로나19(우한 폐렴) 사태 속에 김낙순호 한국마사회가 흔들리고 있다. 내년 1월 임기가 끝나는 김 회장의 연임이 물 건너갔다는 시각이 지배적인 가운데 레임덕에 기강해이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가시지 않는다.
22일 농림축산식품부와 마사회 등에 따르면 지난 3월28일 마사회 상임이사와 본부장급 임원 등 6명이 근무시간에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 가는 등 1·2차에 걸쳐 음주·가무를 한 것으로 드러나 징계절차가 진행 중이다.
연임에 실패하면서 이번 사달을 주도한 상임이사 A씨는 해임, 직원사기 진작 용도의 업무카드로 술값을 긁은 상임이사 B씨는 직권면직, 다른 상임이사 2명은 경고 처분을 받았다. 남은 본부장급 임원 2명은 마사회가 징계위원회를 열어 징계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김 회장은 이번 사달에 화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마사회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사업장 문을 석 달 이상 못 여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생겨 (김 회장이) 화가 많이 났다"며 "(임직원에게) 또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면 알아서 하라고 엄포를 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몸무게가 4㎏ 빠지고 아토피까지 도진 것으로 전해졌다.
마사회 안팎에선 김 회장이 임기를 8개월쯤 남긴 상황에서 레임덕에 빠졌다는 의견이 나온다. 마침 김 회장이 이틀간 휴가를 내 자리를 비운 사이 상임이사들이 기다렸다는 듯 근무시간에 술판을 벌였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엄중한 가운데 노래방이 새로운 바이러스 전파 온상으로 주목받는 상황에서 조직을 책임지는 본부장급 임원이 대거 노래방에 집결해 음주·가무를 즐겼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올랐다.
고 문중원 기수 자살사건과 그의 유서로 폭로된 승부조작 의혹, 불법 베팅방 운영 등 내부 부조리 문제가 산적한 데다 올해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을 게 유력한 와중에 기강해이 문제마저 불거졌다. 비난의 화살은 마사회 존폐론으로 번질 기미마저 보인다. 인터넷 포털 아이디(ID) May***은 "아직도 대한민국에 기강이 있나"라며 "그나마 사회가 이렇게라도 굴러가는 건 선량한 일반 국민 때문"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ID 파인애플****은 "밥 먹고 할 일 없이 도박을 부추기는 일자리는 이제 좀 진취적인 일자리로 탈바꿈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
일각에선 회장이 전문성보다 집권세력과의 친소관계에 따라 낙하산으로 내려오면서 마사회가 복마전을 이룬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무능력이 탁월해도 줄을 잘못 서면 정치권력이 바뀔 때 물갈이돼 한직으로 좌천되기 일쑤라는 것이다. 조직이 정치화하면서 두 패로 나뉜 파벌 싸움으로 각종 부조리 해결은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이다. 엄연히 근무시간인 데도 현직 상임이사와 본부장이 연임에 실패한 상임이사 호출 한마디에 노래방에 집결한 이번 사건이 마사회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김 회장을 비롯해) 무능력한 임원을 전부 물갈이해야 한다는 게 안팎의 중론"이라며 "정부는 강력한 징계를 통해 하루빨리 마사회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조직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할 김 회장은 그동안 마음이 콩밭에 가 있었다는 전언이다. 마사회 한 소식통은 "내년 임기가 끝나는 김 회장이 정치권 복귀를 노렸던 것으로 전해졌다"며 "상황이 여의치 않아지자 연임을 타진했으나 이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김 회장은 제16대 대통령선거 노무현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국민참여본부 기획위원, 제17대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지난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중앙선거대책본부 조직본부 부본부장을 지내고, 공공기관장으로 재취업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마사회 내부에선 최근 BH(청와대)에서 행정관이 내려와 김 회장에게 '임기가 끝나면 그만두라'는 통보를 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마사회 한 관계자는 "그동안 회장은 외부에서 낙하산으로 내려왔다"면서 "최근 20년 가까이 회장이 연임한 사례가 없다.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옷을 벗기도 했다"고 부연했다. -
일각에선 이번 사달로 김 회장이 기관장 경고를 받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견해다. 경제부처 한 감사관실 관계자는 "비위가 개인으로 특정된다면 관련 당사자를 징계하는 게 맞다"면서 "다만 이번 사안은 코로나19라는 특수하고 엄중한 상황에서 조직을 이끄는, 대표성을 지닌 고위 간부들이 단체로 일탈한 것으로 볼 수 있어 얼마나 심각하게 보느냐에 따라 기관장 경고가 징계 옵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사회는 지난해 경영평가 항목 가운데 '사회적 가치 구현'과 '재무 관리' 부분에서 저조한 평가를 받았다. 김 회장에게는 기관장 경고 조처가 내려졌다. 마사회는 올해 평가에서도 D등급(미흡)이 유력하다는 견해가 많다. 설상가상 코로나19까지 겹쳐 사상 첫 적자경영마저 예상되는 상황에서 고위 간부들의 집단 일탈로 물의를 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