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중립 기조 속 화석연료 대안 떠올라액화 수소 등 '생산-유통-소비' 생태계 구축 나서'부족한 인프라-높은 생산단가' 선결과제… 정부 지원 시급
  • ▲ 국회 수소전기차충전소. ⓒ박성원 기자
    ▲ 국회 수소전기차충전소. ⓒ박성원 기자
    국내 정유업계에 '수소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전 세계적인 탈탄소 흐름이 가속하면서 친환경 사업 재편을 서두르고 있으며 수소를 비롯한 탈탄소, 클린에너지에 대한 투자 로드맵을 그리고 대규모 자원을 속속 투입하고 있다. 화석연료 중심의 주력 사업 비중을 줄이는 체질 전환 작업을 통해 수소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복안이다.

    7일 업계에 따르면 GS칼텍스는 액화 수소생산·공급 사업 추진을 위해 한국가스공사 LNG 인수기지 내 유휴용지에 2024년 완공을 목표로 연산 1만t 규모의 액화 수소 플랜트를 짓는다.

    플랜트 부지는 경기 평택시 일대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액화 수소 1만t은 연간 수소 승용차 약 8만대가 사용 가능한 양이다. 완공 시점에 맞춰 수도권과 중부권에 액화 수소충전소도 수십 곳 규모로 세울 계획으로, 생산된 수소는 이곳을 통해 공급될 예정이다.

    이밖에 GS칼텍스와 가스공사는 △액화 수소충전소 구축 △수소 추출설비 구축 △탄소 포집 활용(CCU) 기술 실증·상용화 등 액화 수소 사업 밸류체인 전반을 협업하기로 했다. 양사는 CCU가 상용화되면 블루 수소를 생산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이번 액화 수소생산 및 공급 사업에 앞서 기체수소 충전소 구축 및 운영 사업을 진행했지만, 수소 생산 사업 진출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GS칼텍스는 지난해 5월 현대자동차와 함께 서울 강동구에 수소충전소를 준공하고 휘발유·경유·LPG·전기뿐만 아니라 수소까지 모두 공급 가능한 약 3300㎡ 규모의 융복합 에너지 스테이션을 운영하고 있다.

    이어 현대차와 함께 제주에, 코하이젠(Kohygen)과는 전남 여수 및 경기 광주에 상용 수소충전소를 구축할 계획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수소 드림(Dream) 2030 로드맵'을 통해 2025년까지 블루 수소 10만t을 생산, 판매할 계획을 세웠다. 블루 수소는 화석연료를 수소로 변환할 때 발생하는 탄소를 제거한 친환경 에너지다.

    이를 위해 세계 최대 수소 생산업체 에어프로덕츠와 '수소 에너지 활용을 위한 전략적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에코프로덕츠의 앞선 제조기술을 활용, 저렴한 원유 부산물과 직도입 천연가스로 수소를 생산해 원가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암모니아를 활용한 그린수소 사업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2023년부터 20㎿ 이상 규모의 수소 연료전지 발전소를 운영하고, 2030년까지 전국에 180여개 수소충전소를 구축, 생산한 수소 판매를 위한 공급망도 갖춘다.

    수소 연료전지를 활용한 발전 시장으로의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최근 한국남동발전과 '신재생에너지 사업 공동개발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현대오일뱅크가 수소를 생산해 공급하고, 남동발전은 연료전지 발전소 운영 노하우를 제공함으로써 합작 발전 법인에서 전기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생산된 전기는 정부의 '수소발전의무화제도'에 따른 의무 구매자에게 공급·판매한다.

    이를 통해 정유 사업 매출 비중을 현재 85%에서 2030년 45%까지 낮추고 수소 등 비정유 부문 매출을 높일 계획이다.
  • ▲ 서울 강동구 소재 GS칼텍스 융복합 에너지스테이션. 좌로부터 수소충전소, 셀프주유소, LPG충전소. ⓒGS칼텍스
    ▲ 서울 강동구 소재 GS칼텍스 융복합 에너지스테이션. 좌로부터 수소충전소, 셀프주유소, LPG충전소. ⓒGS칼텍스
    SK이노베이션은 그룹 주도 하의 대규모 수소 생태계 구축 전략에 중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앞서 SK그룹은 지난해 수소 사업 추진단을 신설한 데 이어 3월 향후 5년간 약 18조원을 투자해 글로벌 수소 기업으로 전환을 선언했다.

    국내 수소 사업 인프라 투자, 글로벌 기업과의 파트너십 등을 통해 수소생산-유통-소비에 이르는 밸류체인에서 글로벌 1위 수소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그룹 에너지·화학 계열 중간지주사 역할을 맡고 있는 SK이노베이션은 친환경 중심 미래 성장 비전인 '그린밸런스 2030' 하에 탈탄소화 사업 전환 및 신사업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그룹 수소 사업과 연계해서는 2023년까지 5000억원을 투자해 SK인천석유화학 단지에 액화 수소 생산기지를 건설한다.

    이 공장은 SK이노베이션 산하 SK인천석유화학에서 부생 수소를 공급받아 고순도 액화 수소를 생산, 수도권에 공급하게 된다. 생산능력은 연 3만t 규모로, 수소전기차 7만5000대에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이후 추가 투자를 통해 2025년까지 연 25만t의 청정수소를 생산할 계획이며 SK에너지 주유소는 수소 충전 네트워크로 활용된다. 수소 생산설비 확대에 발맞춰 SK는 수소충전소 100곳을 운영할 계획이다. SK그룹의 수소 밸류체인이 완성되는 셈이다.

    에쓰오일은 차세대 연료전지 기업 에프씨아이(FCI)에 지분투자를 통해 수소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에쓰오일은 신성장 전략 '비전 2030' 달성을 위해 수소 생산부터 유통, 판매까지 수소 산업 전반 진출을 계획 중이다.

    한국-사우디아라비아 합작기업인 FCI는 40여건의 고체산화물 연료전지(SOFC) 특허를 보유한 연료전지 전문 기업으로, 최근 그린수소까지 사업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연료전지는 수소를 공기 중 산소와 화학 반응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장치로, 수소 경제에 핵심 장치다.

    에쓰오일의 투자비용은 82억원으로, FCI 지분 20%를 확보해 국내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앞으로 양사는 수소 산업 진입을 위한 전략적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수소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알 카타니 에쓰오일 CEO는 "이번 투자는 수소 경제 전반에 대한 투자의 시작으로, 회사의 지속 성장을 견인할 것"이라며 "정부에서 추진하는 탄소 저감 노력에도 적극 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대주주인 사우디 아람코와 협력해 그린수소, 그린암모니아를 활용한 사업 및 액화 수소생산·유통사업도 검토 중이다.

    또 서울 시내에 복합 수소충전소 도입을 검토하고 있으며 버스·트럭의 수소 충전 인프라 수축을 위해 관련 업계가 추진하고 있는 특수목적법인 코하이젠에도 참여하고 있다.
  • ▲ 수소 배송 차량. ⓒ정상윤 기자
    ▲ 수소 배송 차량. ⓒ정상윤 기자
    정유업계의 수소 사업 진출은 화석연료 중심의 주력 사업으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결과다.

    원유를 정제해 석유제품을 생산하는 정유업은 철강업과 함께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산업으로 꼽힌다. 실제 국내 주요 기업의 탄소 배출량 10위 안에 정유 4사가 모두 속해있다. 현재 사업 구조를 유지할 경우 탈탄소 시대에 살아남기 힘들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유럽의 경우 2030년부터 내연기관차 신차 판매를 금지하고, 중국도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생산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대통령 직속 국가기후환경회에서 내연기관차 판매 중단 시점을 2035년 또는 2040년으로 제시하면서 화석연료 시대가 저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유4사는 지난해 코로나19로 합산 누적 적자가 5조원을 넘어서는 등 글로벌 경기와 국제유가 등 외부 변수에 민감해 위기시 대규모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무엇보다 수소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거는 기대가 크다. 수소 경제 관련 글로벌 CEO 협의체인 수소위원회는 연간 수소 소비량이 2020년 10EJ(엑시줄)에서 2050년까지 약 8배 증가한 78EJ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1EJ는 하루 전 세계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 규모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2050년 전 세계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18%를 수소가 담당할 것으로 예측했으며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전 세계 시장 규모는 2050년 12조달러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아직 수소 산업 자체가 초기 단계인 만큼 상용화를 목표한 시점만큼 이른 시일 내 현실화할지 의구심을 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장은 생산단가가 높기 때문에 원가 절감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기업들이 궁극적으로 목표하고 있는 그린수소까지 가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현재 부생 수소와 그린수소 생산가격은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수소생산 비용은 2018년 기준 부생 수소 방식이 ㎏당 2000원 미만이며 수전해(전기분해) 방식은 9000~1만원 수준이다.

    경제성을 확보하려면 수전해 방식 비용을 3000원 수준으로 낮춰야 하는데, 업계에서는 적어도 10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기업이 결실을 볼 때까지 10년을 버텨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프라 확충도 과제다. 기업이 수소를 생산하더라도 이를 운송-저장-충전할 수 있는 공급망이 따라가지 못하면 활용도는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수소 사업 중 가장 속도를 내고 있다고 평가받는 수소차만 하더라도 충전 인프라가 상당히 미흡하다.

    자동차산업협회 조사 결과 수소차 충전기 1기당 차량 대수는 180대로, 미국(1기당 224대)에 이어 두 번째로 열악하다. 전기차 인프라의 경우 전기차 2.1대당 충전기 1기로,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

    따라서 각 기업의 수소 사업이 효과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선진 수소 기술 개발 외에 운송-저장-충전 등 인프라 사업에도 결실을 거둘 수 있도록 R&D 지원, 판로 확보 등 전방위적인 정부의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판매사업자에게 수소 발전 구매를 의무화하는 제도 등이 마련돼 있지 않아 수소 발전 사업에 뛰어들 유인이 없었다"며 "수소를 생산하는 것만큼이나 수송을 위해 수소를 압축하는 기술도 필요한데, 자체 기술은 마련돼 있지 않아 이러한 기술을 가진 해외업체로부터 들여와야 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딜로이트 컨설팅의 보고서 '수소 경제의 본격화 시점, 결코 먼 미래가 아니다'를 보면 "수소 산업이 주유 에너지 시장으로의 성장을 위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수소 거래 시스템의 정립, 대규모 수소 인프라 확충 등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며 "정부와 에너지업계의 공조를 넘어 글로벌 관점의 협업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