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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중대재해법] CEO 대신 CSO… 감옥행 불안 '덜덜'

대기업, CSO 부문 신설… 형사 리스크 줄이기 안간힘청원부터 시행까지 14개월, 中企 53.7% "준수 불가능"예방보다 처벌에 집중 실효성 있나, 채용시장도 영향

입력 2022-01-02 06:00 | 수정 2022-01-04 18:28
"처벌을 늘린다고 사고가 줄까요"

논란이 끊이질 않았던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이 내년 27일 본격시행된다. 사업장에서 재해가 발생하면 경영책임자를 형사처벌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처벌범위는 광범위하다. 고의성이 없어도 사고가 일어나면 형사처벌한다. 처벌수위도 엄하다. 사망사고시 징역 1년 이상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시행을 앞두고 산업계는 불안에 떨고 있다. 처벌기준이 모호하니 어떤 대응을 해야할지 알 수 없다. 관리감독하는 정부부처도 헤매는건 마찬가지다. 고용노동부, 중소기업벤처부, 환경부 등 각자 해설서를 내놓고 있지만,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진 못하고 있다. 일단 시행부터 하고 차차 적용해나가자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기업들은 소위 '시범 케이스'가 되지 않기 위해 분주하다.

건설·철강·중공업 등 산재 다발 사업장 혼란

발등에 떨어진 불이 가장 뜨거운 쪽은 건설, 철강, 중겅업 등 산재가 많이 일어나는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은 연말 인사를 기점으로 새로운 직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 최고안전책임자(CSO)라는 직책이다. 재해시 사업주가 처벌받지 않기 위해 안전·보건과 관련된 모든 권한을 CSO에 몰아줌으로써 책임도 함께 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포스코는 대표 직속 안전환경본부를 신설했다. 부사장급 인사가 본부장을 맡았다. 현대제철도 안전보건총괄 부서를 신설하고 상무급 인사를 임명했다. 삼성물산은 부사장급 인사를 중심으로 안전보건실을 꾸렸다. 이들 기업들은 CSO가 중대재해법상 '경영책임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독립적인 인사·예산권을 부여하고 있다.

CSO를 아예 대표이사로 임명한 곳도 있었다. 사내 별도의 안전·보건 부서만으로는 '산재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호반건설은 안전부문을 대표이사직을 따로 신설했다. 건설사 1곳에 총괄사장, 시공부문 대표, 안전부문 대표 등 3인 대표 체제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안전 예방 사업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면서도 "이런 투자로 과연 사고 예방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 건설사고 현장 모의훈련 장면ⓒ뉴데일리 DB

자금 여력없는 中企, 사고 안나길 기도할 뿐

중소기업들은 숨만 죽인 모습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재무구조가 극도로 취약해진 상황에서 안전·보건 부문에 투자할 자금은 없어 보인다. 중소기업중앙회가 50인 이상 기업 322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53.7%가 중대재해법 시행에 맞춰 의무사항 준수가 불가능하다고 응답했다. 직원이 50~99인으로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에서는 60.7%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대표=기업'인 중소기업은 사장이 구속되면 경영이 올스톱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형사 리스크 대비에 치중해야 하는 실정이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대기업은 전문경영인이라도 둘 수 있지만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은 산재 관련법이 더 두려울 수 밖에 없다"며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예방 및 대응에 필요한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다급한 法 시행, 2년 뒤 50인 미만 적용시 '패닉'

전례없는 신속한 입법과 시행 과정도 걱정을 낳는다. 중대재해법은 지난해 9월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국회에 회부된 이후 불과 4달만에 본회의를 통과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이라는 별도의 법이 있는데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시행과정도 졸속에 가깝다. 법이 만들어지고 6개월 만에 시행령을 내더니 다시 6개월만에 현장에 적용했다. 청원과 시행까지 걸린 시간은 16개월에 불과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기업들이 충분히 관심을 갖고 산재를 줄였다면 과연 중대재해처벌법이 필요했겠느냐"며 기업 책임론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2년 뒤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법이 시행되면 현장은 아수라장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중대재해 사고 상당수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중대재해 사업장 641곳 중 539곳이 50인 미만 업체였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기업 대응만으로는 중대재해법에 대비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법에 규정된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성실히 실천하더라도 재해가 발생하면 처벌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 안전·보건은 모든 사업장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열화상 카메라를 통과하는 모습ⓒ자료사진

"아픈 사람 안 뽑아"… 취업시장도 바꿔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은 채용 단계부터 건강검진을 강화하는 추세다. 혹여나 근무 중 기저질환으로 사망해도 사업주가 처벌받을 수 있어서다.

이같은 추세는 형사 리스크에 예민한 외국계 회사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한 외국계 대형 유통업체는 채용 전 건강검진에서 '재검사' 요건이 충족되면 채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고혈압, 당뇨 등 성인에게 흔한 질병도 재검사 요건이 된다.

이들 기업들은 이같은 정책이 근로기준법 등에 저촉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근로기준법을 위반해도 과태료나 벌금으로 끝나는 반면, 중대재해법은 대표이사가 징역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영차총협회 관계자는 "고용노동부도 사망사고를 제로로 만들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으며 경영책임자 의무 위반과 사고 간의 입증책임이 쉽지 않다는 점도 인지하고 있다"며 "사고원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 및 제시 없이 사고 과정과 결과에 대해 모두 책임을 물어 처벌하겠다는 방식은 중대재해 예방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안종현 기자 ajh@new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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