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공제대상 재산 확대…토지·건물·차량 등은 제외투자증가분에 추가 공제…법인세 인하 등 알맹이 빠져해외생산량 감축요건 폐지 등 리쇼어링 박차…성과는 미지수디지털뉴딜 등 신성장기술 투자 우대… 근로자 유지조건 없애 역풍 우려
-
반면 문재인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역점을 두고 시행하는 한국판뉴딜과 관련해선 기업 참여를 독려하려고 유인책을 마련했다. 일각에선 한국판 뉴딜을 위한 세제지원 요건 완화가 현 정부의 최대 역점사업인 일자리 만들기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인세 인하 등에 여전히 인색
정부는 22일 세제발전심의위원회를 열고 '2020년 세법개정안'을 확정, 발표했다. 여기에는 중국발 코로나19(우한 폐렴) 사태를 극복하고 경제활력을 높이고자 기업투자 환경을 개선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정부는 먼저 투자세액공제를 확대하기로 했다. 연구·개발(R&D)설비, 안전 설비, 에너지절약·환경보전 시설 등 기존 9개 특정시설과 중소기업의 투자세액공제를 묶어 통합투자세액공제를 신설한다. 세제지원 대상도 모든 일반 사업용 유형자산으로 확대한다.
투자 증가분에 대해선 추가 공제를 준다. 직전 3년 평균보다 투자액이 늘어난 부분에 대해 높은 추가 공제율을 적용한다. 대기업 4%, 중견기업 6%, 중소기업 13% 등이다. 대기업 1%, 중견 3%, 중소 10%의 기본공제율보다 높다.
하지만 통합투자세액공제는 기존 세액공제를 묶어 단순화한 수준에 불과하다. 확대한 세제지원 대상자산도 도소매·물류업의 창고, 관광숙박업의 건축물과 부속 시설물처럼 일부 예외를 인정하기로 했으나 기본적으로 토지·건물, 차량 등은 대상으로 빠졌다.
투자증가에 따른 유인책도 법인세 인하 등 알맹이는 빠진채 투자만을 늘리라는 격이나 다름없다. 코로나19로 기업의 투자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코로나19 이전 3년간의 평균투자액을 기준으로 삼는 것도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가위기 상황에선 기업과 경제를 살리는 게 답"이라며 "기업의 해외 이전이나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 법인세율 인하 등 과감한 기업투자 독려정책을 펼 필요성이 있다"고 역설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최소 OECD 평균인 22% 수준으로 낮춰달라고 요청한다. 기업투자를 촉진하고 생산성 향상을 꾀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는 견해다.
1970~2010년 미국 내 45개 주(州)의 법인세 증감 효과를 분석한 2016년 '자르거나 자르지 않으려면?-법인세가 고용과 소득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법인세율 인하는 경기침체기에 효과적이었다. 법인세율을 1%P 내리면 고용률은 0.6%, 고용소득은 1% 각각 오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법인세율 인상은 노동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법인세율을 1%P 올리면 고용률은 0.3~0.5%, 고용소득은 0.3~0.6% 각각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자리 관련 세제지원에 비해 기업의 R&D 지원이 부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8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내놓은 '저성장시대의 조세정책 방향-생산성·투자·고용을 중심으로' 보고서를 보면 "고용과 직접 연계된 조세지원의 효과성은 제한적"이라며 "법인세 부담 증가의 부정적 효과를 축소하고 장기 성장기반 조성을 위해 R&D 활동에 대한 조세지원의 강화와 효율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청년고용 증대를 위해서도 기업의 R&D 투자를 지원하는 조세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번 세법개정안에는 기술·제품개발 단계 이전에 중소기업이 벌이는 특허 조사·분석 비용을 R&D비용 세액공제 대상에 포함하는 정도만 반영됐다. 외국인 기술자에 대한 소득세 감면제도는 외국인 기술자의 취업기관이 외국인투자기업 R&D 센터에서 기업부설 연구소, 대학·대학부설 연구기관 등으로 확대됐으나, 인력 요건은 외국인 연구원에서 학사는 5년 이상, 박사는 2년 이상의 R&D 경력을 갖추도록 강화됐다.
반면 일자리 관련 주요 세제지원은 다양하게 반영됐다. 직전 3년 평균 증가율을 웃도는 임금증가분에 대해 대기업 5%, 중견기업 10%, 중소기업 20%의 세액을 공제하는 근로소득증대세제는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말인 2022년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이 밖에도 정규직 전환, 육아휴직 후 고용유지, 경력단절여성 고용에 따른 세액공제도 적용기한을 각각 연장키로 했다. 고용증대세제의 세액공제 우대대상에 60세 이상 근로자를 추가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한마디로 조세재정연구원 보고서의 제언과는 반대로 가는 셈이다.
-
정부는 리쇼어링(생산시설 국내 이전) 촉진을 위해 국내 복귀기업(유턴기업)에 대한 세제지원도 확대한다는 복안이다. 국내에 사업장을 신설하지 않고 기존 사업장을 증설하는 경우도 세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소득세와 법인세를 국내 복귀 후 5년간은 전액, 이후 2년간은 절반만큼 줄여준다.
해외사업장의 생산량을 50% 이상 줄여야 하는 요건도 없애기로 했다. 해외 생산규모가 큰 기업은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지적에 따른 조처다. 아울러 해외사업장의 생산량을 많이 줄일수록 세제지원 규모도 커지도록 합리화할 예정이다.
그러나 일부 경제전문가는 유턴기업이 늘어날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도 "(지금의 기업활동을 옥죄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저가 생산기지를 찾는 국내기업들이 우리나라로 유턴할지, (애플처럼) 베트남 같은 다른 나라로 갈지 유불리를 따진다면 답은 자명하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22일 배포한 '미국·EU 글로벌 공급망 재편 및 리쇼어링 현황 분석' 자료를 보면 지난해 한국의 '리쇼어링 지수' 측정 결과는 마이너스(-)37로 나타났다. 2017년(-50)보다는 높지만, 2018년(-11)보다 낮다. 리쇼어링 지수는 미국 컨설팅업체 AT커니가 개발한 지표다. 미국 제조업 총산출 중 아시아 14개 역외생산국(중국·베트남·필리핀 등)으로부터 수입하는 제조업 품목이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플러스는 리쇼어링 확대, 마이너스는 역외생산 의존도 증가를 나타낸다. 전경련에 따르면 한국은 뚜렷한 리쇼어링 성과가 없다. 미국의 리쇼어링 지수가 2011년 이후 마이너스에 머물다 지난해 98로 반등하며 최근 10년 내 가장 큰 폭으로 상승한 것과 대조된다.
전경련 분석에 따르면 미국은 역외생산국의 탈중국화가 두드러진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난 10년간 대중국 제조업 수입 의존도가 연평균 7%씩 증가해왔다. 증가 폭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나 중국의 자리를 베트남이 대체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인건비, 법인세, 각종 규제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몇 가지 인센티브만 주며 막대한 자금이 들어간 해외 생산기지의 국내 회귀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했다.
-
정부는 문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들어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한국판 뉴딜과 관련해선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당근책을 내놓았다. 우선 디지털·그린뉴딜 추진의 기반이 되는 신성장기술 사업화 시설 투자에 대해선 일반투자보다 높은 기본공제율을 적용할 방침이다. 대기업 3%, 중견 5%, 중소 12% 등이다.
우대 지원의 적용요건도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현재는 12대 분야 223개 신성장·원천기술을 사업화하는 시설의 경우 △전체 R&D비용이 매출액의 2% 이상 △전체 R&D비용 중 신성장·원천기술 R&D비용이 10% 이상 △상시근로자 수 유지 등의 조건을 함께 충족해야 공제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R&D비용과 근로자 수 관련 요건은 없어진다. 신성장·원천기술을 사업화하는 과정에서 상시근로자 수가 줄더라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서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이 되레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정부는 한국판 뉴딜 지원을 위한 공모 인프라 펀드 세제지원도 신설키로 했다. 사회기반시설사업 운영법인에 투자하는 펀드 투자자에 대해 배당소득을 14% 분리과세하되, 종합소득을 합산할 땐 배제하는 특례를 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