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바람 나는 행복한 직장 만들겠다" 취임 약속혁신·소통 기대감 키웠지만 첫 인사는 갑질 상사변화 약속했다면 직원 비판 물음에 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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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지난해 12월 취임 후 내부 관계자들에게 인상 깊은 행보를 보여왔다. 합리적이고 직원들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는, 그동안의 이사장들과 비교할 때 확실히 무언가 다른 사람이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CEO와 함께하는 소통 콘서트'를 개최했고, 활용도에서 내부 평가는 엇갈리지만 직원들이 직장 밖에서도 마음껏 회사에 대한 문제사항 등을 건의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일종의 블라인드앱인 '온통'을 만들었다. 

    수시로 아랫 직원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면서 MZ세대 젊은 직원들 사이에선 특히 평가가 좋았다. 시니어급 직원들 사이에서도 쓸데 없는 일보단 필요한 걸 하려고 하는 합리적인 이사장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경력직 대거 채용건, 금융감독원 정기감사 관련 개인정보 동의 요구 등 크고 작은 잡음이 생겨났을 당시에도 여느 이사장과 달리 직원들에게 직접 글을 게재하며 자신의 생각과 정황을 적극 설명하고, 미흡함에 대해선 사과하고 시정을 약속하는 어른의 행보를 보였다. 작년말 취임 직후 있던 정기인사 후일담을 통해선 올해 말 사실상 자신의 첫 인사에 대한 기대를 당부하기도 했다.

    최근 A청산결제본부장이 경영지원본부장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에 여느 때보다 직원들의 실망이 큰 이유다. 

    노조의 성명에서 나온 A본부장의 모습은 기가 차다. 여성 직원에 대한 성차별·성비하 발언 구설과 부하 직원 괴롭힘, 충성 강요, 휴가 통제, 불법 도청···. 이런 평가가 나오는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전무 직위까지 오를 수 있었는지 거래소 자정력에 의문이 들었다.

    자리 자체만으로도 비판을 사고 있는 청렴결제본부는 손 이사장의 의중이 반영된 조직이 아니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부산 본사에 청렴결제본부장으로 A본부장이 보내진 배경은 오히려 지역·출신으로 인한 폐해를 상쇄하는 효과를 고려한 조치였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러나 직원들에겐 이조차 변명일 뿐이다. 많은 직원이 A본부장으로부터 씻기 힘든 상처를 받아왔다고 노조는 밝혔다. 취재 과정에서 기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토로한 직원들도 적지 않다. 내용은 각양각색이지만 그들의 주장은 어떤 면에서 일치한다. 결코 그때를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것.

    어떤 이는 "이가 갈린다"고 표현했다. 인사 불이익이 두려워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 동안 해당 임원은 승승장구하며 거래소 역사상 최초의 전무가 되고, 어느새 2인자로 자리매김한다는 현실에 분노를 넘어 회의감마저 든다고 했다. 

    역대 문제가 됐던 인사마다 각기 평가는 엇갈렸고, 노조가 반대 농성을 진행해도 일반 직원들은 그저 남의 일을 보듯 담담해 보였다. 그랬던 직원들은 이번만큼은 진심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말 이건 아니지 않냐는 목소리가 중론이다. 남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일이었다고 증언하며, 직원들 사이에서도 계속 입에 오르내릴 만큼 비토의 정서가 높다. 여러 불편함 속에서도 이번 사안을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이유도 이때문이다. 

    전언에 따르면 손병두 이사장은 고심하고 있다고 한다. A본부장 만큼 성과를 자신할 임원이 없기에 딱히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함께 전해진다. 

    지금도 취업카페에서 거래소는 금융 꿈나무들의 꿈의 직장으로 거론된다. 고스펙과 각종 장기를 가진 인재가 몰려드는 거래소를 이끌 임원급 인사의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낯 부끄러운 일이다. 

    학연과 출신에 따른 줄서기 문화는 여전히 거래소 직원들에겐 부끄럽지만 익숙한 진실이라고 토로한다. 여느 때보다 강한 반발이 있지만 직원들은 결국 매번 반복돼온 인사처럼 '이렇게 또 결국 가겠지' 하는 패배주의에 익숙해 있다고 말한다. 똑똑한 직원들을 뽑아놓고 바보로 만든다는 웃지 못할 자조도 섞였다.  

    손 이사장은 취임하면서 직원들에게 "신바람 나는 행복한 일터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과연 이 시점의 거래소는 '신이 나서 몸이 우쭐우쭐해질 정도로 기분이 몹시 좋아질' 행복한 일터로 만들어지고 있는가.

    손 이사장은 직원들의 목소리에 답해야 한다. 직원들에게 약속한 쇄신과 변화는 어디에서부터인지. 쇄신을 약속했다면 직원들의 비판 섞인 물음에 답해야 한다.

    노조의 성명을 인용하며 글을 맺는다.

    "이사장에게 묻겠다. 취임 1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좋은 상사 코스프레를 했지만 결국은 과거 적폐들처럼 행동대장이 필요하단 말인가. 본인이 직장 내 괴롭힘을 했는지, 성희롱·성차별 발언을 했는지 구분도 못하는 인물에게 직장 내 고충 처리를 해결해야 할 임원 자리를 맡길 생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