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와 수소상용차 충전 인프라 SPC 설립 검토그린뉴딜 정책 맞춰 충전소 확대 등 사업 착수 나서수소차 판매량 미미… 더딘 보급 속도에 시기상조 의견도
  • ▲ 서울 강동구 소재 GS칼텍스 융복합 에너지스테이션. 좌로부터 수소충전소, 셀프주유소, LPG충전소. ⓒGS칼텍스
    ▲ 서울 강동구 소재 GS칼텍스 융복합 에너지스테이션. 좌로부터 수소충전소, 셀프주유소, LPG충전소. ⓒGS칼텍스
    정유4사가 수소사업에 서서히 손을 뻗고 있다. 정유업 불황의 끝이 보이지 않는데다 글로벌 에너지전환을 비롯한 정부의 '그린뉴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는 만큼 미래 먹거리 선점을 놓칠 수 없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다만 수소산업이 아직 초기 상태인 만큼 사업성을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책이 수반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4사는 현대자동차와 함께 수소상용차 충전 인프라 관련 특수목적법인(SPC) 설립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수소산업 육성책과 국내 완성차업계 1위 현대차가 주도하는 미래 친환경차 시장 선점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급물살을 탔다.

    올해 초 산업통상자원부의 제안으로 논의를 시작해 각 사별로 타당성을 조사해왔으며 이르면 연내 업무협약을 체결할 전망이다. SPC 설립 시점은 내년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사업의 골자는 수소트럭, 수소버스 등 상용차 충전 인프라 구축이다.

    완성차업계 한 관계자는 "정유사는 정제과정에서 수소 생산이 가능하고 기존에 다루던 제품과 유사한 성질의 수소를 유통하는 것이어서 매력적인 사업"이라며 "4사 모두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그린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수소충전소를 지속 확대해 2025년까지 총 450개소를 짓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간 소극적이던 정유4사도 SPC 설립에 전향적인 자세로 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 들어 코로나19 장기화로 수요절벽이 극심해지면서 상반기에만 5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하면서다.

    게다가 정제마진은 이달 들어 또 다시 2주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면서 당분간 실적 개선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더군다나 그동안 제대로 활용할 길이 없던 부생수소(석유 정제과정에서 나오는 수소)를 수소차 충전에 활용할 수 있는 만큼 새로운 수익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유4사 역시 수소 충전사업을 구체화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현재 가동 중인 수소 충전소는 GS칼텍스와 현대차가 협업해 5월 준공한 서울 강동구 '융·복합 에너지스테이션'으로, 하루 평균 수소차 50대(8월 기준)가 오간다. 이 충전소는 서울시내 민간부지에 처음 설치된 것으로, GS칼텍스가 직접 운영하고 있다.

    GS칼텍스 측은 "정부의 수소경제 활성화 정책에 맞춰 수소 충전시설 확대를 적극적으로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SK에너지는 모회사 SK이노베이션과 함께 '상용차는 수소, 승용차는 전기차 배터리'에 집중하고 있다. 소형 승용차는 전기차, 트럭·버스 등 대형차는 수소전기차가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되고 있는 만큼 이에 따른 전략으로 풀이된다.

    SK에너지는 7월 국토교통부가 발족한 '수소물류 얼라이언스'에 정유업계에서 유일하게 참여했다. 국토부는 이를 통해 군포 물류단지 등 물류거점에 수소화물차 충전소를 설치하고 연료 보조금 지원방안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SK에너지는 이곳에서 충전소 운영사업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11월 오픈 예정인 평택 수소충전소의 경우 SK에너지가 부지를 제공하고 하이넷(수소에너지네트워크)이 수소충전소 구축·수소 공급을 맡는 형태로 운영될 예정이다.
  • ▲ 국회 수소충전소. ⓒ박성원 기자
    ▲ 국회 수소충전소. ⓒ박성원 기자
    현대오일뱅크는 최근 컨퍼런스콜에서 기존 주유소 인프라를 활용해 수소충전소를 2025년 약 80개소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로드맵을 제시했다. 2030년까지 180개소, 2040년에는 300개소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롯데케미칼과의 합작사인 현대케미칼이 건설 중인 나프타 분해시설 HPC(Heavy Feed Petrochemical Complex)이 내년 완공되면 해당 설비에서 발생되는 부생수소를 판매에 활용할 예정이다.

    현대오일뱅크 측은 "정부의 수소충전소 설치 계획이 현실화한다는 가정 하에 내부적으로 목표를 잡은 것"이라며 "아직 구체화한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애쓰오일의 경우 4사 중 상대적으로 속도가 가장 더디지만, 내부 검토에 돌입했다. 서울시와 협의해 마곡 연구소 부지에 수소충전소를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수소경제 생태계 조성에 적극적으로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에쓰오일 측은 "서울시내 복합수소충전소 도입을 위한 입지 선정과 경제성 검토 등 수소경제 생태계 조성에 적극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업계에서는 정유4사의 이 같은 행보가 수소 생태계 확장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수세적인 모습을 보여 오던 정유사들도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며 "수소산업이 전환점을 맞이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정유사 입장에서는 수익성 면에서는 아직 수소산업에 뛰어들기에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 운송이 까다롭고 비용도 만만치 않은 만큼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정유업계에 따르면 수소충전소를 짓는데 통상 30억원 가까이 소요되고, 부지를 제외하고 설비만 들여오는 것도 평균 20억원이 든다. 이렇게 계산하면 현대오일뱅크가 2025년까지 수소충전소 80개소를 짓기 위해서는 4년간 매년 600억원가량을 쏟아부어야 하는 셈이다.

    더군다나 수소차가 얼마나 들어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수소산업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려면 리스크가 그만큼 따를 수밖에 없다. 1분기 기준 국내 수소차 판매량은 1230대에 불과해 아직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때문에 정유사들은 수소차 보급 추세를 지켜본 뒤 주유소 부지를 제공하거나 기존 주유소를 복합 에너지스테이션 형태로 변모하는 식으로 점진적 투자를 하는 방향을 택하고 있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수소산업은 아직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더 따라줘야 한다"며 "아직 전기차도 대중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소차는 기존 사업에 추가되는 정도로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내다봤을 때 신속한 수소산업 도입이 다방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침체된 정유업계를 살리고 정부의 뉴딜 정책까지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과감한 선택을 해야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