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VIP 불참 단 3차례 올해도 청와대 자체 행사만 열어경영계 "현정권 기업 등한시…관심있어야 행사도 참석하는 것"기자회견 횟수도 적어…소통 꺼리고 자기편만 챙기는 성향 지적아쉬울땐 보여주기식 행사에 기업총수 호출, 들러리 세운다 비판도
  • ▲ 7일 오전 청와대에서 화상으로 열린 '2021년 신년 인사회'에서 인사말하는 문재인 대통령.ⓒ연합뉴스
    ▲ 7일 오전 청와대에서 화상으로 열린 '2021년 신년 인사회'에서 인사말하는 문재인 대통령.ⓒ연합뉴스
    경제계 최대 규모 행사인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문재인 대통령이 4년 연속 불참했다. 경제계 일각에선 문 대통령의 이례적인 행보가 현 정부의 반(反)기업 정서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문제는 문 대통령의 경제계 거리두기가 일관성이 없다는 점이다. 각종 규제로 기업을 옥죄면서 한편으론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투자가 필요할 땐 바쁜 기업 총수들을 호출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회장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언급하며 "기업을 둘러싼 경영환경이 급격하게 엄격해져 상공인들의 걱정이 매우 많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대한상의는 7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의 국제회의장에서 2021년 경제계 신년인사회를 열었다. 대한상의는 1962년부터 매년 경제계 신년인사회를 열고 있다. 그동안 대통령을 비롯해 각료와 국회의원, 주한 외교사절 등이 한자리에 모여 경제 발전과 위기를 극복하는 데 힘을 모아나가자고 의지를 다져왔다.

    문 대통령은 올해도 행사에 불참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경제계 신년회에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전까지 대통령 불참 사례는 단 세 번뿐이다. △1984년 전두환 전 대통령(아웅산 테러사건)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4대그룹 총수 간담회)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탄핵소추안 의결로 직무정지) 등이다. 4년 연속 불참은 전례가 없다.

    문 대통령의 불참은 예견됐던 일이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6일 서면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이 7일 오전 청와대에서 (자체) 신년인사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도 하루 전날 자체 신년인사회를 열고 경제계 신년행사엔 불참했었다.

    이날 청와대 신년인사회는 코로나19(우한 폐렴)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를 고려해 온라인 영상회의 형식으로 진행됐다. 청와대 행사에는 정관계·재계 주요 인사 등 50여명이 화상으로 연결돼 덕담을 주고받았다. 경제계에선 박용만 회장과 김임용 소상공인연합회장 직무대행 등이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통합 △회복 △도약을 키워드로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다음 주부터 3차 재난지원금이 지급된다"며 "중요한 것은 마음의 통합이다. 우리가 코로나에 맞서 기울인 노력을 서로 존중해주고 더 큰 발전의 계기로 삼을 때 우리 사회는 더욱 통합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때마침 여당발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론으로 정치권이 시끄러운 가운데 문 대통령이 꺼내든 '통합'의 키워드에 대해 일단 청와대는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다음 달부터 백신 접종을 시작할 계획이고 우리 기업이 개발한 치료제 심사도 진행 중"이라며 회복을, "K방역으로 다른 나라가 부러워할 역량을 보여줘 세계 모범국가로 인정받았다"며 도약을 강조했다. 아울러 "여건이 허용한다면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마지막까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덧붙였다.
  • ▲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인 간담회.ⓒ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인 간담회.ⓒ연합뉴스
    일각에선 문 대통령의 불참 행보를 두고 현 정부의 반기업 정서를 대변한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현 정부가 출범 이후 친노동계 일변도의 정책을 쏟아내고 각종 규제입법을 통해 기업을 옥좨왔던 연장선에서 해석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계 한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경제계에 신경을 많이 안 쓰는 것 같다"면서 "대통령이 온다고 기업인이 쓴소리할만한 자리도 아니고 인사말을 할 인원이나 시간도 제한적이어서 싫은 소리 들을까 봐 불참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다만 정부마다 중요시하는 정책이나 사안들이 있는데 (현 정부는) 기업과의 소통은 등한시하거나 뒷순위로 밀려 있는 것 같다"면서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가야 행사에도 참석하는 것 아니겠냐"고 부연했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기업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왔다. 부자증세부터 지난해 말 거대 여당이 입법을 강행한 '기업장악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에 이어 새해 들어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형사처벌을 추진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까지 기업 옥죄기를 계속하고 있다.

    문제는 현 정부의 이런 태도가 일관성 없이 입맛에 따라 오락가락한다는 데 있다. 유례없는 감염병 사태에 생존의 갈림길에 선 기업들이 어려움을 호소해도 경제계 의견은 듣는 둥 마는 둥 각종 규제입법을 밀어붙이다가도 고용 창출이나 민간투자사업이 필요하면 손을 내미는 이중적 태도를 보여왔다. 지난해 한일 간 역사인식 문제로 촉발된 수출 규제로 소재·부품·장비 등의 조달에 빨간불이 켜지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물량을 확보하려고 직접 나서 동분서주할 때 청와대가 보여주기식 행사에 재벌 총수들을 불러놓고는 이렇다 할 발언 기회조차 주지 않고 '들러리' 세웠던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문 대통령이 시종일관 반재벌 인식을 보여왔다는 것이 경제계 행사에 불참하는 첫 번째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 교수는 "문 대통령은 다른 외국 정상과 비교할 때 기자회견도 안 하는 편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동안 90회쯤 언론과 대화를 나눈 반면 문 대통령은 서너 번에 불과하다"면서 "소통을 안 하고 자기편 사람들만 만나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 ▲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인사말하는 정세균 총리.ⓒ연합뉴스
    ▲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인사말하는 정세균 총리.ⓒ연합뉴스
    경제계 신년인사회에는 정·관계, 재계, 노동계, 주한 외교사절 등 각계 인사 600명이 화상으로 연결돼 코로나 위기 극복을 다짐했다. 행사장에는 정세균 국무총리와 박용만 회장,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동명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등 소수만 참석했다.

    박용만 회장은 인사말에서 "지난해 코로나19로 불확실성이 1년 내내 계속돼 상공인들로서 마음 편한 날이 없었던 것 같다"며 "위기 극복 과정에서 기업들 경영 여건이 급격히 악화하는 일이 없도록 관리하는 '안정적이고 균형 잡힌 출구 전략'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이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관련해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선 시스템과 교육, 시설에 대한 투자와 인식 등 총체적인 노력이 필요한데, 처벌만 자꾸 얘기하면 위축될 수밖에 없다"면서 "경제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국회가) 속도 조절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인사말에서 "2020년은 '다사다난'이라는 말로도 표현하지 못할 만큼 고되고 험난한 시간이었다"며 "지난 한 해 한국 경제를 위해 최선을 다해준 경제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격려했다. 정 총리는 "가느다란 화살도 여러 개 모이면 꺾기 힘들다는 말처럼 올해는 위기 극복을 위해 연대·협력하는 '절전지훈'의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그 힘을 원동력으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경제 반등과 성과를 만들겠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