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가 체계·기피과·대형병원 쏠림’ 등 구조적 문제가 원인 ‘지역의사제’ 도입으로 지역간 의료격차 해소는 불가능보건의료인력종합계획 수립과정서 실질적 논의구조 형성 과제
  • ▲ 지난달 14일 진행된 전국의사 총파업 현장. ⓒ박성원 기자
    ▲ 지난달 14일 진행된 전국의사 총파업 현장. ⓒ박성원 기자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2020년 의사 파업 사태’로 정점을 찍었다. ‘파업 종료’와 ‘원점 재검토’가 담긴 합의서로 일단락되긴 했지만, 뇌관은 남아있다. 코로나 시국 속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대안으로 잠시 쉬어갈 뿐이다.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논란의 중심인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첩약급여 시범사업 ▲비대면 진료 육성 등 내용을 분석하고 향후 방향성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의료계 파업의 주요 원인은 의과대학 정원 확대다. 매년 400명의 의사를 10년 동안 늘리겠다는 정책이 발표되자 의사사회에서 반발이 일어났고 결국 전국적 파업으로 번졌다. 

    애초에 대정부 투쟁 노선이 확실했던 대한의사협회는 물론 의대생, 전공의, 전임의, 대학교수 등 전체 의사들이 나섰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공의들로 구성된 대한전공의협의회 주축으로 강도가 세지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움직임을 두고 직역 이기주의나 의료계에 만연한 ‘밥그릇 싸움’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코로나 사태가 재확산되는 시점에 파업을 결정해 환자를 볼모로 잡은 ‘무책임한 의사들’로 공분을 샀다.

    고작 연간 400명의 의사를 늘리는 것에 의사들이 파업이라는 초강수를 둘 수밖에 없었는지 근본적 이유를 파악해보자.

    ◆ 저수가 체계와 기피과의 그늘  

    의사들은 건강보험제도 속에 갇혀 있다. 모든 병원은 보험자로 불리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계약을 맺고 건강보험 환자를 받는다. 소위 ‘미용목적’ 비급여 의료행위를 제외하곤 진료, 수술 등 필수 영역은 정부가 가격을 결정하고 의료계가 이를 수용해야만 하는 구조다. 

    때문에 본질적으로 다른 시각이 존재한다. 정부는 한정된 재정으로 보장성 강화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의료행위 단가를 싸게 맞출 수밖에 없고 의료계는 관련 정책에 반박한다. 소위 ‘저수가 체계’ 형성이다. 

    바꿔 말하면, 국민 건강권 보장을 위해 의료계의 희생이 강요되는 것이다. 과거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바뀌기 어려운 한계다. 의료계 내에서는 ‘관행수가 후려치기’라는 표현이 있다. 자체적으로 가격을 매길 때 보다 ‘급여화’로 불리는 건강보험 제도권 진입이 이뤄지면 반가격 이하로 떨어진다는 의미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 이어져 오다 보니 피부과, 성형외과 등 ‘미용목적’ 의료행위로 규정돼 비급여 영역이 많은 진료과들이 인기다. 전국 수련병원에서 전공의를 모집하는데 이 과들은 대체적으로 경쟁이 벌어진다. 

    동시에 소위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라고 불리는 기피과 문제가 발생한다. 굳이 ‘돈 안 되고 힘든 쪽’을 선택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이 과들은 통상 미달 사태가 벌어진다. 

    결국 지방 수련병원 등은 기피과 전공의를 모집하기 어렵다. 그나마 빅5병원 정도나 돼야 안정적인 전공의 모집이 이뤄지는데 최근 몇 년간은 이 조차도 어려운 현실이다. 

    게다가 1차 의원급, 2차 종합병원, 3차 상급종합병원 등으로 구분된 의료전달체계 과정에서 3차 병원, 특히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 억제를 위한 제도적 보완책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은 상태다.

    저수가 체계로 기피과 문제가 발생했고 쏠림현상이 지속되고 있는데, 의사 수를 늘리면 해결될 것이라는 여당과 정부의 발표가 있었던 것이다. 

    의대정원 확대와 관련 복지부 측은 “의사가 부족한 지역에 사는 환자는 적시에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렵다. 뇌졸중 등 응급질환이 생겼을 때, 이를 신속히 치료할 수 있는 의사가 없어 안타깝게 사망하는 사례를 미연에 방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의사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구조적 문제의 탓을 외부로 돌려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결정한 정부를 향해 파업을 결정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환자를 볼모로 정부를 압박한 의사들의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점을 전제로 둔다. 

    ◆ 의사 부족  ‘통계의 맹점’… 외래 건수는 ‘16.9회’ OECD 2.5배

    지난 4일 대한의사협회와 여당, 정부간 합의서 의결로 의대정원 확대 ‘원점 재검토’가 명문화됐지만, 추후 의정협의체 등 논의과정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는 필수적으로 거론될 수밖에 없는 주요 지표다. 

    이쯤에서 OECD 통계를 살펴보자. 올해 기준 인구 1000명당 OECD 평균 의사 수는 3.5명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2.4명에 불과하다. 수치로만 보면 최하위권이다.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국내에 한정된 특수한 문제일까. 사실 일본 2.5명, 미국 2.6명, 캐나다 2.7명, 영국 2.8명 등도 동일한 의사 수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영역에서 영국의 사례를, 약가제도 등 세부 분야에서 일본의 사례를 차용해 제도에 적용해 왔다. 이른바 선험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책이 설계된 것인데 이 국가들도 수치로만 따지면 크게 다를 바 없다. 

    근본적으로 이 통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존재한다. OECD 회원국이 제출하는 활동의사 수의 평균값을 기준으로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주장하거나, 이를 적정 의사 수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의료계 시각이다. 

    ‘적정 의료인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려면 전문가의 판단, 의료시장의 현상, 건강수준의 평가, 지역주민의 만족도 등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돼야 한다는 것이다. 

    동일한 OECD 통계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의사 수가 적은데도 외래진료 횟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가로 기록됐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국민 1명이 받은 외래 진료 횟수는 연간 16.9회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았다. OECD 국가 평균(6.8회)과 비교하면 2.5배 수준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 의료비 지출 규모는 7.6%로 OECD 평균(8.8%)보다 낮았다.

    의사 수는 부족한데 국민들이 진료를 보는 횟수는 가장 많은 기형적인 구조다. 의료행위 건수 마다 비용이 책정되는 ‘행위별 수가제’가 적용돼 과잉 의료의 단면으로도 지적되지만, 의료 접근성이 보장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하다. 

    ◆ 보건의료인력지원법 통한 ‘의정 소통’ 필수

    건강보험 구조 속 저수가 체계와 왜곡된 의료전달체계가 잡히지 않으면 아무리 의사 수를 늘려도 해답이 되지 않는다. 전공의 포함 10년을 지방에 묶어두는 ‘지역의사제도’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그 기간만 마치면 다시 수도권으로 돌아갈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역의사제는 9년 의무복무를 기반으로 하는 일본의 ‘지역 틀 의사선발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본의 수가체계는 국내 수준과 비교해 현격히 높다. 저수가 체계에서 이를 적용하면 사실상 유인기전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의사는 핵심 국가 보건의료자원이다. 그 양성과 배출에 많은 시간과 재원이 요구돼 장기적인 육성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통한 적절한 인력의 유지가 의료공급의 핵심이다. 

    그 근거는 2019년 제정된 ‘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 담겨있다. 이 법은 3년마다 보건의료인력의 양성 및 공급현황, 면허·자격 신고 및 보수교육 현황 등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고 5년마다 보건의료인력 종합계획 수립을 규정하고 있다.

    의사 수 과잉 및 부족에 대한 정확한 현황을 파악하고 보건의료인력에 관한 정책목표 및 종합계획의 방향성, 지역 수가 등 지역의료 활성화를 위한 지원책이 고민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